갑작스러운 죽음을 맞이한 이가 강물에 휩쓸려 내려가며 남긴 마음(‘물먹은 편지’). 상반신은 포유류, 하반신은 어류인 인어들이 떠나는 험난한 순례(‘축제’)와 버스 정류장을 배경으로 펼쳐지는 이주 노동자와 난민의 삶(‘이곳은 정류장이 아닙니다’)….
한국 소설가들이 기후 위기가 일상이 된 시대에 ‘사라지는 것에 보내는 애도사’를 주제로 써 내려간 단편을 모았다. 이 책은 사라져 가는 세계의 끝에서 소설가 5명이 한 사람에게 편지를 띄운다는 공통의 주제로 시작한다. 국제 환경단체인 그린피스와 출판사가 협업한 기획으로, 소설가들이 이미 사라져 버린 존재를 기억하거나 위기에 처한 존재를 지켜내려는 의지를 담았다. 출간 전 900여 명의 후원을 받아 만들어진 책이기도 하다.
김멜라의 ‘물먹은 편지’는 언어가 없던 시대에 살던 존재 ‘검저리’가 물에 빠진 상황으로 시작한다. 빠진 몸이 물결에 깎여 나가며 점차 죽음을 맞이하는 검저리가 삶을 되돌아보며 남긴 생각은 글로 남길 수도, 동굴 벽에 새겨질 수도 없다. 물 위에 쓴 편지처럼 전해질 수도 없다. 사라지기 때문에 역설적으로 그 말은 작품 안에서 더 뚜렷해진다.
김보영의 ‘축제’에선 인어들이 번식을 위해 성지로 향한다. 이 종족은 멸종 위기에 처했지만, 그럼에도 신성한 생명의 축제를 펼치고, 삶을 꽃처럼 피우고 물처럼 어우러진다. 서로의 아름다움에 이끌려 경의와 호의를 나누고, 너그러움으로 솟아오르는 생명의 활력이 넘친다.
한국 사회의 경계에 머무는 이주 노동자와 난민의 삶을 그린 김숨의 시적 산문 ‘이곳은 정류장이 아닙니다’는 버스정류장을 배경으로 인물들의 이야기와 목소리를 점점 희박해지는 말로, 완전하지 않은 한국어로 그려낸다. 완결성을 갖추지 않은 서술 방식은 온전한 뜻보다 ‘빈자리’에 더 집중하게 만든다.
기후 변화로 커피가 귀해진 미래 사회에서 고립된 생활을 이어가는 인물이 등장하는 ‘까마귀에게’(박솔뫼), 일제강점기 매축(埋築)되어 지도에서 지워진 마을의 풍경을 기록하며 애도하는 ‘매축지 마을 수국 화분’(정영선) 등도 수록됐다. 작가들은 위기의 상황에서 슬퍼하거나 수동적인 애도에만 머물지 않고, 서로를 의지하며 힘을 다지는 계기를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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