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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일보|오피니언

검은 창문[이은화의 미술시간]〈216〉

이은화 미술평론가
입력 2022-05-26 03:00업데이트 2022-05-26 0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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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르셀 뒤샹 ‘신선한 과부’, 1920년.
1920년 마르셀 뒤샹은 목수를 시켜 작은 크기의 프랑스식 창을 만들었다. 창문에는 유리 대신 검은 가죽이 덧대어져 있어서 무용하기 짝이 없어 보인다. 도대체 뒤샹은 왜 이런 창을 만든 걸까? ‘신선한 과부’라는 생뚱맞은 제목은 또 뭘 의미하는 걸까?

뒤샹은 20세기 미술에 가장 큰 영향을 준 미술가로 손꼽힌다. ‘현대미술의 아버지’로 불리는 그는 예술가가 수공업적으로 그리거나 만드는 전통 예술을 거부하고 기성품을 선택해 ‘레디메이드’라 명명했다. 1913년 그는 입체파 그림을 포기한 뒤 세상의 통념을 뒤집는 첫 레디메이드 작품을 선보였고, 1917년 뉴욕 전시에 출품한 흰 변기로 최고의 명성을 얻었다. 1920년에 처음 제작된 이 창은 뒤샹 작업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한다. 스스로는 새로운 작업의 출발점이라고 말한다. 말장난을 즐겼던 뒤샹은 글자 몇 개를 바꿔서 전혀 다른 의미의 문장을 만들어 내곤 했는데, 이 작품의 제목인 ‘신선한 과부(Fresh Widow)’도 ‘프랑스식 창문(French Window)’에서 철자 몇 개를 바꾼 것에 불과하다. 장난스러운 표현이지만 실은 암울한 시대상을 담은 제목이기도 하다. 제1차 세계대전의 여파로 당시 유럽에는 남편을 잃은 여성들이 많았기 때문이다. 창문 아래에는 그의 여성 분신 이름인 ‘로즈 셀라비’로 서명돼 있다. 뒤샹이 여성 이름으로 서명한 첫 작품으로 이후 뒤샹은 성별까지 깨는 과감한 도전을 이어나갔다.

“눈앞의 관객을 기쁘게 하는 예술은 위험하다. 나는 50년 후, 아니 100년 후의 관객을 기다릴 것이다.” 뒤샹이 한 말이다. 혁신적인 예술가는 시대를 앞선 작품을 만들어야 하지, 당장 환영하며 찬사를 보내는 대중을 경계해야 한다는 의미다. 창문은 보통 바깥세상으로 통하는 밝은 미래를 상징한다. 검게 덧씌워진 창문은 미래가 없는 암울한 세상과 앞을 내다보지 못하는 어리석은 사람에 대한 그만의 냉소적인 표현은 아니었을까.

이은화 미술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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