조성진의 쇼팽, 황홀한 통영의 봄

  • 동아일보

통영국제음악제 27일 개막 공연
쇼팽 피아노협주곡 2번 등 연주
서양 관현악 동양적으로 풀어낸
윤이상의 ‘예악’도 박수 갈채

27일 경남 통영시 통영국제음악당 콘서트홀에서 열린 통영국제음악제에서 연주 중인 피아니스트 조성진. 이날 그는 쇼팽의 ‘피아노 협주곡 제2번 F단조’를 협연하며 짝사랑의 다면적인 감정을 입체적으로 풀어냈다. 통영국제음악재단 제공
27일 경남 통영시 통영국제음악당 콘서트홀에서 열린 통영국제음악제에서 연주 중인 피아니스트 조성진. 이날 그는 쇼팽의 ‘피아노 협주곡 제2번 F단조’를 협연하며 짝사랑의 다면적인 감정을 입체적으로 풀어냈다. 통영국제음악재단 제공
‘기다림’은 클래식에서 중요한 미학이다.

곡을 잘 아는 청중은 각자가 좋아하는 대목을 기다리며 음악을 음미한다. 익숙하지 않은 사람들도 친숙한 선율이 어느 순간 귀에 스며들길 고대하며 감상의 재미를 느낀다.

27일 경남 통영시 통영국제음악당 콘서트홀에서 열린 ‘통영국제음악제’ 개막 공연에서 피아니스트 조성진(32)이 연주한 쇼팽 피아노 협주곡 제2번이 그랬다. 현악기의 웅장한 선율과 목관의 애틋한 화음이 약 3분간 이어진 뒤 등장한 피아노의 첫 음은 객석의 공기를 단숨에 바꿔 놓았다. 맑고 투명하면서도 적절한 강약을 지닌 음들이 오케스트라 위에 자연스럽게 스며들었다.

● 조성진이 펼친 ‘건반 위의 사랑’

개막 공연의 첫 곡인 작곡가 윤이상(1917∼1995)의 ‘예악(禮樂)’에 이어 무대에 오른 조성진은 쇼팽 협주곡을 기교보단 섬세한 감정의 결로 풀어냈다. 지휘자 데이비드 로버트슨이 이끄는 통영페스티벌오케스트라는 피아노를 그저 받치기보다 서로 균형을 유지하며 흐름을 함께 만들어 갔다.

이 곡은 열아홉 살 쇼팽이 바르샤바 음악원에서 만난 소프라노 콘스탄차 그와트코프스카를 향해 품었던 연정에서 비롯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쇼팽은 친구 티투스 보이치에호프스키에게 보낸 편지에 “매일 밤 그녀가 나타나는 꿈을 꾸지만, 처음 본 지 6개월이 지나도록 한마디도 건네지 못했다”고 적었다. 짝사랑으로 남은 감정은 협주곡 곳곳에 스며 있다.

조성진은 이 감정을 과장하지 않고 건반 위에 옮겨 놓았다. 부드럽게 번지는 음엔 사랑의 설렘과 머뭇거림, 홀로 품는 행복과 그 뒤의 고뇌가 고루 담겼다. 특히 느린 템포가 돋보이는 2악장에선 고요한 로망스의 결이 또렷하게 살아났다. 약 40분에 걸친 연주가 끝나자 객석에서는 큰 박수가 이어졌다.

앙코르는 쇼팽의 왈츠 두 곡이었다. ‘이별의 왈츠’는 이뤄지지 못한 사랑의 여운을 잔잔하게 이어갔고, ‘화려한 대왈츠’는 밝고 경쾌한 분위기로 공연을 마무리하는 데 적합했다.

● 동서양의 조화 이끈 ‘예악’

공연의 문을 열었던 윤이상의 ‘예악’은 서양 관현악으로 동양적 음향을 풀어낸 작품. 1966년 독일 도나우에싱겐 음악제에서 초연된 뒤 그를 유럽 음악계에 각인시키며 국제적 명성을 안긴 대표작이다. 공연에 앞서 열린 간담회에서 진은숙 예술감독은 “‘예악’은 개인적으로 가장 좋아하는 윤이상 작품인데, 그동안 자주 연주돼 프로그램에 포함하지 않다가 올해 넣었다”고 했다.

평소 낭만적으로 들리던 하프는 ‘예악’에서 한국의 한을 담아낸 가야금처럼 들렸다. 오보에는 구슬픈 피리를, 바이올린은 해금을 떠올리게 했다. 화성 위주의 서양 음악과는 또 다른 맛이다.

특히 오케스트라에 유일하게 포함된 전통 타악기 ‘박’은 음악의 시작과 전환, 종결을 명확히 알리며 강한 인상을 남겼다. 팀파니 등 뒷줄 악기들이 단순한 배경에 머무르지 않고 리듬을 받치며 박자의 흐름을 이끄는 것도 인상적이었다.

이날 공연은 스트라빈스키의 ‘봄의 제전’이 마지막을 장식했다. 대편성 오케스트라의 밀도 높은 소리들이 맞물리며, 봄날의 무도회 같은 화려함과 생동감이 펼쳐졌다.

통영국제음악제는 작곡가 윤이상을 기리기 위해 1999년 ‘윤이상 음악의 밤’에서 출발했다. 2002년 국제음악제로 격상된 뒤 한국을 대표하는 현대음악 축제로 자리 잡았다. 다음 달 5일까지 이어지는 올해 음악회는 모두 26회의 공연이 열린다. 30일엔 조성진 피아노 리사이틀과 김유빈 플루트 리사이틀이 열리고, 31일엔 명창 왕기석이 고수 조용안과 함께 ‘수궁가’를 선보인다. 바로크부터 현대음악까지 ‘종합선물세트’처럼 즐길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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