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리 점령한 ‘탄핵 찬반’ 현수막… “이틀간 150개 없애도 우후죽순”

  • 동아일보
  • 입력 2025년 3월 14일 03시 00분


대책없는 도심 ‘현수막 공해’
계엄 이후 정치 관련 현수막 늘고… 尹 탄핵선고 앞 불법 게시물 증가
“길거리 정치구호 넘쳐 스트레스
안전까지 위협… 법 개정해 제한을”

13일 오전 서울 종로구 광화문역 인근에 윤석열 대통령의 탄핵에 찬성하는 내용을 담은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민노총)의 현수막이 걸려 있는 가운데 종로구 직원들이 불법 현수막을 철거하고 있다. 신원건 기자 laputa@donga.com
13일 오전 서울 종로구 광화문역 인근에 윤석열 대통령의 탄핵에 찬성하는 내용을 담은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민노총)의 현수막이 걸려 있는 가운데 종로구 직원들이 불법 현수막을 철거하고 있다. 신원건 기자 laputa@donga.com
“지난 설 연휴엔 이틀간 현수막 150개를 처리한 날도 있어요. 탄핵 관련된 내용이 70∼80%였습니다.”

13일 불법 현수막을 단속하기 위해 구청을 나서던 서울 종로구 관계자는 말했다. 12·3 비상계엄과 탄핵 정국을 거치며 거리에 탄핵 찬성과 반대를 주장하는 현수막이 우후죽순 늘고 있다. 대통령 탄핵심판 선고를 앞두고 불법 현수막도 증가하면서 지나친 현수막 정치에 피로하다는 불만은 물론이고 안전상 위험하다는 지적까지 나오고 있다.

● 불법 현수막, 2시간 새 10건 철거

13일 오전 동아일보는 종로구 직원들의 단속에 동행했다. 직원들은 서울 종로구 일대에서 단 2시간 동안 10건의 불법 현수막을 발견해 철거했다. 10건 중 8건이 탄핵 관련 내용이었다. 탄핵 찬성과 반대 내용이 각 4건이었다.

단속팀은 지하철 광화문역 인근에서 ‘내란 우두머리 윤석열 구속하라’, ‘내란비호 검찰총장 심우정 사퇴하라’ 등의 문구가 적힌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민노총)의 현수막 4개를 철거했다. 11일 등 열린 민노총 집회에 사용된 현수막이었다. 집회 시 집회 신고 장소에 현수막을 걸 수 있지만, 이들은 집회 신고 장소를 벗어난 곳에 걸려 불법이었다.

지하철 1호선 종각역 인근에 설치된 우리공화당의 탄핵 반대 현수막은 정당 현수막 규정을 지키지 않아 철거 대상이 됐다. 신원건 기자 laputa@donga.com
지하철 1호선 종각역 인근에 설치된 우리공화당의 탄핵 반대 현수막은 정당 현수막 규정을 지키지 않아 철거 대상이 됐다. 신원건 기자 laputa@donga.com
지하철 1호선 종각역과 우정국로 일대에 걸린 우리공화당의 ‘尹 탄핵반대 이재명 즉각구속’ 현수막 3건은 게시 기간 등을 표시하지 않아 철거 대상이 됐다. 옥외광고물법 및 시행령에 따르면 △행정동별 2개 초과 △정당 연락처, 게시 기간 등 누락 △보행자 안전 저해 등엔 철거 및 과태료가 부과된다. 종각역 인근 교차로에 ‘30번째 탄핵협박 민주당이 내란이다’가 적힌 국민의힘 현수막 역시 철거돼야 했다. 지면으로부터 1.9m 높이로 설치됐기 때문이다. 교차로의 가장자리나 도로의 모퉁이, 횡단보도 인근에선 사람들의 시야를 가리지 않기 위해 현수막 본체가 지면으로부터 2.5m 이상 높이에 설치돼야 한다.

이처럼 정당 현수막들도 우후죽순 걸리고 있지만 과태료를 무는 경우는 거의 없다고 한다. 2022년 법 개정으로 정당 현수막은 별도 신고나 허가 없이 설치할 수 있게 됐다. 한 지자체 관계자는 “별다른 규제가 없으니 정당들이 거리낌 없이 현수막을 건다”며 “지자체 입장에선 정당과 마찰이 우려되다 보니 규정을 어겨도 과태료를 부과하기 쉽지 않다”고 전했다.

● 시각 공해에 안전 문제까지

탄핵 관련 현수막이 넘쳐나면서 현수막 단속팀은 매일 비상 상태다. 종로구 관계자는 “(비상계엄 이후인) 지난해 12월 이후 시내 중심가에만 달리던 정당 현수막들이 주거지까지 우후죽순 늘어나고 있다”며 “특히 이번 주에는 헌법재판소 인근 등에서 주민들의 불법 현수막 민원이 많이 들어오고 있다”고 전했다. 행정안전부에 따르면 계엄 직후인 지난해 12월 한 달 동안만 개수 위반, 금지장소 위반, 규격 위반 등으로 지자체가 수거한 불법 정당 현수막은 6913개로 전달(5191개)에 비해 33% 늘었다. 서울 영등포구에 사는 홍모 씨(42)는 “매일 집회 소음에 뉴스까지 시끄러운데 현수막 정치 구호까지 넘쳐나 스트레스를 받는다”고 했다.

최근엔 지자체장까지 정치적 문구를 담은 현수막을 걸어 ‘정치적 중립 위반’ 논란이 일기도 했다. 7일 충남 부여군 여성문화회관 외벽엔 ‘부여군수 박정현’ 이름으로 ‘헌정유린 국헌문란 윤석열을 파면하라’는 문구의 대형 현수막이 게시됐다.

더 큰 문제는 이런 현수막이 안전사고를 일으킬 수도 있다는 점이다. 현수막이 보행자와 운전자의 시야뿐 아니라 통행을 막기 때문이다. 서울 마포구에 거주하는 직장인 김모 씨(58)는 “정치 현수막이 신호등을 가려 아찔했다”고 했다. 김윤태 고려대 사회학과 교수는 “현수막을 통한 과한 정치적 구호는 혐오를 불러일으키거나 갈등을 유발한다”며 “또한 (불법) 현수막은 교통사고 등의 문제도 야기할 수 있기 때문에 부정적인 여론이 많으면 법규를 개정해 제한할 필요가 있다”고 제언했다.

#탄핵 찬반#현수막 공해#12·3 비상계엄#탄핵 정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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