욕망의 저울[이은화의 미술시간]〈415〉

  • 동아일보

부(富)를 향한 욕망은 누구에게나 있다. 그렇다면 노동 없이 얻는 부는 과연 정당할까? 16세기 화가 마리뉘스 판 레이메르스발러의 ‘환전상과 그의 아내’(1538년·사진)는 이 질문을 화폭에 담아냈다. 좁은 실내, 부부는 금화와 은화를 세는 데 여념이 없다. 남자는 저울에 동전을 올려 무게를 재고, 아내는 장부를 펼쳐 숫자를 확인한다. 고단한 노동의 흔적은 없지만, 이들의 손끝에서 가치는 끊임없이 교환되고 증식한다.

오랫동안 이 그림은 탐욕에 대한 경고로 읽혀 왔다. 중세 기독교 사회에서 돈이 돈을 낳는 일은 철저한 경계의 대상이었다. 땀 흘리지 않은 이익은 도덕적 타락으로 간주됐다. 미술사가들 역시 부부의 길게 늘어진 손가락에서 물질을 향한 집요한 욕망을 읽어냈고, 흩어진 동전과 장부를 도덕적 해이의 상징으로 해석했다.

그러나 시대의 렌즈를 바꿔 끼우면 전혀 다른 이야기가 펼쳐진다. 16세기 유럽은 상업과 금융이 팽창하며 환전과 대출, 투자라는 낯선 개념이 자리 잡던 시기였다. 과거 성경이 있던 자리를 회계 장부가 차지한 변화는 의미심장하다. 신의 섭리가 지배하던 세계에서 숫자의 논리가 작동하는 세계로 옮겨갔음을 보여주기 때문이다. 이들은 맹목적으로 물욕을 좇는 자들이 아니라, 격변하는 경제 질서 속에서 새롭게 등장한 초기 금융인이다.

이 작품이 흥미로운 이유는 시대에 따라 그 의미가 달라지기 때문이다. 어떤 시대는 이들에게서 탐욕을, 어떤 시대는 유능한 자본주의적 선구자를 발견한다. 저울 위에 놓인 것은 동전이지만, 궁극적으로 달아보고 있는 것은 부를 대하는 인간의 태도일지도 모른다.

자본의 시대, 불로소득을 향한 갈망은 앞으로도 멈추지 않을 것이다. 그것이 탐욕인지, 증식인지는 결국 해석의 문제다. 우리는 지금 저울 위에서 무엇을 읽고, 삶의 장부에 무엇을 기록하고 있는가. 그 답은 각자의 몫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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