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계급 수직구조 경찰, 보고체계 한곳만 막혀도 올스톱”

  • 동아일보
  • 입력 2022년 11월 17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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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문가들이 본 ‘이태원 참사’ 원인

“지금의 경찰처럼 수직적·단계적으로 보고와 지시가 이뤄지는 구조에선 중간에 한 사람만 문제가 생겨도 아래위가 완전히 먹통이 됩니다.”

이태원 핼러윈 참사 피해가 커진 원인에 대해 윤동열 건국대 경영학과 교수는 이같이 진단했다. 동아일보 취재팀이 최근 인터뷰한 경찰 및 소방 행정 경영 분야 전문가 20명은 “경찰 등의 경직된 조직 문화를 통째로 바꾸지 않는다면 참사는 되풀이될 것”이라고 입을 모았다.
○ 일직선 수직 보고 체계가 키운 참사

지금 경찰 조직은 11개 계급의 수직 구조이며, 단선적 지휘·명령 체계로 움직인다. 책임과 권한이 명확한 만큼 문제가 생긴 경우 책임 소재가 명확하고 규율 유지에 효과적이다.

문제는 책임자가 부재중이거나 사안에 대해 잘 모를 경우 발생한다. 곽대경 동국대 경찰행정학과 교수는 “일직선 보고 시스템에선 한 군데가 막히면 전체가 멈추는 ‘동맥 경화’가 발생할 수밖에 없다”며 “사전 대비가 잘 안된 것도 핼러윈을 잘 모르는 중장년 의사결정자들이 인파 위험성을 과소평가했기 때문일 가능성이 있다”고 했다. 이번 참사에선 이임재 당시 용산경찰서장의 늑장 대처로 위로는 서울경찰청과 경찰청으로의 보고가 지연됐고, 아래로는 지휘자 부재로 인한 현장 혼란이 발생했다.

112상황실, 경비, 정보 등 경찰 각 기능 사이에 칸막이가 쳐진 것도 유기적 대처를 가로막는 장애물로 꼽힌다. 오윤성 순천향대 경찰행정학과 교수는 “경찰들은 자기 업무 외의 영역은 침범하지 않는데, 이를 판단해줄 지휘관의 지시가 없으니 어떤 조치도 취해지지 않았던 것”이라고 진단했다. 이번 참사에선 사태의 심각성을 늦게나마 감지한 이태원파출소가 바로 서울경찰청에 기동대 출동을 요청했다면 피해를 줄일 수 있었겠지만, 그렇게 할 수 있는 경로 자체가 없었다. 마약 단속을 나갔던 경찰관들은 인파 통제에는 손을 놨다가 뒤늦게 사고 현장에 투입됐다.
○ 경찰, 계급은 너무 많고 협업은 안 돼
경찰 조직의 계급이 너무 많은 것도 문제로 지적된다. 이윤호 동국대 경찰행정학과 명예교수는 “주별로 다르지만 미국 경찰은 계급이 7개 정도인데, 우리는 11개”라면서 “현장에서 일하는 사람은 적고 관리·감독 인력이 많다 보니 지휘체계가 복잡하고 유사 시 대응이 지연될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개선 방안으로는 보고 단계 축소와 권한 이양, 프로젝트 단위로 각 기능 협업 구조를 상시화하는 방안 등이 거론된다.

이윤호 교수는 “기능을 융합하면서 벽을 허물어야 한다”고 지적했다. 정동일 연세대 경영학과 교수는 “위급 시 신속하게 의사결정을 할 수 있도록 현장 인력과 하위 조직에도 재량권을 줘야 한다”고 했다.

김대종 세종대 경영학부 교수는 “기업처럼 비상 시 단계를 건너뛰어 상위 책임자에게 보고할 수 있는 ‘핫라인’이 있어야 한다”고 조언했다.


○ 기관 간 협업, 기존 안전 대책 작동 안 해
기관 간 불통도 문제다. 3년 만의 사회적 거리 두기 없는 핼러윈을 앞둔 상태에서 경찰 소방 구청 등 어느 곳도 참사에 대비하지 않았다. 참사 발생 전후에는 경찰과 소방이 서로의 공조 요청에 제대로 대처하지 않았다. 이준원 숭실대 안전융합대학원 교수는 “안전 부문을 총괄 지휘할 컨트롤타워가 필요하다”며 “한 기관이 문제를 인지하면 동시에 다른 기관도 이를 즉시 알 수 있는 다중망 소통 체계도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정부도 재난 시 협업을 활성화하겠다며 경찰 소방 지자체 등이 소통할 수 있는 재난안전통신망을 구축했지만 정작 참사 때는 작동하지 않았다.


이기욱 기자 71wook@donga.com
전혜진 기자 sunrise@donga.com
김윤이 기자 yunik@donga.com
#수직구조 경찰#보고체계#이태원 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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