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제균 칼럼]文·李 이익공동체는 진화한다

  • 동아일보
  • 입력 2022년 10월 31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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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 정권, 거대 좌파 이익공동체 구축… 정권 바뀌었어도 주군은 여전히 文
‘생계형→대박형’ 진화하는 공동체… 돈 포기 모르는 李, 대박에 초연했나

박제균 논설주간
박제균 논설주간
2019년 쌍방울그룹이 중국으로 외화를 밀반출할 때 직원 수십 명이 동원됐다. 이들은 1인당 수천만∼수억 원에 이르는 달러와 위안화를 책자나 화장품 같은 여행용품에 숨겨 나갔다. 이 직원들은 과연 현행법 위반 사실을 모르고 외화를 밀반출했을까.

그렇다고 이들에게 ‘아무리 회사가 요구해도 불법이라면 거부했어야 옳다’고 다그치고 싶지는 않다. 불법·탈법을 조장할 생각은 없지만 선과 악, 더 나아가 적법과 위법의 경계가 다소 흐릿해지는 지점이 생계와 직결돼 있을 때다. 목구멍이 포도청이란 말이 왜 나왔겠나. 그만큼 생계는 위대하고, 또 비루하다.

일찍이 이 땅의 좌파 정치세력은 인간에게 생계가 갖는 이런 이중성과 생계의 정치적 잠재력에 주목했다. 공무원과 세금 알바를 늘리고, 재난지원금이든 기본소득 명목이든 더 많은 국민에게 나랏돈을 퍼줘 생계를 국가에 의존하는 국민이 늘어날수록 좌파 진영 표가 늘어난다는 사실을 간파했다.

여기에 문재인 정권은 한발 더 나갔다. 운동권 좌파 정치세력과 이에 빌붙은 지식인, 민노총 전교조 공무원노조 등 노동단체, 산재한 좌파 시민·사회·환경단체 등이 정치·경제·사회적 이익 추구를 위해 뭉친 거대한 이익공동체를 구축하려 했다. 문 정권의 기도(企圖)는 어느 정도 성공했다. 다만 생계뿐 아니라 내 집도 국가에 의존케 하려는, 인간 본성에 반하는 정책에 걸려 넘어졌다.

정권은 바뀌었지만 아직도 건재한 거대 이익공동체의 주군(主君)은 여전히 문재인 전 대통령이다. 문 전 대통령은 사실상 좌파 이익공동체를 구축한 것도 모자라 임기가 6개월도 안 남은 기간에 공공기관 52곳의 기관장과 감사·이사를 임명했다. 상도의(商道義)를 벗어난 ‘알박기’를 하면서까지 좌파공동체를 온존하려 했다. 그러니 아직도 자기 의자를 바닥에다 못으로 박은 듯, 꿈쩍 않는 전 정권 임명 인사들은 겉으로는 진영의 이익을 지키는 척하며 속으로는 꿀을 빨고 있는 것이다.

문 전 대통령이 감사원의 서면 조사 요구에 ‘대단히 무례’ 운운했을 때 도대체 자신을 뭐라고 생각하는지 궁금했다. 설마 ‘태종’ ‘세종’을 입에 올린 얼빠진 아첨을 믿은 건 아닐 테고. 혹시 이 땅에 전에 없던 좌파 생태계를 구축한 첫 대통령, 정권이 바뀌어도 지속가능한 물밑의 ‘문재인 나라’를 건설한 창업자라고 생각하는 건 아닌가.

그래도 문 정권 이전까지 한국의 좌파 비즈니스는 대체로 ‘생계형’에 가까웠다. ‘위안부 할머니 장사’라는 오명을 뒤집어쓰고도 아직까지 금배지를 달고 있는 윤미향류의 시민단체 비즈니스가 이를 극명하게 드러냈다. 박원순 전 서울시장이 5년간 3300여 개 시민단체에 7100여억 원을 지원한 것도 이런 생계형 좌파 생태계를 유지하는 데 일조했으리라.

그런데 문 정권 들어 권력의 노골적인 지원을 받으며 대박을 치는 좌파 비즈니스가 등장하기 시작했다. 해상 풍력 사업권을 중국에 팔아넘겨 수천 배의 이익을 챙긴 업자들도 나왔다. 이런 대박이 가능했던 건 업자가 인허가에 관여하는, 사실상 업자와 인허가권자가 한 몸이 되는 게 가능했기 때문이다. 비슷한 일은 박원순 시장의 서울시에서도 벌어졌다. 빙산의 일각이 드러나기 시작한 태양광 사업을 비롯해 정권의 지원을 받은 일부 벤처사업의 진실도 수면 아래 웅크리고 있다.

문 전 대통령보다 뛰어난 비즈니스 마인드를 지닌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 그의 좌파 비즈니스 지원은 한층 더 세련됐다. 네이버가 이재명 당시 성남시장이 구단주로 있던 성남FC에 39억 원을 우회 지원할 때 통로로 사용된 곳은 한 시민단체였다. 시민단체 기능의 새로운 발견이자 진화다.

대박을 친 이익공동체의 압권은 단연 대장동 일파일 것이다. 하지만 갑자기 터진 대박은 인간 본성의 바닥을 드러내기 십상이다. 그러니 돈을 모을 때는 “우리는 죽을 때까지 한 몸”이라고 했다가 돈을 나눌 때는 “내가 판 깨면 니들 모두 끝”이라고 협박하는 복마전이 펼쳐진다.

이재명 대표가 이 대박 공동체에 어느 정도 개입했는지가 관건이다. 분명한 건 있다. 이 대표는 대한민국 대통령을 뽑는 선거에서 한 끗 차이로 패배한 직후에, 그것도 국회의원 선거를 앞둔 시점에 2억여 원의 주식 투자를 할 정도로 놀랍도록 돈을 포기할 줄 모르는 사람이다. 그런 그가 권력만 쥔다면 돈에는 초연했을까.

박제균 논설주간 phark@donga.com
#문재인#이재명#이익공동체#진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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