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정-직장 역할 갈등, ‘우울증’ 위험 높인다…2030 취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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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2년 4월 29일 12시 52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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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티이미지뱅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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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정과 직장에서의 역할 갈등이 여성 근로자의 우울증 위험을 높인다는 연구 결과가 나왔다.

고려대학교 안암병원 정신건강의학과 한규만 교수팀은 2018년 한국여성정책연구원에서 시행한 여성가족패널조사(KLoWF) 자료를 이용해 19세 이상 여성 근로자(자영업자 및 무급 가족 근로자 포함) 4714명을 대상으로 직장과 가정에서의 역할을 동시에 수행하면서 느끼는 심리적 갈등, 즉 일·가정 갈등(work-family conflict) 정도와 우울 증상 간의 상관관계를 분석한 결과를 29일 발표했다.

연구팀은 여성 근로자들이 직장과 가정에서의 역할들을 동시에 수행하게 되면서 겪는 심리적 갈등의 수준을 7문항의 설문지로 평가했다. 전체 표본에서 상위 25%에 해당하는 점수를 보인 경우 높은 수준의 일·가정 갈등이 있는 것으로 정의했다. 우울 증상의 경우 역학 연구에서 널리 쓰이는 9문항의 한국판 PHQ-9 설문지를 이용해 평가했다.

연구 결과, 높은 수준의 일·가정 갈등을 느끼는 여성 근로자는 낮은 수준의 일·가정 갈등을 느끼는 근로자에 비해 우울 증상을 경험할 위험성이 2.29배 높았다. 또한 높은 수준의 일·가정 갈등과 우울 증상 간의 상관관계는 20~30대의 젊은 여성, 교육 수준이 높은 여성, 소득이 높은 여성, 1명의 자녀가 있는 여성, 비정규직 여성 근로자, 서비스직에 종사하는 여성에서 두드러지게 나타났다.

특히 50대 및 60대 여성 근로자에서는 일·가정 갈등이 각각 2.32배, 1.87배 우울 증상의 위험을 높인 반면, 20~30대 여성 근로자에서는 3.78배로 높은 위험도를 나타냈다. 이는 여성 근로자들 중에서도 일·가정 갈등으로 인한 우울 증상의 발생 위험으로부터 더욱 취약함을 보이는 계층이 있다는 점을 시사하는 결과다.

한규만 교수는 “20~30대의 젊은 여성 근로자들은 직장에 들어간 지 얼마 되지 않았기 때문에 아직 가정과 직장에서의 역할 갈등을 다루는데 필요한 노하우나 스킬이 충분하지 않을 수 있다”며 “특히 이들은 직장에서 새로운 역할을 배우고 하급자로서 일하며 많은 직무스트레스를 겪을 뿐 아니라, 동시에 육아와 관련한 스트레스가 매우 클 수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어린 자녀를 둔 여성 근로자에서는 일·가정 갈등이 매우 실질적인 스트레스 요인이 될 수 있다”며 “즉, MZ세대로 대변되는 20~30대의 여성 근로자들은 이중의 스트레스를 겪는 것”이라고 설명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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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 수준이 높고, 소득이 높은 여성 근로자에게서 일·가정 갈등에 따른 우울 증상의 위험이 두드러지게 나타나는 건 심리적 부담감 때문이다. 직장 내에서 관리직이나 전문직에 종사할 가능성이 높은 이들이 가사 부담에도 불구하고 직무를 완벽하게 수행해야 한다는 심리적 부담감을 많이 느낄 수 있다는 것이다.

서비스직 종사자나 비정규직 근로자들이 일·가정 갈등에 따른 우울 증상의 위험으로부터 취약한 이유는 감정노동이나 고용불안정성이라는 이중의 심리적 부담을 겪고 있기 때문이다.

한규만 교수는 “일·가정 갈등으로 인해 20~30대의 여성 근로자들이 직장을 그만둬 경력이 단절되면서 생기는 사회·경제적 손실도 크다”며 “직장과 가정 생활의 공존을 도울 수 있는 유급 육아휴직이나 유연근무제와 같은 정책적 지원을 늘려야 한다. 또한 이러한 제도들을 원할 때 언제든 사용할 수 있는 가정 친화적 직장 문화를 만드는 것이 무엇보다도 중요하다”고 밝혔다.

또한 “일·가정 갈등으로 인한 우울 증상은 직장 업무의 동기 부여나 생산성이 떨어지고 가정에서는 정서적으로 소진되고 무기력해지는 ‘번아웃 증후군’으로 나타나는 경우가 있다”며 “제대로 된 치료를 받지 않은 경우 우울증으로 진행하는 경우가 있어서 주의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고려대학교 안암병원 정신건강의학과 한규만 교수
고려대학교 안암병원 정신건강의학과 한규만 교수
한편, 이번 연구(Association between work-family conflict and depressive symptoms in female workers: An exploration of potential moderators)에는 한 교수 외에 올 2월 고려대 의대를 졸업한 이지승, 임지은, 조송희 학생(공동1저자) 등이 참여했다. SSCI급 국제학술지인 ‘정신의학연구저널’(Journal of Psychiatric Research) 온라인판 최신호에 실렸다.

정봉오 동아닷컴 기자 bong087@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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