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신동 母子, 생전 동네서도 고립됐다 [사건 Zoom In]

  • 동아일보
  • 입력 2022년 5월 1일 12시 13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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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 한 씨, 폐지 줍다 3년 전 쓰러지고
아들 이 씨, 사업 실패에 말수 적어져
지병·궁핍 심해지며 이웃들과 점차 멀어져
주민들 “왕래 끊긴지 좀 됐다”, “심적으로 위축돼 보였다” 증언
잇달아 숨지고 한 달 뒤 발견

모자가 살던 집. 근처에서는 건물 신축공사가 진행되고 있다. 이승우 기자 suwoong2@donga.com
모자가 살던 집. 근처에서는 건물 신축공사가 진행되고 있다. 이승우 기자 suwoong2@donga.com
지난달 24일 서울시 종로구 창신동의 한 작은 주택가. 주말이 되자 마을 어르신 100여 명이 인근에서 큰 한 교회로 예배를 드리기 위해 모여들었다. 동네 어르신들의 왕래가 꽤 잦은 교회 정문 옆 골목을 따라 30m 정도 들어가니 쓰러져가는 한옥집이 보였다. 최근까지 한모 씨(82)와 그의 아들 이모 씨(51)가 살던 곳이었다. 주민들은 “저 집에서 누가 죽었다고 들었는데…”라며 한 씨와 이 씨에 대해 떠올려 보려 했지만 대부분은 “본 적은 있는데 왕래가 끊긴 지 좀 됐다. 기억이 잘 안 난다”고 했다.

모자는 1930년대 지어진 한옥을 소유하고 있다는 이유로 기초생활급여를 받지 못했고, 궁핍과 지병으로 어려움을 겪다가 세상을 떠났다. 경찰 관계자는 “부검 결과 3월 초 아들 이 씨가 먼저 지병으로 사망하고, 뒤이어 어머니 한 씨가 심근경색으로 사망한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지난달 20일 모자의 주검을 발견한 것은 수도사업본부 직원이었다. 올해 1, 2월 수도요금이 90만 원 넘게 청구돼 미납된 것을 미심쩍게 생각한 직원이 집을 방문했던 것. 사망 시점부터 발견까지 약 한 달 동안 아무도 모자의 죽음을 몰랐다. 취재 결과 생전 모자는 동네 주민 등 주변과의 관계가 거의 단절됐던 것으로 파악됐다. 모자는 지병이 악화되고 생활고가 심해지면서 마치 섬처럼 점점 더 고립돼갔다고 주민들은 말했다.

● “이웃과 어울릴 시간도 없었을 것”
모자는 1980년대부터 이곳에 살았다고 한다. 주민들은 어머니 한 씨를 ‘고생만 하다 간 사람’으로 기억했다.

창신동에 60년 넘게 살았다는 문모 씨(80)는 한 씨를 두고 “남편 없이 혼자 아들을 키우느라 평생 일만 했지, 이웃과는 자주 어울릴 시간도 없었을 것”이라며 안타까워했다. 모자의 집 근처에 사는 김모 씨(79)는 “비가 오나 눈이 오나 생계를 위해 짐수레를 끌고 다니며, 폐지를 줍고 닥치는 대로 일만 하던 사람이었다. 3년 전쯤부터 몸이 불편해서 집에 누워만 있었다”고 떠올렸다.

최근 집에서 숨진 뒤 한 달여 만에 발견된 모자가 살던 서울 종로구 창신동의 골목. 아들 이 씨가 생전 비둘기 먹이를 주던 곳이다. 이승우 기자 suwoong2@donga.com
최근 집에서 숨진 뒤 한 달여 만에 발견된 모자가 살던 서울 종로구 창신동의 골목. 아들 이 씨가 생전 비둘기 먹이를 주던 곳이다. 이승우 기자 suwoong2@donga.com
주민들은 아들 이 씨를 ‘말수가 없어 다가가기 쉽지 않았던 사람’으로 기억했다. 인근 교회 관계자는 “매일 집 앞 골목에 나와 하염없이 비둘기에게 먹이를 주는 모습을 봤다”며 “주민들과는 거의 어울리지 않았고 외로워보였다”고 했다. 모자와 같은 골목에 사는 이모 씨(81)는 “평소엔 집 밖에 잘 나오지 않다가 인적이 드문 밤 11시 반쯤 되면 나와 골목을 산책했다”고 회상했다.

인근 교회를 방문하느라 이 동네를 자주 찾았다던 B 씨는 “가끔 비둘기 먹이를 주던 아들이 있었다. 당시엔 다가가기 좀 망설여졌다”면서 “어느 순간부터 안보였다”고 했다.

모자가 그나마 자주 방문하며 교류가 있었던 곳은 한 약국이었다. 약국 직원 A 씨에 따르면 모자는 지난해 9월까지 두 달에 한 번꼴로 약을 사 갔다. 주로 혈압약을 받아갔다고 했다. A 씨는 “3년 전까지 어머니 한 씨가 약을 받아 가셨는데 거동이 불편해지면서 그 뒤론 아들이 와서 약을 받아갔다”고 했다. 이 직원은 아들 이 씨가 용달 등의 사업을 몇 차례 시도했는데 번번이 실패한 것으로 안다고 했다. 그러면서 점점 더 말수가 적어졌고, 최근에는 전혀 말을 하지 않고 묵묵히 약만 받아갔다고 했다.

어머니 한 씨도 거동이 불편해지기 전 약국에 찾아왔을 때는 A 씨에게 경제적 어려움을 자주 털어놓곤 했다. A 씨는 “2017년 한 씨가 약국에 와서 ‘아들이 용달 사업을 다시 해보려고 집을 팔려 하는데 어떡하면 좋겠냐’고 물었다”며 “저를 포함 주변 사람들은 낡은 집을 팔아도 얼마 돈이 나오지도 않는데다, 살 곳이 없어진다고 만류했다”고 전했다.

● “생활고 시달리며 더욱 고립돼”
모자는 노모가 몸이 불편해지면서 일을 그만 둬야했던 3년 전부터는 국민·기초연금 54만 원을 빼면 별다른 소득이 없었다.

50년 넘게 인근에서 방앗간을 운영해온 박모 씨(82)는 “약 3년 전부터 모자가 집에서도 나오지 않으니 가끔 집을 찾아가서 식재료를 건네줬다”면서 “그런데 1년 전부터 아들 이 씨가 ‘찾아오지 말라’고 해서 교류가 완전히 끊겼다”고 말했다. 동네 주민 최모 씨(78)는 “아들 이 씨에게 ‘어머니가 아프신데 일이라도 좀 구해보라’고 해도 말을 듣지 않았다. 심적으로 위축돼 보였다”고 회상했다.

뚜렷한 소득 없이 생활을 이어가던 2019년 9월. 한 씨는 처음으로 수도요금 9만5000원마저 낼 수 없는 지경이 됐다. 수도요금에 이어 전기요금, 통신비, 케이블 TV 요금, 신용카드 대금이 줄줄이 연체됐다. 요금이 밀리자 1~2년 전 한국전력, 중부수도사업소 관계자들도 집을 방문한 적이 있다. 대부분 “문이 잠겨 있었고 연락도 되지 않았다”고 한다.

지난달 28일 찾은 모자의 집 대문 앞에는 각종 요금 납부 독촉장이 떨어진 채 그대로였다. 종로구청 관계자는 “모자가 수입이 없고 지원도 없던 가운데 관계 단절과 고립 속에서 죽어간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이승우 기자 suwoong2@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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