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공급망 흔들리며 요소 수입 막혀
유가 상승…정유사, 정제시설 가동률 낮추기로
‘산업의 쌀’ 에틸렌 재고 바닥, 조선-車 타격
반도체 필수 소재 헬륨 값, 1주새 50% 급등
HD현대중공업 울산조선소 전경 ⓒ 뉴스1
미국·이스라엘과 이란 간 전쟁이 지난달 28일(현지 시간) 시작된 이후 3주 이상 지속되면서 한국 산업계에 미치는 악영향이 본격화되고 있다. 2021년 중국의 수출 제한으로 ‘대란’을 겪었던 요소수 부족이 이번에도 현실화되는 중이다. 전쟁 초기 정유·석유화학에 국한됐던 중동발 ‘공급망 붕괴’의 충격이 자동차, 조선, 철강, 제약·바이오 등 전 산업으로 번지는 데다, 글로벌 경기 둔화에 따른 수요 감소 우려까지 겹치며 산업계에선 ‘퍼펙트 스톰(초대형 복합 위기)’ 경고음이 나오고 있다. ● “제2의 요소수 대란 막아라” 긴급 회의
22일 화학업계 등에 따르면 정부와 석유화학업체들은 지난주 요소수 관련 비상 대책 회의를 열고 수급 상황을 점검했다. 중소업체들이 요소수 물량 부족에 대한 우려를 전달하자, 정부는 비축 물량 여력이 있는 대기업 중심으로 시장에 요소수 재고를 풀 것을 요청한 것으로 알려졌다.
국내 요소수 제조사들은 차량용 요소수의 주요 원자재인 요소를 중국(약 66%)과 카타르(약 10%) 등에서 수입해 왔다. 하지만 전쟁 여파로 글로벌 공급망이 흔들리면서 요소 수급에 차질이 발생했고, 그 결과 요소수 생산 감소로 이어지고 있다.
시장에선 이미 우려가 커진 상태다. 10L(리터)당 1만 원 안팎이던 요소수 가격은 1주일 새 2만 원대 초중반으로 급등했고, 일부 온라인 쇼핑몰은 판매를 중단했다. 한 화물차 기사는 “1인당 1, 2통으로 판매를 제한하는 곳도 생겼다”고 전했다.
한국 산업의 기반인 정유·석유화학 업계는 전쟁 3주 차를 맞아 고유가와 원료 부족으로 가동 차질을 빚고 있다. 아시아 수입 원유의 기준인 두바이유 현물 가격은 배럴당 최고 166.8달러까지 치솟았다. 20일 충남 서산 대산항에 ‘이글 밸로어’ 호가 200만 배럴의 원유를 싣고 도착한 것을 끝으로 중동발 원유 수급은 사실상 중단됐다. 4월 도착 예정인 중동산 유조선 역시 전년 대비 70% 이상 감소할 것으로 보인다.
정유사들은 원유 재고를 고려해 이달 말부터 정제시설 가동을 줄이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4~5월 들어서는 핵심 설비 가동률이 50~60%대로 줄어들 것으로 예상된다. 이 경우 원유를 안정적으로 정제하고 제품 품질을 맞출 수 있는 최소 가동률(70%대) 밑으로 떨어지게 된다.
●전 산업이 이란전쟁 영향권으로
‘산업의 쌀’로 불리는 에틸렌 부족은 화학업체를 넘어 조선, 자동차 등의 타격으로 이어졌다. 중동발 공급망 쇼크로 글로벌 정유 설비들의 가동률이 연쇄 하락하면서 에틸렌 원재료인 나프타 부족 현상이 발생했기 때문이다.
당장 조선업계는 철판 절단용 에틸렌 재고 고갈로 정부에 긴급 지원을 요청했다. 플라스틱 원료비가 한 달 새 t당 150만 원에서 230만 원으로 50% 넘게 뛰면서 배달 용기 및 소비재 생산 차질 우려도 커지고 있다. 완성차 업계 역시 고무 부품용 에틸렌 부족에 더해, 국내 석유화학업체로부터 내·외장재 핵심 원료인 ABS(아크릴로니트릴 부타디엔 스티렌) 공급에 대한 ‘불가항력’ 통보를 받으며 생산 차질이 예상된다.
반도체와 바이오 등도 이번 전쟁의 영향권에 진입했다. 카타르 액화천연가스(LNG) 시설 피격으로 반도체 필수 냉매인 헬륨 가격은 1주일 새 50% 급등했다. 바이오 업계는 중동 항구 폐쇄와 바이어 계약 취소로 신음하고 있다.
중동발 공급망 붕괴 쇼크가 글로벌 성장률 둔화와 맞물려 ‘수요 절벽’으로 이어지는 상황은 더욱 우려스럽다. JP모건은 이번 전쟁이 장기화될 경우 전 세계 상반기(1~6월) 글로벌 성장률이 1.2%포인트 하락할 것으로 추산했다. 이 경우 우리 기업들은 공급망 붕괴와 수요 침체라는 이중고에 시달릴 수밖에 없다. 김대종 세종대 경영학과 교수는 “한국 경제는 대외 무역 의존도가 높고 에너지를 전량 수입하는 구조”라며 “이번 사태가 장기화할수록 피해가 커질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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