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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일보|오피니언

[횡설수설/정원수]‘검사 유배지’ 법무연수원

입력 2022-05-20 03:00업데이트 2022-05-20 11: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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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 정부 출범 직후인 2017년 6월 검찰총장 공백 상태에서 첫 검찰 간부 인사가 났다. 박근혜 정부 때 우병우 대통령민정수석비서관과 가까웠던 고검장 1명과 검사장 3명을 일선 검찰청에서 법무연수원 연구위원으로 내보냈다. 당시 법무부는 “검찰에 대한 신뢰를 회복하기 위해 과거 중요 사건의 부적정 처리 등 문제가 제기되었던 검사들을 수사지휘 보직에서 배제했다”고 밝혔다. 이른바 ‘적폐 검사’를 좌천시킨 것이다.

▷한동훈 법무부 장관 임명 다음 날인 18일 검찰총장 부재중에 윤석열 정부의 첫 검찰 간부 인사가 단행됐다. 이성윤 고검장과 이정수 심재철 이정현 이종근 검사장이 법무연수원 연구위원으로 전보 조치됐다. 모두 추미애 박범계 전 법무부 장관 재임 때 잘나가던 검찰 간부들이다. 이들은 윤 대통령이 검찰총장 재직 때 징계를 주도했거나 가족 관련 수사를 지휘한 악연이 있다. 좌천 대상만 바뀌었을 뿐 5년 전 인사가 데칼코마니처럼 되풀이된 것이다.

▷법무연수원이 좌천 검사들의 집합소가 된 건 이명박 정부 때인 2012년 7월부터였다. 검사장 승진에서 탈락한 우 전 수석 등 사법연수원 19기 검사 6명을 이례적으로 연구위원으로 발령 냈다. 동기 중 최선두라고 생각하던 우 전 수석은 당시 자신의 처지를 ‘상처받고 웅크리고 앉아 있는 호랑이’에 빗댄 적이 있다. 이 인사의 실무를 검찰과 검사였던 한 장관이 담당했다. 조국 전 장관 수사 이후 4차례 좌천된 한 장관은 법무연수원 연구위원으로 발령받자 “보복을 견디는 것도 검사의 일”이라는 입장을 냈다.

▷처음부터 법무연수원 연구위원이 한직은 아니었다. 전두환 정권 때 ‘검찰의 황태자’로 불리던 박철언 전 의원은 검사들도 없는 서울지검 특수부장이라는 보직을 갖고 2, 3년 청와대로 출근했다. 1986년 11월 박 전 의원은 4단계를 건너뛰면서 혼자 검사장으로 초고속 승진했는데, 인사 직전 법무연수원에 검사장급 연구위원직이 급조됐다. 정권 실세를 챙겨주기 위한 전형적인 위인설관(爲人設官)인 셈이다. 그는 연구위원 발령을 받고도 국가안전기획부 등에서 근무하다가 나중에 사표를 냈다.

▷관용차가 나오는 일선 검찰청과 달리 법무연수원 연구위원으로 발령받으면 고위 간부들은 자가용으로 첫 출근을 할 때부터 척박한 환경을 실감한다고 한다. 이런 수모를 견디지 못하고, 사표를 내는 일도 많다. 정권 교체 이후 연구위원 자리가 부족할 정도로 좌천 인사를 하는 건 결국 검찰 인사가 정치적 외풍에 따라 이뤄진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런 인사를 남발하지 말고, 연구위원의 직책에 맞는 검사에게 보직을 맡겨야 진짜 검찰 인사의 정상화라고 할 수 있겠다.

정원수 논설위원 needju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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