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도체 산업의 먹구름, 지켜만 보는 국회[한상준의 정치 인사이드]

  • 동아일보
  • 입력 2023년 3월 7일 14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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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의동 국회 첨단전략산업특별위원회 위원장이 지난달 22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전체회의에서 인사말을 하고 있다. 뉴시스
유의동 국회 첨단전략산업특별위원회 위원장이 지난달 22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전체회의에서 인사말을 하고 있다. 뉴시스
대한민국은 수출로 먹고사는 나라다. 대한민국의 수출에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건 반도체다. 지난해 반도체 수출액은 1292억 달러(약 168조 원) 규모로, 전체 수출액 중 18%에 달한다. 이처럼 수출의 근간인 반도체가 흔들리고 있다.

정부가 발표한 2월 수출입 동향에 따르면 지난달 수출은 1년 전과 비교해 7.5% 줄었다. 지난해 10월 이후 5개월 연속 감소세다. 수출 부진은 반도체의 부진 때문이다. 2월 반도체 수출액은 59억6000만 달러로 1년 전에 비해 42.5% 줄었다.

여기에 반도체 패권 장악 시도에 나선 미국은 노골적으로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를 압박하고 있다. 미 상무부는 지난달 28일 반도체과학법(칩스법)에 따라 미국에 투자하는 반도체 기업에 390억 달러(약 50조 원), 연구개발(R&D) 분야에 132억 달러(약 17조 원)를 지급하기로 했다. 단, 보조금을 받는 조건으로 일정 기준 이상 초과 수익은 반납해야 하고 반도체 생산 및 연구기술을 미 정부에 공개할 경우 보조금을 우선 지원한다. 쉽게 말해 반도체 생산 기밀을 공개하는 등 미국 뜻대로 움직여야 보조금을 주겠다는 것이다.

미국의 이런 움직임과 관련해 더불어민주당은 3일 논평에서 윤석열 대통령을 향해 “말로만 영업사원 1호라고 하지 말고 반도체 산업에 드리운 먹구름부터 걷어내십시오”라고 했다. 또 “인플레이션감축법(IRA)의 충격이 가시지도 않았는데 반도체 산업까지 위기 상황으로 내몰린다면 수출로 먹고사는 대한민국 경제는 어떻게 살아남아야 하나”라고 성토했다. 수출 확대와 주력 산업 육성은 정부의 중요한 과제다. 다만 반도체 산업에 드리운 먹구름을 없애기 위해 과연 국회는 뭘 하고 있는지 짚어볼 필요가 있다.

● 입법권 없는 국회 첨단산업특위


“첨단산업 기술력은 해당 산업의 경쟁력을 넘어 미래 경제, 안보 패권에 대한 향방을 결정하는 핵심적인 요소다.”

지난달 22일 열린 국회 첨단전략산업특별위원회 첫 회의. 위원장을 맡은 국민의힘 유의동 의원은 첨단산업특위가 꾸려진 배경에 대해 이렇게 설명했다. 첨단산업특위는 반도체, 2차 전지 등 국가 첨단산업에 대한 체계적 지원과 육성 대책을 논의하기 위해 새롭게 만들어졌다. 정부뿐만 아니라 국회도 한국 경제의 현재이자 미래인 첨단산업을 입법으로 지원하겠다는 취지다.

그러나 첨단산업특위는 닻을 올리기도 전 잡음이 일었다. 18명의 위원 중 그간 국회에서 반도체 관련 입법을 주도해 온 무소속 양향자 의원이 제외됐기 때문이다. 삼성전자 임원 출신으로 반도체 분야에 전문성을 갖고 있다고 평가받는 양 의원은 특위 신청서를 냈지만 빠졌고, 그 자리에 무소속 민형배 의원이 들어갔다. 광주 광산구청장, 청와대 비서관 등을 지낸 민 의원의 반도체 관련 경력은 없다.

이런 인선을 두고 여권 관계자는 “국회의장실은 상임위 안배 균형이라고 설명하고 있지만, 사실은 민주당의 ‘정치적인 뒤끝’ 때문이라는 걸 야당 의원들도 알 것”이라고 했다. 지난해 민주당이 주도한 ‘검수완박’(검찰 수사권의 완전 박탈) 입법 독주에서 당시 법제사법위원회 소속이던 양 의원이 민주당에 미운털이 박혔기 때문이다. 당시 양 의원은 검수완박 입법에 반대 의사를 밝혔고, 민주당은 부랴부랴 민 의원을 ‘위장 탈당’ 시켜 양 의원 대신 법사위 안건조정위원회에 배치했다. 결국 민 의원이 검수완박 입법에 찬성을 표하면서 안건조정위는 무력화됐다. 민주당 의원들조차 “대한민국의 존망을 다투는 산업들을 우리가 만들어내지 못하면, 육성하지 못하면 미래가 없다”고 한 첨단산업특위에 정파적인 고려가 개입된 것.



게다가 첨단산업특위의 가장 큰 문제는 입법권, 즉 법을 만들 권한이 없다는 점이다. 반도체 등 첨단 산업에 대한 중요성이 커지며 부랴부랴 특위는 만들었지만, 정작 여야가 핵심적인 권한인 입법권은 특위에 부여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를 두고 민주당 이원욱 의원은 첫 회의에서 “실제로 입법권이 없으면 아무런 소용이 없다. (특위가) 그냥 보고서 하나 내고 끝나버리고, 상임위로 올라가서 저희가 낸 보고서가 제대로 반영되는 것도 아니고”라고 우려를 표했고 국민의힘 김성원 의원도 “특위 입법권에 대해서는 (이 의원과) 같은 입장이다”라고 했다.

‘무늬만 특위’가 될 수 있다는 여야 의원들의 우려에 유의동 위원장은 “입법권 확보 문제는 각 당 원내지도부에 의견을 구해서 대표 간 합의를 이끌어낼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했다. 그렇지만 첨단산업특위에 입법권을 부여하기 위한 움직임은 아직까지 없다.

첨단 산업을 대하는 국회의 안일한 인식을 보여주는 장면은 또 있다.

● 1월도, 2월도 넘긴 ‘K칩스법’

추경호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지난달 22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기획재정위원회 전체회의에서 업무보고를 하고 있다. 뉴시스
추경호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지난달 22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기획재정위원회 전체회의에서 업무보고를 하고 있다. 뉴시스
“우리나라에서 가장 잘 먹고 잘 살고, 가장 돈을 많이 벌고 망할 가능성도 없는 기업에 대해서 왜 이렇게 득달같이 이 정부는 지원을 못 해서 안달복달입니까?”

지난달 22일 열린 국회 기획재정위원회 전체회의. 민주당 양경숙 의원은 추경호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을 향해 이같이 추궁했다. 이날 회의에서 추 부총리는 이른바 ‘K칩스법’으로 불리는 조세특례제한법(조특법) 개정안과 관련해 “빨리 통과될 수 있도록 꼭 좀 도와주십시오”라고 했지만 돌아온 건 “대기업에 왜 특혜를 주느냐”는 야당 의원들의 날 선 공세였다.

조특법 개정안은 반도체, 배터리, 디스플레이 등 국가전략기술의 시설 투자에 대한 세액공제율을 대기업은 현재 8%에서 15%로, 중소기업은 16%에서 25%로 높이자는 내용이다.

앞서 기재부와 여야는 지난해 12월 세액공제율을 대기업 기준 6%에서 8%로 늘리기로 뜻을 모았고, 개정안은 국회를 통과했다. 그러나 “미국, 대만 등 반도체 경쟁 국가에 비해 지나치게 낮은 공제율”이라는 반도체 업계의 반발과 윤석열 대통령의 재검토 지시로 지금과 같은 개정안이 만들어진 것.

실제로 미국은 반도체 설비투자 비용의 25%를 세금에서 깎아준다. 삼성전자의 경쟁자인 TSMC와 한 몸처럼 움직이는 대만 정부는 연구개발(R&D)비용의 25%, 설비투자 비용의 5% 세액공제를 적용하고 있다. 두 나라가 이런 파격적인 혜택을 주는 건 경제와 안보가 뒤섞인 치열한 경쟁이 벌어지고 세계 반도체 시장에서 뒤처지면 안 된다는 절박감 때문이다.




하지만 정부가 낸 조특법 개정안은 1월도, 2월도 국회 문턱을 넘지 못했다. 3월 국회가 여야 간 대치로 파행할 가능성이 커 3월 통과도 장담할 수 없는 상황. 물론 민주당의 지적처럼 지난해 입법 과정에서 세수(稅收)만 생각하고 안일하게 세액공제율을 줄인 기재부도 문제다. 하지만 반도체 시장의 불확실성이 커지는 상황에서 언제까지 정부 탓만 하고 있을 수는 없다. 국민의힘도 “의석수가 적다”는 핑계만 댈 게 아니라 야당이 원하는 걸 내주면서라도 협상에 임해야 한다. 민주당 역시 반도체 산업 지원이 삼성전자, SK하이닉스만을 위한 거라는 단편적 사고에서 하루빨리 벗어나야 한다.

정책을 집행하는 건 행정부, 그리고 행정부의 수반인 대통령의 몫이다. 하지만 정책 집행의 근거가 되는 법을 만드는 건 오로지 입법부인 국회만 할 수 있다. 반도체 산업을 둘러싼 먹구름이 정녕 걱정된다면 국회가 나서면 된다. 국민의힘과 민주당은 내부 권력 투쟁을 향한 열정의 반의 반만 국가 경제에 쏟을 수는 없는 걸까.

한상준기자 alwaysj@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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