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가 아프면 나도 아파”… 물고기도 동료가 고통 느낄 때 괴로운 감정 공유한다

  • 동아일보
  • 입력 2023년 3월 27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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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과 유전자 비슷한 ‘제브라피시’
두 무리 중 한쪽에 스트레스 주면
다른 쪽도 함께 경직반응 일어나
감정 호르몬 ‘옥시토신’ 분비되기도

동료의 고통을 인지한 물고기의 공감 반응을 관찰하는 실험에 사용된 제브라피시. 사진 출처 위키미디어
동료의 고통을 인지한 물고기의 공감 반응을 관찰하는 실험에 사용된 제브라피시. 사진 출처 위키미디어
물고기도 포유류 동물처럼 고통을 느끼는 동료를 보며 공포감과 괴로운 감정을 느끼는 것으로 나타났다. 그간 연구에서는 포유류 동물이 괴로워하는 동종 생물을 봤을 때 감정적 변화가 일어난다는 사실이 확인됐지만 이 같은 공감 능력이 물고기에게서도 발현되는지는 밝혀지지 않았다. 다른 개체의 아픔에 반응하는 생체 메커니즘은 포유류와 어류를 포함하는 모든 척추동물에게서 아주 오랜 시간 전해져 왔다는 분석이다.

루이 올리베이라 포르투갈 응용심리대 교수 연구팀은 동료의 감정이나 행동을 반영하는 공감 능력이 어류에게서도 확인됐다는 연구 결과를 국제학술지 ‘사이언스’에 23일(현지 시간) 발표했다.

연구팀은 사람이나 동물이 동료가 고통을 느끼는 모습을 인지했을 때 활성화되는 ‘옥시토신 호르몬 신호’에 주목했다. 뇌 시상하부에 위치한 신경세포에서 합성·분비되는 옥시토신은 감정을 조절하는 역할을 하는 호르몬이다. 만일 물고기에게 공감 능력이 있다면 감정적 반응이 일어날 만한 상황에서 이 옥시토신 호르몬 신호가 활성화돼야 한다는 것이다. 연구팀에 따르면 앞서 포유류를 대상으로 한 실험에서는 실제 포유류 동물이 공감 행동을 할 때 이 옥시토신 호르몬 신호가 활발해지는 것이 관찰됐다.

실험에는 열대어의 한 종류인 ‘제브라피시’가 사용됐다. 크기 5cm 정도의 작은 열대어인 제브라피시는 온몸에 얼룩말 같은 줄무늬가 있어 이 같은 이름이 붙었다. 생명력이 강해 관상어로도 종종 사용된다. 최근에는 동물실험에서 쓰이는 경우가 확대되고 있다. 200∼300여 개의 알을 낳을 정도로 번식력이 높을 뿐만 아니라 유전자의 90%가 인간과 일치하기 때문이다. 어류에게 포유류와 같은 공감 능력이 있는지 확인하기에 적합한 물고기인 셈이다.

연구팀은 제브라피시를 두 무리로 나눠 한 그룹은 고통을 받는 상황에 노출시키고 다른 무리는 이를 지켜보도록 했다. 제브라피시에게 고통을 주기 위해선 모래톱과 수초를 갑작스럽게 교체했다. 급격한 환경 변화는 물고기에게 스트레스를 주는 주된 요인이다. 관찰 결과 환경 변화에 ‘조난’당한 제브라피시가 물고기의 전형적인 스트레스 반응인 경직 증상을 나타냈을 때 이를 지켜보던 다른 무리의 제브라피시에게서도 동일한 경직 반응이 나타났다. 공포의 감정이 전염된 것이다.

이윽고 제브라피시는 고통받는 동료 쪽으로 헤엄쳐 접근했다. 연구팀은 “이러한 행동은 동료의 경직 반응을 단순히 흉내 내는 것과는 구별되는 사회적 행동으로 추정된다”고 말했다.

제브라피시가 정말로 공감 능력을 발현했는지 확인하기 위해 연구팀은 고통받는 동료를 보고 경직 반응이 일어난 제브라피시의 신경세포를 현미경으로 분석했다. 그 결과 옥시토신 호르몬 신호가 생물학적으로 유의미하게 활성화된 것이 확인됐다. 옥시토신 호르몬을 분비하는 유전자를 제거한 제브라피시를 통한 검증 실험도 이뤄졌다. 옥시토신 호르몬이 생성되지 않는 제브라피시는 스트레스 상황에 처한 동료를 인식해도 경직 반응이나 접근하려는 모습을 일절 보이지 않았다.

연구팀은 제브라피시와 포유류 동물을 비롯해 다양한 척추동물에게서 공통적으로 나타나는 공감 능력이 아주 오랜 시간 전해져 내려왔을 수 있다고 설명했다. 어류와 포유류의 공통된 조상 생물체가 존재했던 4억5000만 년 전에 형성된 생체 기능일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박정연 동아사이언스 기자 hesse@donga.com
#물고기#제브라피시#감정 호르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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