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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일보|오피니언

[오늘과 내일/이철희]그렇게 김씨 왕조가 된다

입력 2022-12-01 03:00업데이트 2022-12-01 10: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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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숨겨진 자식’이던 김정은의 후계 시동
물려줄 ‘위험한 유산’ 핵무기와 굶주림
이철희 논설위원이철희 논설위원
“아이는 비밀 노출을 엄단하느라고 바깥세상을 보지 못하고 울타리 안에서만 자랐다. 합법적으로 갈 수 있는 곳은 봉화진료소뿐이었다. 천으로 차창을 전부 가린 ‘수인차’를 타고…. 제네바에 가서도 어울리지 못했다. 쉬는 시간 종이 치면 아이들은 다 밖으로 뛰어나가는데 그 애만 교실에 앉아 그림만 그렸다. 그리는 것은 평양 만화에서 본 ‘미국놈 대가리’였다.”

북한 김정일의 동거녀 성혜림의 언니로서 1996년 탈북한 성혜랑이 회고록 ‘등나무집’에서 묘사한 조카 김정남(2017년 피살)의 어린 시절이다. 성혜랑이 보모 겸 가정교사를 맡아 보살피던 김정남은 4m 넘는 담장 위에 고압선까지 쳐진 동평양 관저 안에 갇혀 살았다. 온갖 장난감과 놀이기구로 채워진 300평짜리 전용 오락실에다 “예예, 대장동지” 떠받드는 어른들 속에서 세상에서 가장 특별한 아이로, 하지만 가장 외로운 아이로 자라야 했다.

김정남과 같은 ‘숨겨진 자식’ 처지였던 김정은의 삶이라고 크게 다르지 않았다. 다만 김정은에겐 친형과 여동생이 있었으니 그나마 나았을까. 경호원들과 어울려 대장 노릇도 했지만 그게 전부였다. 외부와의 단절, 주변의 떠받듦은 더 큰 인정 욕구를 키웠다. 무조건 이겨야 한다는 승부 근성과 뭐든 끝까지 물고 늘어지는 편집증적 성향도 거기서 비롯됐을 것이다.

김정은이 최근 신형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화성-17형’ 발사 현장과 자축 행사에 아홉 살짜리 둘째로 추정되는 딸과 함께 잇달아 나타났다. 북한 매체는 그 딸을 ‘사랑하는 자제분’ ‘존귀하신 자제분’이라 칭했고 “백두의 혈통만 따를 것”이라는 충성맹세도 쏟아냈다. 딸의 출현은 세계의 호기심을 불렀고 그 관심도는 ‘괴물 ICBM’의 공포심을 압도할 정도다.

일각에선 그 딸이 후계자로 낙점됐을 것이란 때 이른 관측이 나온다. 김정은의 여덟 살 생일 때 열린 축하파티에서 고위 간부들이 보천보전자악단 연주에 맞춰 ‘척척 척척척 우리 김대장 발걸음∼’이란 노래를 불렀는데, 그때 이미 후계자로 정해졌다는 일본인 요리사와 김정은 이모의 증언도 새삼 주목받는다. 하지만 김정은에겐 남아를 포함한 두 자녀가 더 있다고 한다. 머지않아 ‘젊으신 청년대장’ ‘친애하는 대장동지’가 깜짝 등장할 수도 있다.

북한이 3대에 걸친 폭압적 약탈정권이 된 지 오래지만, 이제는 4대 세습이 당연시되고 관심사는 후계자가 누구냐가 됐다. 김정은은 권좌에 오른 지 7개월 만에 아내 리설주를 공식석상에 대동하고 나왔다. 리설주 띄우기는 두 사람의 공인된 결합을 과시하고 그 자녀가 대를 이어 통치할 것임을 예고하는, 즉 세습군주제의 정통성 확보를 위한 첫 기획이었다.





여러 여성과의 사이에 여러 자녀를 둔 아버지의 숨겨진 아들 중 한 명으로 자란 김정은. 그에게 후계 체제의 확립은 미뤄둘 수 없는 숙제다. 창업 군주는 일찌감치 장남을 후계자로 정해 20년간 권력을 물려주기 위한 길을 닦았다. 반면 2대 군주는 후계 준비도 시작하지 못한 상태에서 뇌졸중을 맞아 서둘러 막내아들을 내세워야 했다. 이제 3대 군주는 그런 권력의 불안정과 궁정 암투를 막기 위해 왕가의 상속 시스템을 구축하려 한다.

마침 후대에 물려줄 유산 ‘절대병기’도 완성 단계에 있다. 김정은에게 핵무기와 후계자의 기괴한 조합은 21세기 세습군주정의 완성을 위한 불가결의 요소일 것이다. 하지만 그 대가로 인민들이 겪는 굶주림과 빈곤, 그것이야말로 피할 수 없는 가장 위험한 유산임을 그는 정말 모를까.

이철희 논설위원 klimt@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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