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담금 합리화’는 ‘맹탕’… 서울 주요 재건축 단지 체감 어려워”

  • 주간동아
  • 입력 2022년 10월 15일 10시 31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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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제경 소장 “규제 완화 기다리며 긴 호흡 투자 고려해야”



김제경 투미부동산컨설팅 소장. [조영철 기자]
김제경 투미부동산컨설팅 소장. [조영철 기자]
부동산시장의 전반적인 침체 속에서 재건축을 바라는 아파트 단지 주민들은 정부 입만 바라보고 있다. 규제 빗장이라도 풀리지 않으면 건설 경기 냉각으로 사업을 미루거나 접을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이런 가운데 국토교통부(국토부)는 9월 29일 ‘재건축부담금 합리화 방안’을 발표했다. 민간 재건축 사업을 규제하는 재건축초과이익환수제(재초환) 완화가 뼈대다. 재건축부담금 부과 기준을 기존 3000만 원 이상에서 1억 원 이상으로 조정하고, 1주택 장기(10년 이상) 보유자 등 실수요자에 대해서는 재건축부담금의 최대 50%를 감면할 계획이다. 초과이익을 산정하는 기준도 현행 ‘재건축추진위원회 구성 승인’에서 ‘조합설립인가’ 시점으로 늦춘다(표 참조). 노무현 정부 때인 2006년 첫 도입된 재초환은 문재인 정부 시절인 2018년 부활했다. 그간 재초환 등 규제가 재건축 사업 진행과 신규 주택 공급을 지연한다는 지적이 있었다. 국토부는 이번 ‘재건축부담금 합리화 방안’에 대해 “전문가, 지자체(지방자치단체) 등과 여러 차례 논의해 마련한 것으로, 과도한 재건축부담금 규제를 합리화할 수 있을 것”이라고 평가했다.

정부의 조치가 재건축시장, 더 나아가 얼어붙은 국내 부동산시장을 정상화할 단초가 될 수 있을까가 일차적 관심사다. 이에 대해 재건축·재개발 전문가인 김제경 투미부동산컨설팅 소장은 “결론부터 말하자면 시장에선 ‘이 정도론 턱도 없다’는 의견이 대부분”이라며 “아예 규제를 완화하지 않는 것보다 낫긴 하지만 정부가 이번에 내놓은 방안으론 원활한 재건축이 어렵다”고 말했다. ‘주간동아’가 10월 7일 김 소장을 만나 ‘재건축부담금 합리화 방안’의 핵심 내용과 한계, 향후 투자 포인트에 대해 자세히 들었다.

“재초환 쟁점 놔두고 곁가지만 건드려”
‘재건축부담금 합리화 방안’을 총평해달라.

“재초환을 둘러싼 핵심 쟁점은 그대로 내버려두고 곁가지만 건드리지 않았나 싶다. 일단 재건축부담금 최고 부과율 50%가 적용되는 초과이익 기준을 종전 1억1000만 원에서 3억8000만 원으로 높인 점은 긍정적이다. 다만 효과는 서울 외곽이나 경기권 등 부담금 규모 자체가 적은 지역에 국한될 것이다. 재건축 사업의 핵심인 서울 중심 지역 단지에선 부담금 완화를 체감하기 어려워 보인다. 턱없이 높은 최고 부과율 자체를 손보지 못한 점이 한계다. 가령 용산구 동부이촌동 한강맨션은 최근 부담금 추산액 7억7000만 원을 통보받았는데, 여기서 1억 원가량 부담이 줄어든다고 재건축 사업에 탄력이 붙겠나. 최고 부과율 자체를 줄이지 않으면 대책 실효성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

‘초과이익’ 산정 시점을 늦춘 건 어떤가.

“어찌 보면 당연한 조치라고 할 수 있다. 추진위가 설립됐다 해도 조합설립을 위한 주민 75% 동의를 받기 전이다. 주민, 조합원의 전반적 의사는 수렴조차 안 한 상태라는 뜻이다. 이런 상황에서 부담금을 부과하는 것은 이치에 맞지 않는다. 지나치게 이른 시점부터 부과되던 부담금을 정상화한 것이다. ‘재건축초과이익 환수에 관한 법률’(재건축이익환수법)은 ‘부과 개시시점부터 부과 종료시점까지 기간이 10년을 초과할 경우 부과 종료시점부터 역산해 10년이 되는 날을 부과 개시시점으로 한다’(제8조 기준시점 등)고 규정한다. 재건축 사업은 단계별 규제가 많아 입주까지 10년을 넘기기 일쑤다. 이런 상황에서 재건축부담금 산정 기준을 조금 조정한다고 근본적인 변화가 생기기는 어렵다.”

국토부는 이번 조치로 줄어들 재건축부담금 시뮬레이션 결과도 발표했다. 기존 가구당 부담금이 4억 원인 단지의 경우 해당 아파트를 10년 이상 보유한 1주택자는 최대 감면율 61%를 적용받아 1억5800만 원만 내면 된다는 것이다. 일부 전문가는 1주택 장기보유자에 대한 부담금 감면을 실효성 있는 조치라고 평가한다. 이에 대해 김 소장은 “그것 역시 근본적 개선책은 아니라고 본다”면서 다음과 같이 덧붙였다.

“1주택 장기보유자 중에선 은퇴한 고령자가 많다. 당장 대출도 쉽지 않은데 억대 재건축부담금을 마련하지 못하면 수십 년 살아온 집에서 쫓겨나게 된다. 한 집에 오래 산 것이 죄냐는 불만이 나오는 이유다. 자신이 1주택 장기보유자라고 생각해도 실제 재건축부담금 50% 감면 대상이 아닐 개연성도 있다. 1주택 장기보유 기준이 복잡하기 때문이다.”

자세히 설명해달라.

“가령 부모로부터 주택을 상속받을 경우 상속세 및 증여세법에 따라 집을 6개월 안에 처분하면 다주택 보유로 규정되지 않는다. 그런데 개편되는 재초환 규제로도 상속에 따른 일시적 다주택 보유가 허용되는지 이렇다 할 잣대가 없다. 재건축 단지에서 10년 이상 거주한 사람이 세법상 합법적으로 상속 주택을 처분했는데 뒤늦게 ‘당신은 1주택 장기보유자가 아니다’라고 통보받으면 억울하지 않겠나.”

“서초, 강남, 용산 재건축 단지는 신고가 경신”
최근 서울 재건축시장은 일종의 양극화 현상을 보인다. 강북 지역에선 일부 재건축·리모델링 추진 단지의 아파트 가격이 수억 원씩 하락한 반면, 강남이나 한강변 주요 지역은 도리어 오름세를 보이는 것이다. 이를 두고 김 소장은 “재건축 사업에 대해 새 정부는 다른 정책을 내놓을 줄 알았는데, 기대보다 실효성 없는 ‘맹탕’ 대책에 서울 외곽 지역을 중심으로 재건축 단지 가격이 조정되고 있다”며 “이와 대조적으로 서초, 강남, 용산 등 서울 주요 지역의 재건축 단지는 가격 하락은커녕 신고가를 경신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강북 재건축 단지가 약세를 보이는 이유는 무엇인가.

“이번 정부 들어 재건축 규제 완화에 대한 기대감이 높았다. 윤석열 대통령의 대선 후보 시절 1호 공약이 주택 250만 호 공급이었고, 이를 뒷받침하고자 재건축·재개발 규제 완화도 공약하지 않았나. 올해 경기 지역 아파트 가격이 빠졌지만 1기 신도시 시세는 버텼는데, 이 또한 재건축 기대감 때문이었다. 그런데 8·16 부동산대책에서 ‘재정비 마스터플랜을 2024년 중 수립 예정’이라는 발표가 나오자 1기 신도시 아파트 가격이 떨어지기 시작했다. 재개발·재건축은 결국 미래가치를 기대한 투자다. 노후 아파트라도 신축 후 가격이 오르고 주거 환경도 좋아질 것이라는 전망에 움직이는 것이다. 당장 주변 아파트 시세가 떨어지고, 신축 아파트 급매물도 나오는 상황에서는 가격 하방 공포가 재건축시장으로도 전이된다. 부담금을 비롯한 비용과 오랜 시간을 들여 재건축에 투자하기보다 차라리 신축 아파트를 사는 게 낫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강남에서도 잠실 일부 재건축 단지의 호가가 억대로 떨어졌다는데.

“서초, 강남구의 핵심 재건축 단지의 가격은 안 빠졌다. 강남권에선 잠실이 특이 사례라고 본다. 우선 잠실은 토지거래허가구역으로 지정돼 있다. 실거주 조건을 맞추려면 세입자를 낀 이른바 ‘갭투자’가 불가능한데, 거주 환경이 열악하다. 강남권 아파트는 15억 원 넘는 고가라 대출도 안 된다. 속된 말로 ‘현금 박치기’가 불가능한 것이다. 잠실을 대표하는 아파트 단지인 엘스, 리센츠, 트리지움 등 ‘엘리트’의 가격이 조정되고 있다. 재건축시장도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다.”

그렇다면 당분간 재건축 투자는 단념하고 시장 추이를 지켜봐야 할까. “재초환이라는 규제가 있는 한 원활한 재건축은 어렵다”는 게 김 소장의 주장이다. 그는 “현 정부가 부동산 규제 완화를 표방하고 나섰지만 재초환 폐지는 단기간에 어려울 것”이라면서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로 국내 부동산시장이 완전히 침체되고 건설업계에선 곡소리가 났지만, 당시 정부도 재초환 폐지가 아닌 시행 유예에 그쳤다”는 점을 근거로 들었다. 그러면서 김 소장은 “재건축 투자는 시장에 대한 깊은 분석과 이해가 필요하며, 특히 촘촘한 규제를 확실히 따져보는 게 중요하다”고 덧붙였다.

“재초환 폐지 단기간 내 어려워… 규제 확실히 따져야”
서울 강남의 아파트 단지 전경. [뉴스1]
서울 강남의 아파트 단지 전경. [뉴스1]


재초환이 있는 한 재건축 진행은 어렵다고 했는데, 투자를 단념해야 하나.

“모든 재건축 단지에 재초환이 적용되는 건 아니다. 반포주공1단지를 예로 들면 같은 단지에서도 1, 2, 4주구는 재초환이 적용되지 않는 반면, 3주구는 규제 대상이다. 2017년 12월 31일까지 최초 관리처분인가 신청이 접수된 단지는 재초환 적용 대상이 아니다. 재건축부담금을 납부하기 싫다면 재초환 대상이 아닌 단지에 대한 투자를 고려할 수 있다. 물론 가격이 비싸지만, 재초환 리스크가 여전한 상황에서 사업 진행이 확실하다는 메리트를 무시할 수 없다.”

긴 호흡의 투자를 고려해야 하나.

“그것도 한 방법이다. 가령 이제 갓 조합설립인가를 받았거나 안전진단을 신청하는 재건축 단지를 주목할 수 있다. 관리처분인가까지 6~8년은 우습게 걸리는 게 현실이다. 그때쯤이면 재초환 폐지나 시행 유예 조치가 이뤄질 수도 있다. 재건축 사업 초기 단계에서 안전진단 규제 완화는 비교적 기대해볼 만하다. 규제 완화를 기다리면서 가격 상승분을 누릴 수 있다. 반대로 당장 재건축된 신축 아파트에 입주하는 게 목적이라면 이주·철거가 시작된 곳을 노려볼 수 있다. 지금처럼 부동산시장이 혼란스러운 상황에선 사업성에 대한 우려로 재건축 사업이 멈출 가능성이 크다. 하지만 이주와 철거가 시작되면 당장 시장이 위축되더라도 금융비용이 부담돼 어떻게든 아파트를 완성하게 마련이다.”

향후 부동산시장 전망은 어떤가.

“지금 부동산시장 심리가 완전히 얼어붙었다. 올해 들어 서울 아파트 거래량 자체가 매달 수천 건에 불과해 글로벌 금융위기 때보다 적은 수준이다. 금리인상이 내년 상반기까지 계속된다는 분석도 있어 이 같은 상황이 당분간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 국내 요인만 살펴보면 내년 상반기 부동산시장에 주목할 만한 이벤트가 있다. 즉 양도소득세 일시 중과 유예가 2023년 5월 9일까지이고, 6월 1일은 매년 종합부동산세(종부세), 재산세 부과 기준일이다. 최근 정부가 다주택자에 대한 종부세 중과를 폐지하겠다고 나섰지만 국회에서 통과될지 미지수다. 이런 상황에서 중과를 피하려고 내년 상반기에 주택을 처분하려는 움직임이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 따라서 부동산시장이 대세 하락이냐, 일시 조정 국면이냐를 판단할 때 내년 하반기가 중요한 시점이라고 본다. 내년 상반기에 주택 매도 유인이 되는 이벤트는 다 끝난다. 재건축시장에선 당장 아파트 시세가 떨어져도 안전마진을 확보할 수 있는지를 진단해봐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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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기사는 주간동아 1360호에 실렸습니다]


김우정 기자 friend@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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