낮엔 직장인, 밤엔 와인바 사장… ‘코시국’에도 연 7억 번 이 남자[복수자들]

  • 동아일보
  • 입력 2023년 3월 18일 15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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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수자들
영화 ‘올드보이’ 속 오대수가 15년간 군만두만 먹으며 칼을 갈았던 복수? 아닙니다. ‘킬빌’의 블랙맘바가 자신을 죽이려 한 보스를 처단하는 복수? 그것도 아닙니다. ‘복수자들’은 복수(複數)의 직업을 가진 사람들입니다. 한 가지 일만 하고 살기엔 지루하다고요? 새로운 일을 시작하고 싶지만 방법을 모르겠다고요? 본캐와 부캐, 양쪽을 오가는 복수자들이 직접 도전과 병행의 노하우를 전해드립니다.

서울 중구 비좁은 인쇄골목에 위치한 와인바 ‘십분의일’, 서울 강남구 가로수길에서 시작해 4호점까지 낸 와인바 ‘심퍼티쿠시’…. 이곳들의 공통점은 회사를 다니던 평범한 직장인이 삼삼오오 의기투합해 차린 와인바라는 점입니다. MZ세대 사이에서 ‘N잡’ 열풍이 불면서 회사를 다니며 요식업 창업을 하는 이들이 많아진 탓입니다.

‘용산국제업무지구’가 들어섬에 따라 재개발될 예정인 서울 용산구의 한 골목. 이곳에 자리한 와인바 ‘드포레’ 역시 8년 차 직장인 이민우 씨(가명·35)가 친구들 두 명과 함께 차린 곳입니다. 낮에는 직장인, 밤에는 와인바 사장으로 사는 그에게는 주말이 없습니다. 주중에는 회사를 다니고, 주말에는 ‘드포레’로 출근하기 때문입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이 한창이던 2021년 말 와인바를 창업해 영업시간제한이라는 난관에도 불구하고 연매출 7억 원을 달성하며 순항 중입니다.

직장인들은 한 번쯤 “나도 와인바나 할까?”라는 생각, 해보셨을 겁니다. 하지만 회사와 와인바 병행은 그리 만만치 않습니다. ‘월화수목금금금’을 사는 근면함은 물론이고, 신메뉴 개발, 손님 관리, 점포 확장 계획, 직원들과의 소통까지 신경 써야 할 일이 끝도 없습니다. 여행지에 노트북을 들고 가고, 퇴근 후에도 스마트폰에서 눈을 떼지 못할 정도로 일과 삶이 섞여 있지만, 이 씨는 2년 전으로 돌아가도 와인바를 창업할 것이라고 말합니다.

“오늘이 나의 가장 젊은 날”이기에 후회 없이, 하고픈 일에 모든 에너지를 쏟는다는 그를 ‘복수자들’이 지난달 24일 ‘드포레’에서 만났습니다. 그가 이토록 열심히 사는 이유(https://youtu.be/FwBOSw0WAPc)와, 연매출 7억 원을 달성한 팁(https://youtu.be/X8GOLKMh634)을 동아일보 유튜브 ‘복수자들’에서도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코로나19가 한창이던 2021년 말 서울 용산구에 와인바를 차린 8년 차 직장인. 동아일보 유튜브 ‘복수자들’ 캡처


―와인바 창업을 결심한 계기가 궁금해요.

회사를 다니다보니 제가 올라갈 수 있는 위치의 한계가 보이더라고요. 챗GPT 등 AI가 사람의 역할을 대체해가면서 근로 수명도 짧아지고 있잖아요. 직업 하나만으로는 미래가 보장되지 않는 것 같아요. 회사에서 더 이상 저를 필요로 하지 않을 때 당황하기보다 지금부터 차근차근 준비해서 일할 수 있는 수명을 최대한 연장하고 싶었어요. “난 이제 뭐 해 먹고 살지?”라는 고민과 맞닥뜨렸을 때 스스로가 무기력하게 느껴지기 싫어요.

―카페, 식당 등 다양한 선택지 중 왜 하필 와인바였나요?

첫 번째로 고려한 건 ‘단가’였어요. 소주를 파는 음식점은 좌석이 매일 가득 차도 일 매출이 높지 않아요. 술을 팔아야 돈이 남는데, 그중에서도 고가의 술을 파는 게 높은 매출에 유리해서 와인을 택했어요. 두 번째로는 와인바에는 주사를 부리는 취객이 다른 식당에 비해 상대적으로 덜합니다. 접객이 상대적으로 수월할 것이라고 판단했어요. 마지막으로는 저만의 아지트를 갖고 싶었어요. 나중에 벤처를 창업하고 싶은데, 미리 인맥을 쌓고 친해지기에 와인바가 가장 좋을 것 같았습니다.

―회사와 병행하기 힘드시지 않나요? 1주일 스케줄이 궁금해요.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는 오전 9시부터 오후 6시까지 회사 근무를 하고, 금요일 퇴근 후부터 토요일, 일요일은 와인바에서 일합니다. 주중에 회사 퇴근 후 와인바로 출근하는 삶도 살아 봤는데, 그렇게 하다 보니 회사 생활에 충실할 수가 없어서 주중에는 회사 일에만 집중하고 있어요. 금요일에 와인바 정리하고 집에 가면 새벽 1시에요. 토요일 점심까지 쭉 자다가 오후 5시쯤 와인바로 다시 출근하죠.

동아일보 유튜브 ‘복수자들’ 캡처


―회사 다니기도 힘들다는 직장인이 많아요. 이렇게 치열하게 사는 이유가 있나요?

저도 어렸을 땐 낙천적이고 걱정 없는 성격이었어요. ‘난 무조건 잘 될 거야’라는 막연한 확신도 있었고요. 그런데 21살 때부터 가세가 기울었어요. 내가 당연히 누리던 것들이 당연하지 않게 되면서 독하게 돈을 벌기 시작했어요. 제 통장 잔고는 늘 만 원이 안 됐거든요. 고등학교 졸업한 순간부터 집에서 일절 경제적 지원을 받지 않았고, 회사 인턴과 과외 4개를 병행하면서 부모님께 용돈을 드렸어요.

―직장인과 와인바 사장, 두 마리 토끼를 다 잡기 위한 본인만의 루틴이 있나요?

잠들기 전에 내일 할 일을 스마트폰 캘린더에 전부 다 적어요. 정말 별것 아닌 것까지도요. 일정은 타인과 한 약속이잖아요. 절대 잊어버리지 않고, 남들에게 약속한 내용을 반드시 기한 내에 실행하기 위해서 전부 다 적습니다.

동아일보 유튜브 ‘복수자들’ 캡처


자영업자들이 ‘줄도산’하던 코로나19의 한복판에서 요식업을 창업하기 위해서는 위기를 기회로 바라보는 대담함이 필요했습니다. 코로나19로 문을 닫은 식당들의 특징이 무엇인지 실패 사례를 공부했고, 차별화를 위해 미슐랭 레스토랑들을 전부 돌며 특징을 파악했습니다. 당시 권리금은 바닥을 쳤던 상황. 재개발이 예정된 용산에 ‘권리금 0원’으로 공간을 임대했습니다.

―코로나19가 한창 확산세일 때 창업을 결심하셨어요.

식당 영업시간제한이라는 위험 요인도 있었지만 1년 이내로 잠잠해질 거라고 생각했어요. 그 당시 권리금이 거의 바닥을 쳤을 때예요. 특히 제 와인바가 있는 지역은 용산국제지구가 들어오면서 조만간 재개발될 예정이거든요. 그래서 권리금이 0원이었어요. 최소화된 예산으로 와인바를 차려서 이 시기를 잘 버티자는 생각이었죠.

또 제가 창업을 준비했던 때는 코로나19가 1년 지난 시점이라 실패 사례를 스터디했어요. 문 닫은 가게들의 공통점은 주거지구, 오피스 지구, 유흥지구 등 ‘단일상권’에 위치했다는 점이더라고요. 특징을 하나만 가진 상권은 위기 상황에 더 취약합니다. 그래서 저는 중복상권 위주로 장소를 물색했어요. 용산, 공덕, 양재, 선유도 등 주거지구와 오피스지구가 혼재해있는 지역들이 후보였고, 그중 가장 권리금이 싸면서도 주민들의 소득수준이 높은 용산을 택했습니다.

―‘미슐랭 레스토랑’ 등 잘되는 와인바를 돌아다니며 조사도 많이 하셨다고요. ‘핫플’들의 공통점이 있나요?

이미 완벽한데도 계속 변화를 시도하고, 그 변화가 불편하지 않고 오히려 새롭게 다가오는 곳들이 있어요. 그런 와인바들은 사장님이 매장에 상주하면서 하나하나 세심하게 신경을 써요. 메뉴를 2~3개월 단위로 바꾼다거나, 커틀러리(식기)를 바꾸는 식으로요. 사실 사장이 헤드셰프(주방장)가 아닌 이상 신메뉴를 계속 개발하는 건 정말 힘든 일이에요. 하나의 메뉴를 개발하기까지 정말 많은 인력과 자원이 들어가거든요.

―코로나19를 통한 실패 사례 스터디, 미슐랭 레스토랑 연구 등 치밀하게 사전 조사를 하고 와인바를 차리셨네요. ‘드포레’만의 차별점은 무엇이라고 생각하세요?

손님들이 불편해하실 만한 부분들을 빠르게 파악하는 거요. 손님들이 말하기 전에 선제적으로 액션을 취하려고 해요. 예를 들어 물병에 물이 조금만 남아있다고 하면 조용히 새 물병을 놓아 드려요. 직원을 뽑을 때도 따뜻하고 책임감 있는 사람들을 뽑으려고 해요.

―오지게 착한데 일 못하는 직원, ‘싸가지’는 더럽게 없는데 일 하나는 똑 부러지게 하는 직원 중 누구를 택하시겠어요?

전 착하고 일 못 하는 직원이요. 일이라는 게 사람 때문에 스트레스를 제일 많이 받잖아요. 싸가지 없는 직원 한 명 때문에 다른 사람들이 스트레스를 많이 받게 된다면 전체적인 일에 능률이 되게 떨어지게 될 것 같아요. 직원들이 일하기 싫은 공간이 되면 안 되죠.

이 씨가 운영하는 와인바를 방문한 미국의 싱어송라이터 ‘라우브’. 드포레 인스타그램 캡처


―이곳을 ‘네트워킹 아지트’로 만들고 싶다고 하셨는데 손님들과 교류도 하시나요?

단순히 고가의 와인을 시킨다거나 좋은 직업을 가진 사람들과 인맥을 형성하려고 하진 않아요. 몇 마디 대화를 나눠봤는데 저와 공통적인 관심사가 있거나 성향이 잘 맞는 손님들과는 개인적으로도 연락을 하는 편이에요. 제가 먼저 연락처를 여쭤보기도 하고 손님이 먼저 명함을 주시는 경우도 꽤 많아요. 본인의 매장처럼 편하게 느끼시면서 이용하시는 분들도 생겼습니다.

―올해 요식업 창업을 계획하고 있는 분들에게 이것만은 꼭 지켜라, 팁을 주신다면?

가장 중요한 건 내가 원하는 위치의 부동산이 나타날 때까지 기다리는 거예요. ‘드포레’는 구석진 곳에 있다 보니 사람들이 찾기 힘들고, 그게 매출에 큰 영향을 주거든요. 똑같은 맛과 서비스라도 어디에 위치했느냐에 따라 존폐가 나뉘어요. 두 번째는 제 인생 가치관이기도 한데 ‘스몰 석세스’라는 단어를 실천하는 거예요. 큰 목표를 잡고 장기간 달려가기보다 작은 목표를 하나하나 이뤄나가는 거죠. 그러다 보면 어느 순간 큰 목표도 이루게 될 거라고 믿어요.




김재희 기자 jett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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