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빌린 30만원, 한달뒤 100만원 돼”… 불법사채 내몰리는 서민들

  • 동아일보
  • 입력 2022년 9월 14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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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리인상의 그늘]
작년 법정 최고금리 20%로 낮춘뒤 최대 11만명 제도권 밖으로 밀려나
“불법업체여도 돈 빌릴 데는 여기뿐” 급전 필요한 취약계층 사채에 기대
금감원 “법정금리 초과 이자는 무효”

경기 부천시에 사는 50대 주부 A 씨는 2월 온라인 대출중개 사이트에서 알게 된 대출업자에게서 30만 원을 빌렸다. 일주일 뒤 50만 원을 갚는 조건이었지만 당장 생활비가 바닥난 A 씨가 손 벌릴 곳은 이 사이트밖에 없었다. 대출업자는 A 씨의 가족관계증명서와 친척, 지인 6명의 연락처를 받아갔다.

한 달 뒤 50만 원을 갚았지만 대출업자는 약속 기한인 일주일을 넘겼다는 이유로 연체료 50만 원을 요구했다. A 씨가 거절하자 가족과 지인들을 해코지하겠다며 협박 문자와 전화를 이어갔다. A 씨는 “30만 원에 삶이 무너지는 기분이었다. 금융당국에 신고해 추심 협박에서 겨우 벗어났다”고 했다. 그가 낸 대출 이자를 연 환산하면 3470%나 된다.

고물가, 고금리가 계속되는 가운데 돈줄이 막힌 서민들이 불법 사채 시장으로 내몰리고 있다. 특히 지난해 법정 최고금리가 20%로 낮아진 뒤 취약계층 최대 11만 명이 제도권 대출 시장 밖으로 밀려난 것으로 추산된다. 지난달 윤석열 대통령이 불법 사금융 척결을 지시하면서 금융당국도 특별 점검에 나섰다.
○ “30만 원, 1주일 뒤 50만 원으로 갚아라”

13일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올해 1분기(1∼3월) 접수된 불법 사금융 피해 신고 및 상담 건수는 2068건에 이른다. 지난해는 1년 전보다 25.7% 늘어난 9238건이 접수됐다. 이 중 고금리와 불법 채권 추심 신고가 각각 85%, 49.8% 급증했다.

지난해 불법 사채 피해자들은 평균 72일 동안 1302만 원을 빌린 것으로 조사됐다. 연 환산 평균 이자율은 229%에 달한다. 급전이 필요해 불법 사채를 찾은 이들이 대다수(95.5%)였다.

최근엔 악성 소액 단기 대출이 기승을 부리고 있다. 30만 원, 50만 원을 빌려주고 일주일 뒤 각각 50만 원, 80만 원을 갚게 하는 ‘30-50’ ‘50-80’ 대출이 대표적이다. 일주일 내 갚지 못하면 A 씨처럼 초고금리 연체 이자까지 붙는다.

구정한 한국금융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팬데믹 장기화와 물가 급등, 금리 인상이 맞물리면서 경제적 어려움에 처한 서민이 크게 늘었다”며 “이 중 제도권 금융에서도 돈을 빌릴 수 없는 취약계층을 사채업자들이 소액 단기 대출로 노리고 있다”고 했다.

13일에도 주요 대부 사이트에는 ‘오늘 중 10만 원 급합니다’ ‘급하게 100만 원만 빌려주실 분’ 등 소액 급전을 문의하는 글이 수백 건 올라왔다.
○ 취약계층 11만 명, 제도권 밖으로
특히 지난해 7월 법정 최고금리가 연 24%에서 20%로 내려간 뒤 취약계층은 제도권 대출의 마지막 보루인 대부업에서도 밀려나고 있다. 대부업체마저 고신용, 담보 위주의 대출에 나섰기 때문이다. 지난해 말 현재 대부업 이용자는 112만 명으로 최고금리가 낮아진 뒤 11만 명 줄었다. 금감원은 이 중 상당수가 불법 사금융 시장으로 내몰렸을 것으로 보고 있다.

급전이 필요한 취약계층이 불법 대출인 것을 알면서도 사채 시장에 기댈 수밖에 없다는 점에서 사회 문제로 이어질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서민금융연구원이 신용등급 6∼10등급 대출자를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에서 57.6%가 불법업체인 것을 알고도 대출받았다고 했다. 인천에서 소규모 사업체를 운영하는 50대 김모 씨도 올 초 가족 병원비를 마련하기 위해 사채업자에게 300만 원을 빌렸다. 그는 “불법업체여도 돈 빌릴 데는 여기밖에 없었다”고 했다.

금감원 관계자는 “사채업자라고 해도 법정 최고금리를 초과한 이자를 받는 것은 법 위반으로 무효”라며 “과도한 추심에서 벗어날 수 있도록 금감원에 신고해 채무자 대리인 제도 등을 적극 이용해야 한다”고 말했다. 서지용 상명대 경영학부 교수는 “정부는 취약계층에 대한 금융 지원에 나서는 한편 법정 최고금리 수준이 어느 정도가 적절한지 다시 논의해 봐야 한다”고 말했다.

김자현 기자 zion37@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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