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광장/전재성]이란 출구전략 부재가 드러낸 美 싱크탱크의 약화

  • 동아일보

전술 성공에도 전략 공백 드러낸 이란 공습
그 이면에 美 정책-지식생태계 약화 있어
정치화된 외교 속에 축소되는 정책공동체
외교-민간 對美채널 다변화하며 대응해야

전재성 객원논설위원·서울대 정치외교학부 교수
전재성 객원논설위원·서울대 정치외교학부 교수
미국의 이란 공격은 놀라운 군사적 성공을 거뒀다. 미국과 이스라엘의 공습은 37년간 철권통치를 이어 온 알리 하메네이를 비롯한 이란 지도부와 주요 군사시설에 큰 타격을 가했고 단기간에 전장의 주도권을 쥐었다. 그러나 전쟁의 핵심은 첫 공습이 아니라 그다음에 무엇을 할 것인가에 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핵 위협 제거, 정권 교체, 협상 유도 등 일관성을 찾기 힘든 목표들을 번갈아 언급해 애초에 명확한 전쟁 목적이 있었는지조차 의심스럽게 하고 있다. 전술적 성공에도 전쟁이 어떤 상태에서 끝나야 하는지에 대한 정치적 엔드게임은 보이지 않는다.

이러한 행태는 지난해 12월 발표된 국가안보전략(NSS)에 제시된 미국의 대전략 구도가 실제 정책에 제대로 투영되지 않고 있음을 방증한다. 전략적 일관성이 결여된 채 진행되는 군사작전은 이란과 중동 지역 질서의 근간을 흔드는 것을 넘어 에너지 공급망과 세계경제 질서 전반에 예측 불가능한 충격을 던지고 있다. 정책 역량의 문제를 넘어 미국 외교정책의 개인화와 정치화 경향을 뚜렷하게 보여주는 사례다.

과거 미국 외교의 강점은 군사력을 전략으로 번역해 내는 두터운 정책·지식생태계에 있었다. 20세기 초 브루킹스연구소와 외교협회(CFR) 설립 이후 미국은 학계와 정부를 잇는 정교한 정책공동체를 유지해 왔다. 냉전기 랜드연구소와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 등 많은 싱크탱크들이 축적한 핵 전략과 국제질서 담론은 국가 이익을 정의하는 정책공동체의 산물이었다. 민간의 전문성을 공직에 수혈하는 개방형 임용과 정권 교체 시 싱크탱크와 정부를 오가는 리볼빙 도어(Revolving Door) 시스템, 즉 민관 인적 교류 체계는 미 외교의 복원력을 지탱하는 핵심축이었다. 양당의 전략가들은 싱크탱크라는 공론장에서 초당적으로 소통하며 국가 이익을 위한 지적 합의를 도출했고, 이 과정에서 축적된 지식은 관료 조직과 결합해 강력한 정책 실행력으로 이어졌다.

그러나 최근 미국에서는 이러한 정책·지식생태계의 기능이 눈에 띄게 약화되고 있다. 정치적 양극화는 싱크탱크와 학계까지 분절시키고 정책 논의의 공간을 축소시켰다. 정책 결정은 점점 더 좁은 정치권 내부로 수렴해 싱크탱크는 정책 형성 과정에 충분히 참여하지 못하고 있다. 정책 정보에 대한 접근도 제한적이고 장기적 대안을 설계할 공간도 줄어들고 있다.

특정 정치 진영의 논리를 사후에 정당화하는 ‘지식의 정치화’가 우선시되고 있다. 과거에는 관료와 전문가들의 장기적 식견과 아이디어가 학계와 싱크탱크에서 축적된 뒤 정부 정책으로 이어졌다. 반면 지금은 좁은 정치권 내부의 결단이 먼저 내려진 뒤 싱크탱크가 이를 수습하는 구조로 변질됐다. 이는 미국 정책·지식생태계의 약화와 침묵을 낳고 있다.

이러한 변화는 동맹국인 한국에 중대한 도전이자 기회이다. 한국의 대미 외교가 미 행정부와 밀착된 일부 싱크탱크에 집중되는 경향은 경계해야 한다. 분절된 미국 정책 환경에 대응하려면 정책생태계에 대한 포트폴리오 다변화가 필수적이다. 특정 진영에 매몰되지 않고 미 정책생태계 전체를 아우르는 폭넓은 네트워크를 구축해야 한다. 한국은 미국 내 다양한 정책공동체와 교류해 한국이 원하는 국제 질서의 방향을 제시하는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민간 차원의 ‘트랙 투’ 전략 대화는 이러한 역할을 수행할 수 있는 중요한 공간이다. 정부 간 외교 채널과 함께 학계와 싱크탱크, 정책 연구기관 간의 전략적 협력이 확대될 때 보다 안정적인 정책 대화가 가능해진다.

더불어 한국 내부의 정책·지식생태계도 재정비해야 한다. 그동안 정부 산하 연구소들은 국가 정책 수립을 지탱하는 핵심 기관으로서 중대한 역할을 해 왔다. 그러나 정권이 바뀔 때마다 연구 방향이 급격히 수정되는 단기성과 정치성의 굴레에서 자유롭지 못했다. 특정 정치 세력이나 기업 이익으로부터 독립된 민간 싱크탱크의 역할도 확충돼야 한다. 국제 질서가 근본적으로 변화하는 현 시점에 단기 정책 대응을 넘어 국제정치의 장기적 변화와 미래를 전망하는 연구가 함께 축적돼야 한다. 학계와 싱크탱크가 협력해 장기적인 질서 담론을 발전시키고 한미 간 전략 대화를 통해 이러한 연구 성과를 공유하는 구조가 필요하다.

국제 질서가 빠르게 변화하는 지금 한국은 단순한 정책 수용자가 아니라 전략적 아이디어를 제시하는 참여자가 돼야 한다. 미국 정책생태계가 겪고 있는 변화를 보면서 한국이 장기적 전략 연구와 국제적 정책 네트워크를 기반으로 새로운 정책 담론을 만들어 가야 할 당위성이 더욱 커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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