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디에도 뿌리내리지 못한 탈북자의 애처로움 담아”

  • 동아일보
  • 입력 2024년 2월 28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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넷플릭스 영화 ‘로기완’ 내달 1일 공개
송중기, ‘화란’ 이어 어두운 연기 도전
막막하고 불안한 감정 섬세하게 표현

영화 ‘로기완’에서 난민 지위를 얻지 못한 채 노숙하고 있는 기완(송중기·오른쪽) 곁에 방황하는 한국인 마리(최성은)가 나타난다. 넷플릭스 제공
영화 ‘로기완’에서 난민 지위를 얻지 못한 채 노숙하고 있는 기완(송중기·오른쪽) 곁에 방황하는 한국인 마리(최성은)가 나타난다. 넷플릭스 제공
공중화장실에서 잠을 자고, 공원 쓰레기통에 버려진 빵을 허겁지겁 먹는다. 식중독에 걸려 하루 종일 쓴 물을 게워내고, 몸을 녹이러 다가간 모닥불 옆에선 불량 청소년들에게 구타를 당한다. 참담한 밑바닥살이를 하는 기완(송중기)의 가슴팍에는 사실 달러 뭉치가 든 지갑이 있다. 하지만 이 돈을 도저히 쓸 수가 없다. 죽은 엄마의 ‘시신 값’이라서다. 탈북한 뒤 불법 체류 중이던 중국에서 엄마는 기완을 지키려다 사고로 죽고, 그 시신을 병원에 팔아 밀항 비용을 마련했다. 엄마의 돈을 품에 안고 죽지도, 살지도 못하는 기완의 인생에 어느 날 밥 한 끼 차려주고 싶은 사람이 등장하면서 풍경이 달라지기 시작한다. 벨기에로 망명한 탈북자와 상처를 입은 채 그의 곁에 나타난 여자의 이야기를 담은 넷플릭스 영화 ‘로기완’이 다음 달 1일 공개된다.

단편영화 ‘수학여행’, ‘MJ’로 영화계에서 주목받은 김희진 감독의 장편 데뷔작이다. 김 감독은 “낯선 언어와 추위, 언제 난민 지위를 인정받을 수 있을지 기약 없는 기다림 속에 놓인 사람들이 느낄 막막함과 불안함 그리고 쓸쓸함. 정도가 가늠이 안 되는 그런 감정들을 담아내고 싶었다”고 했다. 영화 속에서 기완은 망명하긴 했지만 조선족이 아니라는 사실을 증명하지 못해 추방 위기에 놓인다. 어디에도 뿌리내리지 못하고, 어디서도 떠날 수 없는 애처로운 모습을 섬세하게 담아냈다.

배우 송중기는 영화 ‘화란’(2023년)에 이어 어둡고 척박한 인물을 연기했다. ‘화란’에서 폭력조직의 중간 보스 역을 맡았던 그는 이번에는 화장실에서 먹고 자는 노숙인을 연기했다. 똑똑하고 앳된 외모로 주목받았던 그가 소외된 자를, 그것도 대사보다 표정으로 말하는 쉽지 않은 작품을 연달아 선택한 건 눈여겨볼 만하다. 그의 필모그래피에서 전환점이 될 것 같다. 송중기는 27일 제작발표회에서 “부족한 배우의 입장에서 도전해 보고 싶은 역할이었다. 사실 6∼7년 전에 공감이 안 되는 부분이 있어서 감히 (이 역할을) 거절했었다. 시간이 지나면서 ‘왜 이 좋은 영화가 제작이 안 되는 거지?’라는 생각에 후회했다”고 말했다.

‘로기완’은 액션·스릴러 장르의 작품이 주를 이루는 넷플릭스에서는 보기 드문 소재를 다룬 영화다. 투자자를 모으기 어려운 장르라 기획한 지 10년이 돼서야 완성될 수 있었다. 원작 소설 ‘로기완을 만났다’(창비)는 13년 만에 개정판으로 재출간됐다.



최지선 기자 aurinko@donga.com
#넷플릭스#영화#로기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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