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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일보|오피니언

[임희윤 기자의 죽기전 멜로디]‘오, 캡틴! 나의 음악 캡틴!’

입력 2022-11-24 03:00업데이트 2022-11-24 08: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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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킨슨병과 싸우다가 16일 별세한 미국의 기타리스트 겸 음악교육자 믹 구드릭. 버클리음대 홈페이지
임희윤 기자
‘베이커 선생님’은 1960년대, 흑인으로서는 이례적으로 음악대학에 진학했다. 뛰어난 음악적 재능으로 당시 인종차별의 한계도 뛰어넘었다. 그러나 가난한 집안 형편이 발목을 잡았다. 무리하게 아르바이트 여러 개를 하다 장학금을 놓쳤고 결국 학비가 없어 학교를 그만뒀다. 생계를 위해 이삿짐 운반 일에 뛰어들었다.

어느 추운 겨울날이었다. 이삿짐 사이에 업라이트 피아노 한 대가 있었다. 커다란 피아노를 혼자서 번쩍 들었다 내려놓는 순간, 피아노 안에 들어있던 무언가가 음향판을 때렸다. 피아노 현을 몇 개 건드렸다. 정확히는 네 개의 현. 그것은 못 이긴 듯 다음과 같은 네 개의 음을 토해냈다.

#1. ‘파-라♭-도-레…’

이삿짐 사이에 섞인 검은 피아노 안에서 우연히도 아련한 느낌을 자아내는 ‘Fm6’ 코드가 울려나왔다. 그 순간 베이커 선생님의 머리에는 그 다음 연주할 코드가 떠올랐다. 그 다음, 또 그 다음…. 뇌리에 연상되는 코드의 연쇄. 그는 뭔가에 홀린 듯 그 자리에서 피아노 뚜껑을 열고 길바닥 연주를 시작했다. 몇 분간 뚫어지게 바라보던 동료 짐꾼이 말을 건넸다.

“여긴 자네가 있을 곳이 아니네. 어서 학교로 돌아가라고. 이렇게 젊음을 낭비하면 안 되지.”

#2. 음악 에세이 ‘캐논, 김현준의 재즈+로그’에 담긴 일화다. 저자 김현준 씨(재즈평론가)는 책에 ‘한세영’이라는 가상의 피아니스트를 등장시켜 그와의 ‘가상 인터뷰’로 재즈 이야기를 풀어간다. 그러나 ‘베이커 선생님’의 이야기만은 실화라고 했다.

“제가 미국 시카고에 유학하던 시절, 그 도시의 음악계에서 전설처럼 떠돌던 이야기예요. 던 베이커였던가…. 풀 네임조차 지금은 정확히 기억나지 않네요. 돌아가신 건지, 그의 소식조차 이젠 전혀 찾을 수 없어 안타깝습니다.”(김현준 평론가)

#3. ‘베이커 선생님’은 동료의 말처럼 학교로 돌아갔고 장학금을 독차지하며 촉망받는 연주자가 되는 듯했다. 그러나 갑작스러운 모친의 사망, 그 이후 가족을 부양하기 위해 스타 연주자의 길을 포기했다. 결국 평생을 교육자로 살았다고 한다. ‘베이커 선생님’의 이야기를 읽으면서 16일, 77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난 미국 기타리스트 믹 구드릭이 떠올랐다.

#4.
올 3월, 버클리음대 취재를 위해 미국 보스턴에 갔다. 보면서도 나의 눈과 귀를 의심케 만든 ‘슈퍼 콘서트’가 현지에서 있었다. 명기타리스트 볼프강 무트슈필, 줄리언 라지가 무대에 올랐다. 원격 영상으로 팻 메시니, 존 스코필드, 빌 프리셀, 마이크 스턴, 게리 버턴이 출연했다. 가히 재즈계 꿈의 콘서트다. 공연명은 ‘믹 구드릭 레거시(유산·遺産) 콘서트’.

#5. 구드릭은 웬만한 음악 팬에게도 낯설 법한 이름이다. 독일 명가 ECM레코드에서 솔로 음반을 냈고 찰리 헤이든, 게리 버턴, 스티브 스왈로, 잭 디조넷 등의 음반에 연주자로 참여했지만 ‘무관의 제왕’ ‘어둠의 스타’다. 무대 위에서 갈채를 받기보다 어두운 강의실에서 학생들과 땀을 흘렸다. 버클리음대를 졸업해 교수로 줄곧 활약한 그의 제자가 프리셀, 스코필드, 무트슈필, 라지 등 현대 재즈 기타를 이야기할 때 가장 먼저 거론되는 인물들이다. 구드릭이 연주자로서 스타가 되지 못한 데에는 괴팍한 성격이 한몫했다는 것이 중론이다. “할 테면 하고 아니면 때려치워!” 하며 끝없이 학생들을 괴롭혔다는 대목에서는 영화 ‘위플래쉬’의 플레처 교수(J K 시먼스 분)도 떠오른다.

#6. 얼마 전, 술자리에서 한 작곡가를 만났다. 그는 20세기를 산 한국인이라면 비 오는 날 한 번쯤 우수에 잠겨 들어봤을 명발라드를 지은 이다. 본인 이름으로 종종 음악을 내긴 했지만 “먹고살기 위해” 교단을 지키느라 음악 활동에 더 매진하지는 못한 것이, 지켜보는 입장에서는 조금 아쉽다. 그러나 그는 걸걸한 목소리로 이렇게 말했다.

“그래도 참 행복해요. 학생들이 괜찮은 음악가로 성장하는 모습을 보면. 후회는 없어요. 저, 이 정도면 정말 잘 산 거 같아요.”

2차로 간 LP바의 사장님이 ‘웰컴 송’으로 그가 지은 노래를 틀었다. 스피커를 우렁차게 때리는 그 노래를 들으며 창밖에 혹시 비가 오진 않나 내다봤다. 그리고 음악을 가르쳐준, 지금은 멀리 있는 나만의 ‘베이커 선생님’ ‘구드릭 선생님’을 떠올렸다.

‘지금 거기에도 음악의 비가 내리나요? 고마워요. 당신은 내 맘속에 늘 북극성처럼 끄떡없는 슈퍼스타입니다.’

임희윤 기자 im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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