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상위권 학생들의 의대 쏠림 현상… ‘불행한 개인’ 양산할 수도”

  • 동아일보
  • 입력 2023년 6월 22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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폴 김 스탠퍼드大 교육대학원 부학장
학생 스스로 잠재력 찾을 수 있도록 미래 교육은 ‘티칭’ 아닌 ‘코칭’ 지향
수능 출제 방향 바꿔도 경쟁 불가피… 미국의 SAT처럼 자격고사화해야
한국 사교육 과몰입은 군중심리 탓… 다양한 가치 인정하는 인식 전환을

폴 김 미국 스탠퍼드대 교육대학원 부학장 겸 최고기술책임자(CTO)는 21일 동아일보와의 e메일 인터뷰에서 “자신의 열정과 역량에
 맞지 않는 직업을 가진 사람들이 많은 사회는 당연히 행복지수가 낮고 자살률도 높다”며 “소득이나 안정성으로 학생의 미래를 
얘기해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 폴 김 교수 제공
폴 김 미국 스탠퍼드대 교육대학원 부학장 겸 최고기술책임자(CTO)는 21일 동아일보와의 e메일 인터뷰에서 “자신의 열정과 역량에 맞지 않는 직업을 가진 사람들이 많은 사회는 당연히 행복지수가 낮고 자살률도 높다”며 “소득이나 안정성으로 학생의 미래를 얘기해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 폴 김 교수 제공
“스스로 진화할 역량을 갖추지 못한 대학은 정부가 굳이 수혈하며 살려낼 이유가 없습니다.”

미국 스탠퍼드대 교육대학원 부학장이자 최고기술책임자(CTO)인 폴 김(김홍석·53) 교수는 20일 동아일보와의 e메일 인터뷰에서 “대학이 시대의 요구에 부응하지 못하면 문 닫는 건 자연스러운 현상”이라며 이같이 밝혔다. 교육공학자인 그는 스탠퍼드대에서 23년 동안 혁신적인 교육 시스템을 개발하고 교육공학과 관련된 강의를 해왔다. 최근 우리나라에서 대학 개혁이 이슈가 된 가운데 김 교수의 고등교육에 대한 생각을 들어봤다.

● 대학은 ‘코칭’하는 조직으로 진화해야
학령인구 감소와 맞물려 대학의 재정 위기가 계속 심화하는 가운데 향후 5년간 약 1000억 원의 정부 지원을 받는 교육부 ‘글로컬 대학’ 사업 예비 지정명단이 20일 발표됐다. 대학별로 마련한 자구책으로 높게 평가받은 곳들이다.

김 교수는 “앞으로 대학은 학생들이 자신의 역량을 찾고, 개발하며 창의적으로 일을 시작할 수 있도록 ‘코칭’하는 조직으로 거듭나야 한다”고 강조했다. ‘코칭’은 학생 개개인이 주도적으로 자신의 잠재력을 최대한 발휘해 성과를 낼 수 있도록 돕는 것을 말한다.

김 교수는 앞으로 교육의 역할이 ‘티칭’에서 코칭으로 변화해야 한다고 주장해 왔다. 2017년에는 함돈균 고려대 민족문화연구원 HK(인문한국) 교수 겸 문학평론가와 한국의 교육 현실을 주제로 대담한 내용을 담은 ‘교육의 미래, 티칭이 아니라 코칭이다’를 펴내기도 했다.

스탠퍼드대에서 23년째 혁신 교육 시스템 개발을 담당해온 그는 정부가 2025년 전국 초중고교에 전면 도입하는 ‘인공지능(AI) 디지털 교과서’의 성공 여부가 ‘교육 철학’에 달렸다고 말했다.

김 교수는 “제대로 된 교육 철학이 담기지 않으면 최악의 교과서가 될 수도 있다”고 경고했다. 단순히 종이를 디지털화하는 건 아무 의미가 없다는 얘기다. 그는 “미래에 학생들에게 가장 필요한 역량은 문제 해결 능력”이라며 “이를 키워줄 교과서를 설계하는 것이 가장 시급하다”고 했다. 이어 “AI는 교사들의 ‘코칭’ 역량 개선에 활용될 수 있다는 점에서 긍정적인 부분도 있다”고 덧붙였다.

또 정부가 내년부터 시범 운영할 예정인 ‘협약형 공립고’(가칭) 역시 장밋빛 미래만 기대해선 안 된다는 게 그의 조언이다. ‘협약형 공립고’의 모델이 된 미국의 ‘차터스쿨’은 예산은 정부가 지원하고 민간이 자율적으로 운영하는 학교다.

김 교수는 “협약형 공립고가 성공하거나 실패할 확률은 정확히 반반”이라며 “제대로 된 교육 철학과 미래 비전을 가지고, 실행력 있게 꾸준히 추진해야 한다”고 했다. 이어 그는 “교육 개혁은 장기적인 안목을 가지고 지속적으로 혁신해야 이뤄지는 여정”이라고 강조했다.

인천 부평에서 나고 자란 그는 한국에서 부진한 성적으로 고등학교를 마친 뒤 미국 조지아사우스웨스턴대로 유학을 가 세계적인 교육공학자가 된 인생 역전 스토리로 국내에 잘 알려졌다.

● 초중고 교과에 창업·창직 교육 절실
김 교수는 입시제도의 방향성에 대해서도 언급했다. 1994년 대학수학능력시험이 도입된 뒤 30년간 이어져 오면서 나타난 부작용이 작지 않다. 지난해 26조 원에 육박한 사교육비가 대표적이다. 그는 “수능을 미국의 대학입학자격시험(SAT)처럼 자격고사화하는 방향이 맞다고 본다”며 “지금은 아무리 수능의 출제 방향 등을 개편해도 결국 남보다 잘 보기 위해 경쟁해야 하는 구조”라고 지적했다.

이와 함께 그는 초중고 교육 과정에 창업·창직 교육을 넣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학생들이 재능과 아이디어를 바탕으로 새로운 일거리를 창조해내는 방법을 가르쳐야 한다는 얘기다. 김 교수는 “중고교생들이 동아리나 클럽 등 다양한 학교 밖 활동을 하면서 자신만의 재능과 관심사를 스스로 찾도록 해야 한다”며 “교사의 역할도 단순한 지식 전달에 그쳐선 안 된다. 적극적인 코칭으로 가야 한다”고 말했다.

미국은 초중고교뿐 아니라 대학에서도 첫 2년 동안은 전공을 정하지 않는 경우가 많다. 한국의 자율전공학부와 비슷하게 ‘전공 미지정(undeclared major)’ 상태로 입학해 다양한 수업을 듣고 경험한 뒤 3학년 때 전공을 택하는 것이다. 김 교수는 “한 우물을 파는 건 대학 3학년 때부터 해도 늦지 않는다”고 했다.

그는 이공계 최상위권 학생들의 의대 쏠림 현상에 대해 쓴소리를 했다. “자신의 관심, 열정, 특기와 무관하게 고소득, 대세, 간판을 생각하고 전공을 고르면 결국 열정을 갖고 일할 수 없을 것”이라며 “그렇게 되면 일하는 본인도 불행해지지만 그 사람을 믿고 함께 일하는 주위 사람도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의대 쏠림 현상은 결과적으로 ‘불행한 개인들’을 양산하게 될 것이라는 경고다.

지난해 26조 원을 기록한 사교육비는 의대 쏠림 현상과 맞닿아 있다. 정부가 최근 수능에서 ‘킬러 문항’을 출제하지 않겠다고 발표한 것은 과도한 사교육으로 수험생과 학부모 모두 고통받고 있다는 판단에서다.

한국의 입시제도를 지켜봐 온 김 교수는 “많은 부모들이 군중심리에 사로잡혀 사교육에 현혹된다”며 “정부도 대중적 두려움에 묻혀 수능 개편보다 더 나아간, 새로운 시도를 못 하는 것 같다”고 했다. 그는 “사회 전반적으로 다양한 삶의 가치를 인정하는 인식의 전환이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폴 김 교수 약력
△1970년 인천 출신 △1993년 미국 조지아사우스웨스턴대 컴퓨터공학과 졸업 △1999년 서던캘리포니아대(USC) 교육공학 석박사 △1997∼2000년 피닉스대 최고기술책임자(CTO) △2001년∼현재 스탠퍼드대 교육대학원 부학장 겸 CTO

최훈진 기자 choigiza@donga.com
#폴 김#스탠퍼드大 교육대학원 부학장#미래교육#티칭 아닌 코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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