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외국인중 창업자는 0.01%… “비자 등 스타트업 지원 미흡”

  • 동아일보
  • 입력 2022년 11월 17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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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스타트업, 위기를 기회로]〈2〉외국인 인재 유치, 창업허브로
최근 10년 창업비자 발급 단 230건… 법인 설립-외환신고 절차 까다로워
글로벌 자본 메가투자 비중 낮아… 정부, 실리콘밸리식 투자기법 도입

독일 핀테크 스타트업 ‘택스픽스’는 올 4월 캐나다 교사연금 계열 펀드(TVG) 등으로부터 2억2000만 달러(약 2900억 원)의 투자를 유치하며 유니콘(기업 가치 1조 원 이상의 비상장 기업)이 됐다. 예상 세금 환급액을 확인해주는 스타트업으로 최근 5년간 환급액이 총 10억 유로(약 1조3800억 원)를 넘을 정도로 많이 활용되고 있다.

국내 스타트업 업계는 한국이 유니콘을 놓쳤다며 아쉬워한다. 이 창업자들이 한국에서 창업했다가 철수한 적이 있기 때문이다. 스위스 출신 마티스와 리노는 2013년 서울에 거주하면서 고향의 우편물을 스캔해서 e메일로 받을 방법을 고민하다 PDF 편집 플랫폼 ‘smallpdf’를 개발해 창업했다. 이후 한국에서 각종 스타트업 행사 등에 참여하며 사업을 확장하려 했지만, 비자 문제가 풀리지 않아 결국 독일로 가서 2016년 지금의 택스픽스를 창업하게 됐다.


해외 자본 유치와 일자리 창출 등 스타트업의 경제적 효과가 주목받으면서 글로벌 창업 인재를 유치하기 위한 각국의 경쟁이 치열해지고 있다. 올해 서울이 ‘스타트업 하기 좋은 도시’ 10위권에 처음 진입했지만 국내 체류 외국인 창업 인재의 정착 및 활용 정책이 여전히 미흡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정부 지원이 끝나면 본국으로 돌아가거나 한국에서 해외로 본사를 옮기는 이른바 ‘플립(flip)’도 적지 않다.
○ 10년간 외국인 창업비자 230건 발급 ‘좁은 문’

16일 중소벤처기업부와 법무부 등에 따르면 국내 외국인 창업자 수는 지난달 112명으로 전체 등록 외국인 수(114만 명)의 0.01%로 집계됐다. 외국인의 한국 내 창업을 유도하기 위해 2013년부터 자본금이 없어도 우수 기술력을 가진 외국인에게 기술창업비자(D-8-4)를 주고 있지만 올해까지 발급 건수는 230건에 그친다. 국내 대학 학사 학위와 창업 지원 프로그램에서 일정 점수(80점) 이상 취득 등 조건이 까다로운 영향이 크다.

외국인 스타트업 커뮤니티 ‘서울 스타트업스’를 운영하는 마르타 알리나 씨는 “비자를 연장하려면 사업 실적이 있어야 하는데, 초보 창업자는 매출도 없을뿐더러 증빙 방법을 모르는 경우가 많아 연장이 쉽지 않다”고 말했다.

외국인 전문 인력을 위한 ‘E7’ 취업비자도 비슷하다. 프로젝트 단위로 개발자 등을 채용하는 스타트업에서는 활용하기 어렵다. 취업 기간이 1년 이하여도 전년 국민총소득(GNI)의 80% 수준 임금(월 262만 원)을 지급해야 한다는 규정 때문이다.

외국인에게 불친절한 법인 설립 절차도 문제다. 한국에 온 지 11년째인 1세대 외국인 창업가 지트 싱 딘사 씨는 “은행에서 일회용 비밀번호 생성기(OTP) 하나 발급받으려 해도 법원까지 가서 따로 인증을 받아야 하는 등 외국인이라 겪는 불편이 많다”고 말했다.

해외 인재 등용문인 경진대회 활용도 미진하다. 국내 데이터 분석 경진대회를 운영하는 데이콘의 김국진 대표는 “해외에서 국내 경진대회에 참여하는 비율이 약 0.1%에 그친다. 공공기관 주최 경진대회가 많다 보니 해외 국적자에게 불리하다는 인식이 있다”고 했다. 외국인 전용 창업 경진대회인 ‘K스타트업 그랜드 챌린지’도 15∼30주 보육 기간이 끝나면 지원이 끊겨 일회성에 그친다는 지적이 나온다.

부실한 지원 제도와 달리 국내에서는 외국인 인재에 대한 수요가 꾸준히 늘고 있다. 특히 초봉이 6000만 원을 웃도는 개발자 직군에서 몸값이 싼 동남아시아나 인도 개발자 채용 문의가 많다. 올 초 한국무역협회가 국내 스타트업 236곳을 조사한 결과 114곳(48%)이 외국인을 채용했다고 답했다.

하지만 이들이 국내에서 어떻게 활동하는지 현황 파악조차 어려운 상황이다. 창업은 중기부, 외국인 관리는 법무부, 유학생 관리는 교육부 등으로 쪼개져 있기 때문이다. 정부 관계자는 “내년부터 외국인 창업자 데이터베이스(DB)와 창업사업 관리 시스템을 연계해 외국인 창업 지원 성과 분석 등을 효율화할 예정”이라고 했다.
○ 스타트업 엑시트 경직에 해외 메가투자도 ‘돈맥경화’

해외 투자 유치 문턱도 높다. 해외 투자를 받으면 외환거래법상 은행에 외환 신고 절차를 거쳐야 하는데 초기 스타트업의 경우 금액이 적고 투자하는 송금처가 생소한 곳이 많아 확인 자체가 오래 걸린다. 인공지능(AI) 스타트업 A사는 해외 투자금을 받을 때 로펌 에스크로 계좌를 이용하느라 억대 수수료를 내고 있다.

투자 회수(exit·엑시트) 시장이 작은 것도 글로벌 대형 자본 유치에 걸림돌이 된다. 국내 스타트업들이 기업공개(IPO)까지 걸리는 시간은 평균 13년이지만, 벤처캐피털 펀드의 평균 운용 기간은 7, 8년으로 상장까지 걸리는 시간보다 짧다. 해외에서는 글로벌 기업들의 스타트업 인수합병(M&A)이 활발하지만 국내에서는 ‘기업 사냥’이라는 부정적 인식과 대기업 위주의 규제 탓에 경직돼 있다. 이 때문에 메가투자(건당 1억 달러 이상)의 글로벌 자본 투자 비중은 한국이 1.1%대로 미국(39.8%) 인도(4.2%) 영국(2.7%) 등에 비해 현저히 낮다.

정부는 해외 벤처자본 유입을 촉진하기 위해 실리콘밸리식 투자기법을 도입한다는 계획이다. 해외 투자자가 초기 스타트업에도 쉽게 투자할 수 있게 후속 투자에서 결정될 기업 가치에 따라 지분을 정하는 ‘조건부 지분전환 계약’과 은행에서 저리로 융자받는 대신 지분인수권을 주는 ‘투자조건부 융자제도’ 등 도입을 위해 관련 법 개정을 추진하기로 했다. 또 외국인 창업자가 기술창업비자를 관련 부처 추천서 등으로 연장하는 방안도 추진한다. 전성민 한국벤처창업학회장은 “한국이 글로벌 벤처허브로 거듭나려면 기술력을 갖춘 외국인 창업자와 글로벌 투자자에게 맞춘 온디맨드(수요 맞춤형) 정책으로 전환해야 한다”고 했다.

佛 테크 비자, 배우자 일자리도 챙기고… 英은 해외 스타트업 유치 전담팀


유럽 각국, 외국인 창업자 유치전
‘디지털 노마드 비자’ 도입국 늘어


각국은 우수한 해외 인재가 자국에서 창업할 수 있도록 외국인 창업자 유치전을 벌이고 있다. 특히 신산업 스타트업 육성을 국가 과제로 추진 중인 유럽은 창업 메카 미국에 맞서 다양한 유인책을 적극 펼치고 있다.

프랑스는 ‘프랑스 테크 비자’를 통해 외국인 창업자에게 발급 절차를 간소화하고 자금 지원, 세금 감면 등의 혜택을 준다. 외국인 창업비자를 받는 데 최저학력 기준이 없고 배우자에게도 일할 권리를 준다. ‘프렌치 테크 티켓’이라는 해외 스타트업 유치 프로그램에 선정되면 2만5000유로의 상금과 함께 영주권 획득을 위한 신속 절차 등이 지원된다.

영국은 해외 스타트업 유치 전담팀을 적극 활용하고 있다. 영국 국제통상부가 주관하는 글로벌 기업가 프로그램(GEP)은 창업가 출신을 앞세워 영국에 진출하려는 해외 스타트업을 발굴 유치하고 기업 규모를 키우는 스케일업까지 지원한다. 런던에 본사를 세운 한국 보안 솔루션 기업 센스톤을 비롯해 현재까지 누적 1100개의 해외 기업을 영국에 유치했다. 핀테크, 게임, 사이버보안, 인공지능 기술 분야 우수 인재를 위해 최대 5년간 체류 가능한 ‘글로벌 탤런트 비자’도 운영한다.

독일은 글로벌 액셀러레이터인 GEA를 통해 미국 싱가포르 한국 등에 현지 멘토들을 두고 독일에 진출하려는 스타트업을 돕고 있다. 2018년부터 스타트업 비자를 발급 중인 핀란드도 올 초 유치 전담팀을 만들어 예비 창업가 모집에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이후 새로운 근무 트렌드로 부상한 ‘워케이션’ 수요를 흡수하기 위해 디지털 노마드(유목민) 비자를 도입하는 국가도 늘고 있다. 지난해 2월 유럽 최초의 디지털 유목민 마을로 조성된 포르투갈 마데이라섬에는 전 세계 128개국에서 온 6000여 명의 다국적 인재들이 커뮤니티를 형성하며 지역사회와 현지 스타트업 생태계에 활력을 불어넣고 있다. 인도네시아는 최장 5년 체류 허가와 면세 혜택을 주는 비자를 추진하고 있다. 카리브해 섬나라 바베이도스는 1년짜리 원격근무 비자 발급과 무료 와이파이, 자녀 학교 지원 프로그램을 마련했다. 그리스 헝가리 크로아티아 몰타 등도 원격 근무 비자를 발급하고 있다.


신동진 기자 shine@donga.com
윤다빈 기자 empty@donga.com


#택스픽스#스타트업#외국인 창업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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