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우크라 교과서에 ‘한강 기적’ 실렸다… “국가 재건 희망 줄것”

  • 동아일보
  • 입력 2022년 11월 23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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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2 새 지리교과서 처음 공개
6쪽에 걸쳐 한국 경제성장 소개… 우크라 현지선 한류에 관심 커져
집필진이 교과서 들고 한국 찾아… “이번에 본 내용들도 추가할 예정”

‘대한민국 행정구역 및 분할’ 지도와 이를 설명하는 내용이 담긴 우크라이나 10학년 지리 교과서. 한국학중앙연구원 제공
‘대한민국 행정구역 및 분할’ 지도와 이를 설명하는 내용이 담긴 우크라이나 10학년 지리 교과서. 한국학중앙연구원 제공
“대한민국은 6·25전쟁 이후 1960년대 낙후된 농업 중심 경제에서 1980년대에 이미 높은 경제성장률로 ‘아시아의 호랑이’란 칭호를 얻었다. 현재는 국내총생산(GDP)이 세계 10대 경제 대국일 정도로 성장했다. 또 한국은 하이테크놀로지 제품 생산에 있어 세계에서 주도적인 역할을 하는 국가로 자리매김하고 있다.”(우크라이나 10학년 교과서 ‘세계지리’에서)

우크라이나에서 처음으로 한국 관련 내용을 담아 간행한 고교 정규 교과서가 국내에 처음 공개됐다. 우크라이나 교육과학부와 교과서 집필에 함께한 한국학중앙연구원(원장 안병우)은 “6·25전쟁 뒤 한국의 경제 발전을 다룬 우크라이나 10학년(고교 2년) 세계지리 교과서를 이달 초 우크라이나 연구진이 직접 전달했다”고 22일 밝혔다.

연구원에 따르면 기존 우크라이나 교과서는 아시아 국가 중에는 중국과 일본, 인도만 다뤘으나 이번에 한국을 특별 섹션으로 추가했다. 우크라이나 교육과학부는 올해 9월 20일 홈페이지에 교육과정 가이드라인 변경을 공지하며 이를 발표했다.

우크라이나 출판사 ‘페룬’이 발행한 256쪽 분량의 교과서에는 6쪽에 걸쳐 한국의 경제 성장을 상세히 소개했다. 교과서에는 “서울은 싱가포르와 홍콩 도쿄 두바이 상하이와 함께 아시아의 최대 금융 중심지 가운데 하나”, “부산은 아시아에서 최대 항구 가운데 하나”라는 내용이 지도와 함께 표기됐다.

특히 한국 기업의 이름까지 구체적으로 표기한 것이 눈에 띈다.

“한국은 고도의 자본 집중과 기업 환경의 집약화를 통해 금융 및 투자 서비스, 정보기술(IT) 업종 등이 발달하고 있다. 이러한 기업들로 삼성생명과 KB금융, SK홀딩스 등이 있다. …기술 분야에선 삼성전자와 LG전자, 자동차 분야에선 현대자동차와 기아 등이 세계시장을 공략하고 있다.”

한국이 강점을 지닌 산업 분야도 세세하게 설명했다.

“한국의 하이테크 기술은 국제적으로 높은 위상을 인정받고 있다. 하이테크 기술은 반도체와 미세회로, 통신장비(스마트폰), 가전제품, 자동차, 선박 등의 생산에 핵심적인 요소이다. 현재 인공지능 및 로봇공학, 수소연료자동차 및 전기자동차, 전기충전지 등의 생산은 세계적 수준으로 발전하고 있다.”

해당 교과서 집필은 2020년부터 본격적으로 진행됐다. 연구원은 주우크라이나 한국대사관과 함께 우크라이나의 요청으로 관련 자료를 지속적으로 제공해왔다. 연구원 내 한국바로알리기 사업실을 통해 교과서를 모니터링하고 잘못된 내용은 바로잡는 한편 부족한 부분을 추가하도록 도왔다. 장기홍 전문위원은 “2016년 우크라이나 교육과학부의 흘라드코프스키 로만 수석연구위원과 협력방안을 논의한 것이 계기가 돼 이런 결실을 맺었다”며 “우크라이나 청소년들이 한류 영향으로 한국에 대한 관심이 높아진 것도 긍정적인 영향을 미쳤다”고 말했다.

한국학중앙연구원 초청으로 한국에 온 우크라이나 교과서 집필진과 장기홍 연구원 전문위원이 9일 서울 중구 남산공원 전망대에서 환하게 웃고 있다. 한국학중앙연구원 제공
한국학중앙연구원 초청으로 한국에 온 우크라이나 교과서 집필진과 장기홍 연구원 전문위원이 9일 서울 중구 남산공원 전망대에서 환하게 웃고 있다. 한국학중앙연구원 제공
교과서가 완성된 뒤 로만을 포함한 수석연구위원 2명 등 집필진 4명은 이달 6∼12일 직접 교과서를 들고 한국에 왔다. 교과서는 아직 학생들에게 배포되지 못했다. 전쟁으로 교과서를 인쇄할 예산을 확보하기 어려운 상황이기 때문이다. 집필을 주도한 교육저널 ‘우크라이나교육’의 보이코 발렌티나 발행인은 “6·25전쟁 후 불과 70여 년 만에 이뤄낸 한국의 경제 성장이 믿기지 않는다”며 “고국에 돌아가면 이번에 한국에서 본 것들을 교과서에 추가로 반영하겠다”고 말했다. 바하노프 코스티얀틴 우크라이나 베르댠스크대 교수는 한국의 이야기가 우크라이나인에게 큰 힘을 줄 것이라 믿는다고 말했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제 연구실과 집이 모두 불에 타 무너져 내렸어요. ‘한강의 기적’은 청소년을 포함한 우리 국민이 전쟁의 고통을 앞으로 어떻게 헤쳐 나가야 할지 희망을 보여줄 겁니다.”

최훈진 기자 choigiza@donga.com
#우크라 교과서#한강 기적#국가 재건 희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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