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적 솔 선보인 47년 차 밴드[김학선의 음악이 있는 순간]

  • 동아일보
  • 입력 2023년 3월 22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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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4〉 사랑과 평화 ‘저 바람’

김학선 대중음악평론가
김학선 대중음악평론가
이달 초에 제20회 한국대중음악상 시상식이 열렸다. ‘20’이라는 숫자가 무색하게 아직 시상식의 존재를 아는 사람보단 모르는 사람이 더 많을 것 같다. 2004년 시작한 한국대중음악상은 인기나 차트 성적이 아닌 음악적 성과를 최우선 기준으로 두고 수상자를 결정해왔다. 음악적 성과를 기준으로 두다 보니 대중의 관심은 덜했고, 후원을 받는 것도 여의치 않았다. 20회 시상식을 화려하게 열지 못하고 유튜브를 통해 공개한 이유이기도 하다. 그럼에도 ‘우리가 돈이 없지, 가오가 없냐’는 정신으로 스무 번의 시상식을 만들어왔다.

한국대중음악상이 다른 음악 시상식과 다른 건 크게 두 가지이다. 먼저 각 장르에 대한 후보를 정하고 상을 준다. 당연히 한국에도 수많은 장르의 음악인이 있지만, 그 많은 음악 시상식 가운데 장르를 나누고 음악인을 조명하는 시상식은 한국대중음악상을 제외하곤 단 하나도 없다. 모르는 이들이 본다면 한국엔 케이팝과 트로트만 존재하는 줄 알 것이다. 다른 하나는 매회 공로상 수상자를 선정한다는 것이다. 첫 수상자였던 이정선을 시작으로 김민기, 박성연, 송창식, 신중현, 조동진, 조용필 등 거인들이 공로상을 수상했다. 이 위대한 이름들이 없었다면 한국 대중음악 역사는 너무나 초라했을 것이기에 진지한 논의를 거쳐 수상자를 결정한다.

올해 공로상 수상자는 밴드 ‘사랑과 평화’였다. 1976년 활동을 시작한 전신 ‘서울나그네’부터 치면 햇수로 47년, 사랑과 평화로 이름을 바꾸고 첫 앨범을 발표한 1978년으로 따져도 45년째 활동하고 있는 국내 최장수 밴드다. ‘최장수’란 이유만으로 상을 수여한 것은 아니다. 사랑과 평화는 당시 한국에선 듣기 어려웠던 솔(soul)과 펑크(funk) 음악을 선구적으로 들려준 밴드다. 지금 많은 한국 젊은 음악인이 몰두하고 있는 ‘흑인음악’을 이미 45년 전에 대중에게 선보였고, ‘리듬’의 힘이 얼마나 강력할 수 있는지를 알려줬다.

1978년 첫 앨범이 나왔을 때 많은 이들이 놀랐다. 이장희의 곡에 사랑과 평화의 연주가 더해져 명반이 탄생했다. ‘한동안 뜸했었지’가 대중적으로 가장 큰 사랑을 받았지만, 기타리스트 최이철이 만든 ‘저 바람’은 놀라움 그 자체였다. 템포가 빠르지 않아도 이른바 ‘그루브(groove)’란 것이 무엇인지를 귀와 몸으로 알게 해줬다.

하지만 아쉽게 최이철의 연주를 지금 사랑과 평화에선 들을 수 없다. 창단 멤버인 이철호(보컬)와의 불화로 최이철이 밴드를 떠나 있기 때문이다. 불화 이후 정말 오랜만에 둘은 시상식 무대에 함께 섰다. 함께 무대에 오른 전 키보디스트 안정현은 “제 나이도 이제 적지 않은데, 죽기 전에 두 형과 함께 공연을 했으면 좋겠다”는 수상 소감을 전했다. 내 마음과 꼭 같다. 사랑과 평화의 사정을 알고 있는 음악 팬이라면 마음이 다르지 않을 것이다. 기왕이면 판을 더 벌여 그간 사랑과 평화를 거쳐 간 음악인들이 다 함께하는 무대를 만들었으면 좋겠다. 실로 대단한 음악 축제가 될 것이다. ‘저 바람’의 놀라움을 다시 경험하고 싶다.

김학선 대중음악평론가
#한국적 솔#사랑과 평화#저 바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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