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드의 노마드??[유목민]?’, 역대 두 번째 최연소로 PGA투어 정복

  • 주간동아
  • 입력 2022년 8월 13일 15시 42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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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종석의 인사이드 그린] 준비된 20세 챔피언 김주형, PGA투어 윈덤 챔피언십 첫 우승

8월 8일 미국 노스캐롤라이나주 그린즈버러 세지필드CC에서 열린 PGA투어 윈덤 챔피언십에서 우승한 김주형. 사진 제공 · PGA투어
8월 8일 미국 노스캐롤라이나주 그린즈버러 세지필드CC에서 열린 PGA투어 윈덤 챔피언십에서 우승한 김주형. 사진 제공 · PGA투어


그의 영어 별명은 ‘톰’이다. 5세 때부터 즐겨 보던 TV 애니메이션 ‘꼬마기관차 토마스와 친구들’에서 따왔다. 귀여운 애칭을 가진 스무 살 김주형이 세계 골프 판도를 뒤흔들 폭주기관차로 주목받고 있다. 미국프로골프협회(PGA) 투어에서 역대 두 번째 최연소 챔피언에 등극하며 화려한 스포트라이트를 받았다.

김주형은 8월 8일 미국 노스캐롤라이나주 그린즈버러 세지필드CC(파70)에서 열린 PGA투어 시즌 마지막 정규 대회인 윈덤 챔피언십에서 최종 합계 20언더파로 정상에 올랐다. 20세 1개월 17일 만에 우승해 2013년 존 디어 클래식에서 19세 11개월 17일 만에 정상에 선 조던 스피스 이후 역대 두 번째 어린 나이로 우승자 클럽에 가입했다.

그의 생일은 2002년 6월 21일. 한일월드컵 4강 진출의 뜨거운 열기가 한반도를 강타했던 때다. PGA투어에 따르면 2000년 이후 태어난 선수가 우승한 것은 김주형이 처음이다. 21세기 밀레니얼 세대를 이끄는 기관차가 됐다는 평가다. 김주형은 “정말 오랫동안 기다렸고 또 바라만 보던 PGA투어 첫 우승이다. 어려서부터 꿈꾸던 무대에서 우승해 무척 영광”이라고 소감을 밝혔다.

김주형은 아시아·태평양 지역을 떠돌며 성장했다. 서울에서 태어나 1년 만에 제주로 갔고, 골프 교습을 하는 아버지와 식당을 운영하는 어머니를 따라 중국, 호주, 필리핀, 태국 등에서 거주했다. 현재는 PGA투어에서 뛰는 한국 선배들이 많이 거주하고 있는 미국 댈러스에서 산다. 필드의 노마드(유목민)로 불리는 이유다. 여러 ‘역’에 정차하면서 일찍부터 넓은 세상에 눈을 떴고 내면적으로도 단단해졌다.

6세 때 호주에서 골프에 입문해 11세부터 선수로 나섰다. 16세가 된 2018년 연령 제한이 느슨한 아시안투어에 데뷔했다. 2018년 11월 파나소닉 오픈에서 아시안투어 역대 두 번째 최연소 우승을 차지했다. 17세 4개월 27일 만의 일이다. 2020년 한국프로골프협회(KPGA) 코리안투어 군산CC 오픈에서 우승하며 프로 최연소 우승(18세 21일), 입회 후 최단 기간 우승(3개월 17일) 신기록을 작성했다. 지난해 코리안투어에서 대상, 상금왕 등 4관왕에 등극한 데 이어 올해 초 막을 내린 아시안투어에서는 상금왕에 이름을 올렸다. 노승열(19세 5개월 25일)에 이어 역대 두 번째 최연소(19세 7개월 3일) 기록이다.
똑바로 멀리 치는 견고한 스윙
김주형이 한국프로골프 코리안투어 대회에서 아이언 샷을 하고 있다. 사진 제공 · 민수용 작가
김주형이 한국프로골프 코리안투어 대회에서 아이언 샷을 하고 있다. 사진 제공 · 민수용 작가
한국과 아시아가 좁게만 보인 김주형은 PGA투어의 새로운 별로 당당히 떠올랐다. 스타 기근에 시달리는 한국 남자 골프에 한 줄기 희망의 빛이라는 찬사도 쏟아지고 있다. 구자철 KPGA 회장은 “박세리 영향으로 세리 키즈가 나왔듯, 김주형을 따르는 주형 키즈가 쏟아지면 좋겠다”며 “한국 골프에 서광이 비추기를 기원한다”고 말했다.

김주형은 어린 나이지만 아시안투어와 코리안투어, 콘 페리(2부) 투어를 넘나들며 다양한 경험을 쌓았다. 그는 “여러 무대에서 많은 선수를 접하면서 잔디, 분위기 등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는 데 자신감이 생겼다”고 말했다.

김주형 스윙의 최고 장점은 일관성이다. 키 180㎝, 몸무게 100㎏의 건장한 체격을 바탕으로 뒤틀림이 많지 않게 스윙한다는 게 전문가들의 얘기. 클럽 계약사인 타이틀리스트 선수지원팀의 임지웅 담당 피터는 “스윙 분석기 결과를 보면 스윙 궤도나 스피드 등의 오차 범위가 굉장히 적은 견고한 스윙을 한다”며 “지난해 아이언을 신형 T100으로 바꾼 후 아이언의 방향성과 그린을 공략하는 정확도가 더욱 높아졌다”고 진단했다.

김주형은 이번 우승 후 “내 퍼터 무게가 200파운드(약 90㎏)나 나가는 것 같았다”고 말했다. 그만큼 퍼팅이 쉽지 않았다는 뜻. 하지만 김주형은 이번 대회 나흘 동안 퍼팅 이득 타수 12.564타를 기록해 이 부문 1위에 올랐다. 퍼팅으로만 다른 선수보다 12타 넘게 이득을 봤다는 의미다. 드라이버의 페어웨이 안착률은 73.21%로 공동 6위였고, 아이언 샷의 그린 적중률은 79.17%(공동 19위)였다. 롱게임과 쇼트게임 능력을 두루 겸비했다.

지난 시즌 코리안투어에서 김주형은 평균 타수 1위(69.16타)에 올랐다. 그린 적중률은 73.9%로 2위. 평균 드라이버 비거리(294야드)와 페어웨이 안착률(71.21%)은 모두 12위에 오를 만큼 ‘멀리 똑바로’ 치는 스타일이다. 평균 퍼트 수는 1.78개로 17위였다.

오랜 해외 생활에 따른 뛰어난 언어 실력도 장점이다. 김주형은 영어, 타갈로그어에도 능통하다. 이번 우승 후 농담까지 섞은 유창한 영어 인터뷰로 현지 취재진과 관계자의 입가에 웃음을 짓게 했다. 굳이 박찬호, 박세리, 손흥민 사례를 언급하지 않더라도 해외에 진출한 운동선수는 입과 귀가 터져야 제 기량을 펼칠 수 있다.

김주형은 어떤 위기에도 좀처럼 흔들리지 않는 강철 멘털의 소유자이기도 하다. 보기 이상의 스코어를 기록한 뒤 바로 다음 홀에서 만회하는 바운스 백 능력도 뛰어나다. 윈덤 챔피언십에서도 김주형은 1라운드 1번 홀(파4)에서 8타 만에 홀아웃해 쿼드러플 보기(4오버파)를 기록했다. ‘출근길 탈선’이었지만 남은 71개 홀에서 그는 24언더파를 집중하며 대반전 우승 드라마를 썼다. PGA투어 측은 홀별 데이터를 분석한 1983년 이래 대회 첫 홀에서 쿼드러플 보기 이상을 기록하고 우승한 선수는 김주형이 처음이라고 밝혔다.

PGA투어 특별 임시회원이던 김주형은 어엿하게 투어 회원 자격을 얻었다. 특급 선수들만 나선다는 올 시즌 플레이오프 출전권도 따냈다. 연초 인터뷰에서 김주형은 2022시즌 주요 목표로 세계 랭킹 100위 이내 유지, 우승 한 번 하기, 콘 페리 투어 진출 등 세 가지를 꼽았다. 8월까지 그가 받은 성적표는 이미 초과 달성 수준이다. 김유상 CJ 스포츠마케팅팀장은 “어린 나이에도 뛰어난 목표의식을 갖고 있고 이기는 법을 안다”며 “공격적인 플레이를 하다가도 어떨 때는 지키는 경기를 할 줄 아는 영리한 선수”라고 말했다.

김주형은 9월 프레지던츠컵(미국과 유럽을 제외한 인터내셔널팀 대항전) 선발이 유력할 만큼 거물 대접을 받고 있다. 당초 물 건너 간 줄 알았던 항저우아시안게임에도 도전할 수 있게 됐다. 프로골퍼에게도 문호가 개방된 이 대회는 당초 올해 9월 개최 예정이었고, 김주형은 세계 랭킹에서 밀려 프로선수 2명에게 주어지는 대표팀 자리를 차지하지 못했다. 하지만 코로나19 사태로 대회가 1년 연기되면서 다시 길이 열렸다.
뚜렷한 목표의식에 완급 조절 능력도 탁월
한국프로골프 코리안투어 대회 도중 귀여운 표정으로 손하트를 그려보인 김주형. 사진 제공 · 민수용 작가
한국프로골프 코리안투어 대회 도중 귀여운 표정으로 손하트를 그려보인 김주형. 사진 제공 · 민수용 작가


김주형은 이번 주 세계 랭킹을 34위에서 21위까지 끌어올렸다. 한국 선수로는 임성재(20위) 다음으로 높다. 그는 “해외 여러 곳에 살면서 다른 선수들이 국기를 달고 경기를 뛰는 모습을 지켜봐 왔다. 대한민국 국가대표가 된다는 것은 매우 의미 있고 설레는 일이니 기회가 된다면 좋은 경기를 해보고 싶다”고 말했다. 아시안게임에서 금메달을 따면 병역 면제 혜택도 주어진다.

김주형은 어른 대접을 받는다는 약관 스무 살이 된 소감을 물었을 때 이런 대답을 했다.

“20세가 됐다고 엄청 달라지지는 않는 것 같아요(웃음). 다만 나이가 들고 저를 알아보는 사람이 많아질수록 책임감이 커져간다는 걸 하루하루 느끼고 있습니다. 좀 더 침착하고 인격적으로 성숙한 골퍼가 돼야죠.”

김주형은 롤모델로 타이거 우즈(미국), 로리 매킬로이(북아일랜드), 임성재를 꼽았다. 그 이유에 대해 그는 “우즈의 승부사 기질, 매킬로이의 장타력, 임성재 프로의 꾸준한 경기력을 닮고 싶다”고 설명했다.

우즈. 매킬로이, 임성재보다 빠른 나이에 PGA투어 챔피언에 오른 김주형의 시선은 더 높은 곳을 향하고 있다. 힘찬 기적 소리를 낸 그의 앞에 꽃 장식 철로가 놓인 듯하다.
김종석 부장은…
2019년부터 지난해까지 동아일보 스포츠부장을 역임한 골프 전문기자다. 1998년부터 골프를 담당했고 농구, 야구, 테니스, 배드민턴 등 주요 종목을 두루 취재했다.




김종석 채널A 성장동력센터 부장 kjs0123@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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