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장공유
읽기모드공유하기
동아일보|오피니언

열일곱과 서른넷 사이[2030세상/김지영]

김지영 스타트업 투자심사역(VC)·작가
입력 2022-09-27 03:00업데이트 2022-09-27 03:00
글자크기 설정 레이어 열기 뉴스듣기 프린트
글자크기 설정 닫기
김지영 스타트업 투자심사역(VC)·작가
한 고등학교로부터 작년에 이어 강의 요청을 받았다. 글쓰기 수업을 곁들인 진로 특강이었다. 작년 이맘때 처음 연락을 받았을 때에는 잠시 망설였다. 내 진로도 모르겠는데 강의는 무슨? 그럼에도 불구하고 덜컥 승낙을 했던 것은 깨질 땐 깨지더라도 기회가 오면 일단 덥석 물고 보자는 스스로와의 약속 때문이었다. 깜냥에 대한 고민은 하지 않기로 했다. 그래야 뭐든 배우더라는 나름의 깨침이었다.

한 시간이 넘는 거리를 기꺼이 달려 경기도 모처의 학교에 닿았다. 한 번 와 봤다고 연고 없는 동네의 곳곳이 익숙하고 반가웠다. 진로 상담실에 들어서자 선생님이 반갑게 맞아주셨다. “작년에 강의 평가 1등 하셨어요!” “그게 아무래도….” (대단한 성공기가 아닌) 조금 먼저 경험한 ‘언니’의 이야기라서 아닐까요, 겸손을 떨려다 말끝을 흐렸다. 어느덧 내 나이가 고1 학생들의 정확히 두 배라는 것을 염치없이 그제야 인지했다.

내 진로도 미완인데 무슨 말을 해줄까 하다 정한 주제는 열일곱의 내게 해주고 싶은 이야기였다. ‘장래희망’이 곧 인생의 목표인 줄 알았던 시절, 하지만 아는 선택지라고는 ‘의사, 변호사, 선생님, 작가’ 정도가 전부였던 시절이었다. 그리고 그마저도 당장의 시험 점수에 급급해 좋아하는 음식 고르는 것 이상의 고민을 할애하지 못했다. 답안지 제출하듯 장래희망란을 메우면서 불안했다. 이게 맞겠지?

하지만 짧은 세월 겪어 보니 직업은 ‘꿈’이 아니었다. 꿈을 찾기 위해 혹은 이루기 위해 걸어온 길목 곳곳에 직업은 수단으로서 존재했으며, 때로는 바뀌기도 늘어나기도 했다. ‘진로’라는 것은 한번 정하면 바꿀 수 없는 혹은 바꾸지 않아도 되는 어떤 것이 아니라, 성공과 실패를 반복하며 평생을 두고 진화하는 과정이었다. 그러니까, 당장 조급해하지 않아도 된다는 것, 하고 싶은 게 많아도 심지어 아직은 없어도 된다는 것 하나만큼은 꼭 말해주고 싶었다. 적어도 나는 그런 어른이 필요했다.

두 시간에 걸친 강의가 끝나고 기꺼이 번호를 알려줬다. 작게나마 도움이 되고 싶은 마음도 물론 있었지만 솔직하게는 후기를 듣고 싶은 사욕이 컸다. 그 밤, 많은 메시지를 받았다. 고마운 후기들에 각자의 고민이 덧대어 있었는데, 크게 두 단어로 요약됐다. 진로, 대인관계. 그 사연들을 읽어 나가는데 놀라우리만치 조금의 이질감도 느끼지 못했다. 이런저런 조언을 하는 대신 나는 나의 나약함을 공유했다. 저도 아직도 뭐가 될지 모르겠어요. 저도 여전히 사람이 어려워요. 그런데 그게, 원래 그런 건가 봐요. 그 무력함이 묘하게 위로가 됐다.

며칠 후, 교지편집부 친구가 인터뷰 질문을 보내왔다. 그중 한 질문에 눈이 오래 머물렀다. ‘만약 다시 10대로 돌아간다면 같은 직업을 선택하실 건가요?’ 글쎄, 여전히 정답은 모르겠지만 한 가지 확실한 건 ‘만약 다시 30대로 돌아간다면 같은 직업을 선택하실 건가요?’라는 질문을 언젠가는 받을 것이라는 것. 가르치러 갔다 배워온다. 위안을 주러 갔다 얻어온다. 열일곱이나 서른넷이나, 대체로 실패하고 종종 성공하며, 같이 잘 커보자 우리.

김지영 스타트업 투자심사역(VC)·작가
당신이 좋아할 만한 콘텐츠
댓글 0
닫기
많이 본 뉴스
최신기사
베스트 추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