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과 친척에게 ‘더 좋게’ 말해주기[오은영의 부모마음 아이마음]

  • 동아일보
  • 입력 2023년 1월 11일 03시 00분


코멘트

〈171〉 편안한 명절 보내려면

일러스트레이션 김수진 기자 soojin@donga.com
일러스트레이션 김수진 기자 soojin@donga.com
오은영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오은영 소아청소년클리닉 원장
오은영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오은영 소아청소년클리닉 원장
우리는 왜 가장 가깝고 소중한 사람들에게 친절하지 않을까? 거기에서부터 모든 문제가 생기는 것 같다. 서로 사랑하지 않는 것이 아니다. 너무나 사랑한다. 그런데 친절하지 않다. 가끔은 서로에게 사납기까지 하다.

어느 추운 겨울날, 할머니가 외출하는 할아버지에게 추우니 꼭 모자를 쓰고 나가라고 한다. 할아버지는 대수롭지 않은 듯 “괜찮아” 하면서 그냥 나선다. 그 모습 끝에 할머니가 짜증스럽게 “아이고 저 노인네, 또 고집 피우네. 저러고 나가서 독감이라도 걸려서 자식들 고생시키려고”라고 말한다. 할아버지는 언짢아져서 현관문을 꽝 닫고 나가버린다. 분명 할머니는 할아버지가 걱정돼서 한 말이다. 이럴 때 직접 가서 모자를 씌워주면서 “아니에요. 추워요. 나중에 더우면 벗어요”라고 하면 얼마나 좋았을까?

상대에게 부정적인 감정이 많이 쌓여 있다면, 당연히 친절하기는 좀 힘들 것이다. 하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에도 정말 가까운 가족에게, 조금 큰 아이에게, 부모에게, 친한 친구에게 우리는 좀 친절하지 않은 것 같다. 좋게 표현을 안 하는 것 같다. 왜 우리는 관계가 가까워질수록 그러는 걸까?

여러 가지 이유가 있다. 역사적인 이유도, 사회·문화적인 이유도, 개인적인 이유도 있다. 하지만 어떤 이유이든 이 불친절함을 바꾸지 않으면 가족이 행복할 수 없다. 집단이 행복할 수 없다. 사회나 국가가 행복할 수 없다. 우리는 참 열심히 살아간다. 그런데 행복하지 않다고 느끼는 사람이 너무 많다. 나는 그 이유 중 하나가 가장 가깝고 소중한 사람들이 서로에게 친절하지 않은 것 때문은 아닌가 생각한다.

특히 아이는, 부모가 좋게 말하지 않거나 친절하게 대하지 않으면, 아무리 부모 마음속에는 사랑이 가득해도 상처를 받는다. 자신을 사랑하지 않는다고 오해하기 때문이다. 배우자도 그렇다. 가장 가깝고 소중한 사람들이 서로 매일매일 상처를 주고받는다면, 함께 있을 때 편안하지 않다면, 그 가족이 행복할 수 있을까? 살다 보면 정말 따뜻한 위로가 필요한 순간들이 있다. 누구에게 위로를 받으면 가장 힘이 날까? 가슴 깊숙한 곳까지 따뜻해질까? 바로 가장 가깝고 소중한 사람들이다. 그들에게 위로를 받을 때, 힘든 순간조차 행복감을 느낀다. 아이는 그런 좋았던 경험을 많이 해야, 남한테 그런 말을 해주는 사람이 된다.

가깝고 소중한 사람들에게는 더 좋게 말해 주었으면 한다. 더 친절하게 대해 주었으면 좋겠다. 듣기 좋은 말만 하라는 것이 아니다. 내가 느끼는 감정을 좋게 다듬어서 솔직하게 말하자는 것이다. 기분이 나쁘면 “아까 그 얘기 듣고 기분이 좀 나빴어”, “그렇게 말하면 마음이 아파. 그럴 것은 아닌데…”라고 말하는 것이다. 어색해서 도저히 못 하겠다면 비난이나 빈정거림만이라도 걷어내 보자. 그것만 빠져도 관계가 한결 좋아질 것이다.

곧 명절이다. 가깝고 소중한 사람들끼리 서로의 불친절함에 상처를 주고받는 시즌이다. 몸은 힘들어도 마음만은 편안한 명절이 되었으면 좋겠다. 개인적인 바람을 담아 두 가지 제안을 하려고 한다. 첫 번째는 명절 딱 하루만이라도, 누구나 일은 뭐든 함께, 대화는 좋은 말만 하는 것이다. 만두도 함께 빚고, 상도 같이 차리고 치우고, 설거지도 좀 함께 한다. 그리고 오랜만에 만난 친척들과 이야기할 때는, 서로 좋은 말만 한다. 오랜만에 만나서 툭 물어보는 것도 관심인 것은 맞다. 그런데 오랜만에 만났을 때는 좋은 이야기만 나누는 것이 가장 좋다. 충고, 조언, 궁금한 것, 섭섭했던 말 등은 이번 명절에는 좀 접어두자. 그냥 “만나서 좋다, 멋있어졌다…” 이런 말만 했으면 한다.

두 번째는 명절날만큼은 술을 안 마셨으면 좋겠다. 정말 간절한 마음이다. ‘술’이 꼭 문제를 만들고 키운다. ‘술’은 어쩌다 만난 명절날에 그동안 맺혀 있던 이야기를 하고 싶게 만든다. 그리고 감정 조절도 방해한다. 그래서 싸움으로 이어진다. 사실 이런 깊은 이야기는 평소 왕래가 잦은 깊은 관계라야 나눌 수 있는 법이다. 어쩌다 만나는 사이라면, 혈연이라도 혹은 혈연이기 때문에 하면 할수록 꼬이기 쉽다. 게다가 명절은 많은 사람들이 모인다. 사람이 많으면 의견도 다 다르다. 내가 아무리 옳아도 그것을 상대에게 잘 전달하기가 어렵다. 하고 싶은 이야기는 하긴 해야 한다. 오해가 있으면 풀어야 한다. 하지만 명절은 적당한 날이 아니다. 그래서 명절만큼은 술을 마시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해본다. 모두에게 마음 편안한 명절이 되기를 다시 한번 바라본다.

오은영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오은영 소아청소년클리닉 원장
#편안한 명절#가족#친척#더 좋게 말해주기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