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詩)를 읽는 자세는 시에 대해 공경스러워야 합니다. 이는 곧 인간에 대한 겸허와 공경이며, 풀과 돌, 나무와 벌레들에 대한 공경으로 이어지고, 무엇보다 자신에 대한 공경입니다.”
12일 오후 10시 충북 청주시 상당구 대성로 충북연구원 3층 중회의실. 40여 명의 수강생들 앞에서 ‘시에게 가는 길’을 주제로 한 김사인 시인(70)의 강의가 3시간 넘게 이어졌다. 한국문학번역원장과 동덕여대 교수를 지낸 김 시인은 이날 ‘서시’(윤동주), ‘영산홍’(서정주), ‘낙화’(조지훈) 등에 담긴 작가의 마음을 풀어내며 시를 대하는 자세와 온전히 읽는 법을 수강생들이 이해하기 쉽게 설명했다.
이번 강의는 청주에서 시작된 인문학 강좌 ‘무심(無心) 지혜의 언덕’의 첫 번째 시간이다. 강좌를 만든 주역은 동양사학자인 허원 서원대 명예교수(71)다. 서원대에서 독립운동사 등을 가르치다 퇴임한 뒤 청주의 옛 중심가에 연구실을 마련해 동양사학 연구에 매진하고 있는 그는 “지식인들이 진영 논리나 자기 주장에 머무르지 않고, 제대로 연구된 내용을 국민이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전달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생각해 강좌를 시작했다”고 말했다.
12일 오후 충북 청주시 상당구 충북연구원에서 열린 인문학 강좌 ‘무심 지혜의 언덕’ 첫 강의에서 김사인 시인이 ‘시에게 가는 길’을 주제로 강의하고 있다. 허원 교수 제공
허 교수는 “국내외적으로 혼란하고 혼탁한 요즘, 건전한 상식과 교양을 바탕으로 사유의 깊이를 더해가는 시간을 마련하고자 했다”며 “그런 의미에서 강좌 이름에 ‘언덕’이라는 표현을 넣었다”고 밝혔다. 이어 “누군가가 언덕이 되어주는 것이 아니라, 함께 오르다 보면 서로 좋은 방향으로 생각하고 이끌어 주고 자극을 주고받을 수 있다는 의미”라고 설명했다. 김영배 충북연구원장과 손부남 화가, 이재은 국가위기관리연구소장이 ‘무심 지혜의 언덕’ 발기인으로 참여했다.
강좌는 문학, 역사, 고전, 국제 정세 등을 넘나들며 진행된다. 허 교수의 취지에 공감한 많은 석학들이 참여했다.
첫 강의에 나선 김 시인은 허 교수와 서울대 동문이자 40년 지기다. 1981년 등단해 현대문학상(2005년), 대산문학상(2006년) 등을 받았다. 충북 보은 출신으로 현재 전북 전주에 거주하고 있는 그는 “평소 고향에 대한 빚이 있었는데, 허 교수의 부름에 선뜻 응할 수밖에 없었다”고 말했다.
허 교수는 “김 시인에게 시를 이해하고 다가갈 수 있는 강의를 부탁했는데, 책이나 일반 강연에서는 듣기 어려운 내용이었다”며 “시가 우리 영혼과 정서를 순화시키고, 삶 속에서 안정과 풍요, 위안을 줄 수 있다는 점을 이번 강의를 통해 되새길 수 있었다”고 말했다. 김 시인의 강의에 이어 한광수 미래동아시아연구원장(80)이 바통을 이어받는다. 중국 전문가인 한 원장은 ‘미·중 시대 누가 한국을 견제하는가―왜 그들은 할퀴면서 껴안는가’를 주제로 강의할 예정이다. 이어 허 교수가 ‘격변의 시대, 역사의 언덕에 올라’를 주제로 강단에 선다. 이 밖에도 △독립운동가의 꿈과 친일 인사의 고뇌(반병률 홍범도아카데미원장) △존엄과 정령의 원천 창덕궁(홍순민 궁궐박사·문화재청 문화재위원) △타이완 문제의 어제와 오늘(김봉준 서원대 역사교육과 교수) △우경화하는 일본의 실체를 보는 눈(허 교수) △논어·주역(전성수 전북대 철학과 교수) 등의 강좌가 이어진다. 또 서울 창덕궁 등에서 두 차례 답사도 진행된다. 총 14차례로 구성된 강의는 격주 목요일 오후 7시에 시작한다.
허 교수는 “다양한 분야와 동서고금을 넘나드는 전문가들의 대면 강의를 통해 블로그나 유튜브 등 온라인에서는 얻기 어려운 자기 사유의 시간을 가질 수 있을 것”이라며 “앞으로 지역 문제와 지역 문화 등 새로운 분야로 강좌를 확대하고 다른 지역과의 교류도 이어갈 계획”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