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기차 의무화 폐기’ 행정명령 손질
백악관과 협의 거쳐 필요 예산 집행
세액공제 폐지까지 가지 않을 수도
韓주요기업, 작년 美로비 금액 최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취임 첫날 ‘전기차 의무화’ 정책 폐기 행정명령을 발동한 가운데 백악관이 인플레이션감축법(IRA) 예산 집행을 일부 중단시켰다. 백악관이 IRA 관련 모든 예산이 아닌, ‘그린 뉴딜’ 지출만 중단하라는 지시를 내리면서 국내 산업계가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는 전기차 세액 공제는 상대적으로 영향을 덜 받을 것이란 전망도 나온다.
22일 백악관 예산관리국(OMB)은 행정부 기관장들에게 전날 공문을 보내 IRA 및 인프라투자법(IIJA) 지출 중 일부를 중단시켰다고 밝혔다. 영국 파이낸셜타임스(FT)는 IRA와 인프라법을 근거로 에너지부가 기존에 승인한 500억 달러 대출과 신규 대출을 검토 중인 2800억 달러 등 총 3300억 달러(약 474조 원)의 예산 집행이 중단될 것으로 예상했다. 대출을 받은 수혜 대상은 주로 전기차 충전 인프라를 설치하는 기업들이다. 조 바이든 행정부는 IRA 등에 따라 탄소 배출 감축과 교통 인프라 재건 등을 위해 조세 혜택을 포함해 1조6000억 달러(약 2300조 원)를 투입하기로 했었다.
다만, 지출 중단 규모가 당초 예상보다 줄어들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트럼프 대통령이 20일 내린 행정명령엔 IRA와 인프라법에 따라 책정된 자금의 지출을 즉각 중단하라고 돼 있어 모든 자금의 지출이 중단된다는 해석이 지배적이었다. 하지만 백악관의 21일 공문엔 두 법에 따른 모든 자금 지출을 중단하라는 게 아니며, 트럼프 대통령의 에너지 정책과 어긋나는 그린 뉴딜 관련 지출만 중단하라는 뜻이라고 기재돼 있다. 또 각 기관장이 백악관과 협의를 거쳐 필요한 예산은 집행할 수 있다는 내용도 포함됐다. 이에 대해 FT는 IRA에 따른 세액 공제는 영향을 받지 않을 가능성이 크다고 전했다.
국내 산업계에선 전기차 세액 공제 폐지는 피하더라도, 전기차 보급 축소는 불가피할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김경유 산업연구원 연구위원은 “전기차 수요가 줄어들 것으로 보고 대응책을 마련해야 하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당초 바이든 정부는 전기차 한 대당 최대 7500달러(약 1080만 원) 규모의 세액 공제 혜택을 제공해 전기차 의무화를 달성하겠다는 계획이었다. 전기차 의무화 정책은 바이든 행정부가 지난해 3월 서명한 행정명령이다. 2023년 7.6%에 그쳤던 미국 신차 내 전기차 비중을 2032년까지 56%로 확대하는 것을 목표로 했지만 트럼프 행정부가 이를 철회했다. 이에 대해 민주당은 전기차 의무화를 폐지한 트럼프의 행정명령이 불법적이며, 수많은 미국인의 일자리를 없앤다”고 비판하고 있다.
한편 한국 기업들이 바이든 행정부에서 IRA와 반도체 지원법(칩스법) 등에 맞춰 대미 투자를 확대하고 트럼프 2기 행정부 출범에 대비하면서 지난해 대미 로비 금액은 역대 최고 수준을 기록했다. 22일 기준 미국 상원에 접수된 로비 신고 내용을 종합하면 주요 기업의 지난해 총 로비 금액은 각각 △삼성그룹 698만 달러(약 101억2100만 원) △SK그룹 559만 달러(약 80억3000만 원) △한화그룹 391만 달러(약 56억2000만 원) △현대차 328만 달러(47억1500만 원)였다. 기업들은 IRA에 따른 세액 공제와 보조금 신청, 전기차·배터리 제조 등의 현안을 의제로 로비를 진행했다고 보고했다.
임현석 기자 lhs@donga.com
김윤진 기자 kyj@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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