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박하지만 성공한 덕후’… 그래서 하루키에 ‘덕질’한다

  • 동아일보
  • 입력 2022년 3월 31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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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엔 클래식 LP… 하루키 에세이 출간하자마자 베스트셀러로
마라톤부터 맥주-야구-티셔츠까지…
하루키 ‘취미 에세이’에 독자들 열광… 비용 많이 안 드는데다 분야도 다양
‘순수하게 즐기는’ 모습에 더 빠져… 소설 속 취미 찾는 숨바꼭질도 재미

독자들이 무라카미 하루키의 덕질을 좋아하는 건 그의 취향을 믿고 따르
기 때문이다. 그는 에세이 ‘오래되고 멋진 클래식 레코드’에서 “남이 내리
는 평가보다 나 자신의 귀를 신뢰한다. 혹은 취향을 우선으로 한다”며 자
신의 취미 생활에 대한 소신을 밝혔다. ⓒIvanGimNinez-Tusquets Editores
독자들이 무라카미 하루키의 덕질을 좋아하는 건 그의 취향을 믿고 따르 기 때문이다. 그는 에세이 ‘오래되고 멋진 클래식 레코드’에서 “남이 내리 는 평가보다 나 자신의 귀를 신뢰한다. 혹은 취향을 우선으로 한다”며 자 신의 취미 생활에 대한 소신을 밝혔다. ⓒIvanGimNinez-Tusquets Editores
마라톤, 수영, 맥주, 야구, 재즈, 티셔츠….

에세이를 통해 ‘덕후’로서의 면모를 마음껏 드러낸 일본 작가 무라카미 하루키(73)가 클래식으로 돌아왔다. 자신이 소장 중인 클래식 LP를 예찬하는 에세이 ‘오래되고 멋진 클래식 레코드’(문학동네)를 통해서다. 책은 23일 출간 직후 온라인 서점 알라딘 종합 베스트셀러 6위에 오를 정도로 반응이 좋다. 지난해 5월 자신이 소장한 티셔츠를 주제로 한 에세이 ‘무라카미 T’(비채)로 서점가를 휩쓴 뒤 10개월 만에 덕후 하루키의 힘을 증명한 것.

하루키는 에세이를 통해 덕후의 면모를 한껏 보여준다. ‘만약 우리의 언어가 위스키라고 한다면’(2020년·문학사상)에선 위스키에 대한 예찬을 펼친다. ‘의미가 없다면 스윙은 없다’(2006년·문학사상)와 ‘포트레이트 인 재즈’(2013년·문학사상)는 재즈 찬양기다. 그리스, 이탈리아 로마에서 3년을 보낸 이야기를 담은 ‘먼 북소리’(2004년·문학사상)엔 여행자의 모습이 담겼고, ‘장수 고양이의 비밀’(2019년·문학동네)에선 고양이 사랑이 느껴진다.

무라카미 하루키는 매년 마라톤 대회에 빠지지 않고 참가한다. 그는 에세이 ‘달리기를 말할 때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에서 “장거리 달리기에 있어서 이겨내야 할 상대가 있다면, 그것은 바로 과거의 자기 자신”이라고 했다. 문학사상 제공
무라카미 하루키는 매년 마라톤 대회에 빠지지 않고 참가한다. 그는 에세이 ‘달리기를 말할 때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에서 “장거리 달리기에 있어서 이겨내야 할 상대가 있다면, 그것은 바로 과거의 자기 자신”이라고 했다. 문학사상 제공
왜 독자들은 하루키의 ‘덕질’(자신이 좋아하는 것을 파고드는 행위)에 끌릴까. 하루키 전문가들은 세계적인 베스트셀러 작가지만 비교적 소박한 취미를 즐기는 모습에 독자들이 매료됐다고 분석한다. 대표적인 게 언제 어디서든 할 수 있는 달리기다. 에세이 ‘아무튼, 하루키’(2020년·제철소)를 쓴 번역가 이지수 씨는 “하루키의 취미 대부분은 많은 돈이 들지 않는 것들이라 독자들이 친숙함을 느낀다”고 했다.

하루키가 ‘성덕’(성공한 덕후)인 것도 한 요인으로 꼽힌다. ‘위대한 개츠비’ 등 매료된 작품을 번역하는 모습에서 보상이 아닌 좋아하는 일을 향한 순수한 즐거움이 느껴진다는 것.


취미의 종류도 많아 특정 분야별로 관심 있는 독자들을 폭넓게 사로잡는다. 각각의 취미에 대한 깊이가 만만치 않은 것도 특징이다. ‘오래되고…’를 포함해 하루키 책을 다수 번역한 홍은주 씨는 “하루키는 수십 년째 조용히 자신의 취향에 집중해 온 덕질 선구자”라며 “하루키의 여러 취미 생활에 탄탄한 내공이 담긴 것도 그가 덕질을 즐기기 때문”이라고 했다.


독자들은 소설 속에서 하루키와 일종의 ‘숨바꼭질’을 벌이기도 한다. “술은 모든 음식물 가운데 가장 흥이 나는 축제와 같다”(‘세계의 끝과 하드보일드 원더랜드’), “위스키를 따르는 소리는 가까운 사람이 마음을 여는 듯한 소리”(‘기사단장 죽이기’)라는 대사는 하루키의 마음을 대변한다. 이 씨는 “하루키의 소설에서 취미 생활이란 게임 개발자가 게임 속에 ‘재미’로 몰래 숨겨 놓은 메시지나 기능을 뜻하는 ‘이스터에그’의 역할을 한다”고 했다.

‘무라카미 하루키 에세이 걸작선 세트’(전 5권·2013년)를 포함해 하루키의 여러 작품을 번역한 김난주 씨는 “하루키는 자신이 지향하는 삶의 모습을 문학적으로 드러내기에 독자들은 그의 취향을 파고들게 된다”고 했다. 이 씨는 “남성이 주인공인 소설을 읽을 때 독자는 주인공과 하루키를 유사하다고 여긴다”며 “하루키의 다양한 취미가 에세이와 소설에서 유기적으로 이어져 독자들이 퍼즐 맞추듯 이를 파악하는 재미도 크다”고 했다.

이호재 기자 hoho@donga.com
#하루키#덕질#취미 에세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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