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득 줄고 생활은 불편… 국립공원 지킴이들이 떠난다

  • 동아일보
  • 입력 2022년 3월 26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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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클리 리포트]‘대한민국 0.01%’ 국립공원 주민들
22곳 146개 마을에 4867명 거주
보존 논리에 열악해진 환경
해외선 보조금 주며 정착 지원

천연기념물 노송이 만든 ‘명품마을’ 전북 남원시 지리산국립공원에 위치한 와운마을 뒷산에는 높이 20m의 노송 두 그루가 서 있다. 이 중 ‘천년송’으로 불리는 큰 나무(위 사진 왼쪽)는 천연기념물로 지정됐다. 주민들은 매년 설에 마을의 안녕을 기원하며 제사를 지낸다. 남원=박영철 기자 skyblue@donga.com
천연기념물 노송이 만든 ‘명품마을’ 전북 남원시 지리산국립공원에 위치한 와운마을 뒷산에는 높이 20m의 노송 두 그루가 서 있다. 이 중 ‘천년송’으로 불리는 큰 나무(위 사진 왼쪽)는 천연기념물로 지정됐다. 주민들은 매년 설에 마을의 안녕을 기원하며 제사를 지낸다. 남원=박영철 기자 skyblue@donga.com
국립공원 안에도 사람이 산다. 생태계와 경관을 보존하기 위해 지정된 전국 22곳, 총면적 6726km²의 국립공원에는 2020년 말 기준 146개 마을에 4867명이 살고 있다. 이들은 연간 약 4000만 명이 탐방하는 국립공원의 ‘또 다른 주인’이다.

국립공원 내 마을 역시 다른 시골 마을처럼 소멸을 걱정해야 하는 처지다. 거주민은 5년 새 635명(11.5%)이 줄었다. 사람이 떠나면 국립공원 훼손 우려가 없을 것 같지만 실제론 그렇지 않다. 빈집이 더 빨리 낡고 삭듯이 사람 손길이 닿지 않는 국립공원은 관리가 더 어려워진다. 외국에서 국립공원 거주자에게 보조금을 지원하는 이유다.

14일 오전 전북 남원시 고속철도(KTX) 남원역에서 차로 1시간 반쯤 달리자 지리산 중턱에 다다랐다. 탐방객의 출입과 안전을 관리하는 지리산국립공원 전북사무소 뱀사골분소가 보였다. 분소에 들어서자 새순이 올라와 봄기운이 감도는 지리산 능선이 한눈에 들어왔다. 차 한 대가 겨우 지날 만큼 좁고 굽이친 산길을 15분쯤 더 이동하자 인가가 보였다. 구름이 누웠다 간다고 해서 이름 붙여진 ‘와운(臥雲)마을’이다.
○ 노송이 살린 마을
천연기념물 노송이 만든 ‘명품마을’ 함께 천년송을 둘러본 공안수 씨(오른쪽 사진 왼쪽)와 박금모 씨는 “산불로 나무가 소실될까 봐 두려워 늘
 나무 주위를 살핀다”고 말했다. 남원=박영철 기자 skyblue@donga.com
천연기념물 노송이 만든 ‘명품마을’ 함께 천년송을 둘러본 공안수 씨(오른쪽 사진 왼쪽)와 박금모 씨는 “산불로 나무가 소실될까 봐 두려워 늘 나무 주위를 살핀다”고 말했다. 남원=박영철 기자 skyblue@donga.com
외지인을 가장 먼저 반기는 건 마을 뒷산에 우뚝 솟은 노송(老松) 두 그루다. 높이 20m의 큰 나무를 할머니 나무, 그보다 조금 작은 나무를 할아버지 나무라고 부른다. ‘천년송’으로도 불리는 할머니 나무는 2000년 천연기념물로 지정돼 마을 명물이 됐다. 수령은 500년 이상으로 추정한다.

“이 나무는 우리 마을 보물이나 마찬가지예요.”

이장 박금모 씨(73)가 뿌듯한 표정으로 나무를 올려다보며 말했다. 그럴 만한 이유가 있다. 약 20년 전까지는 이 마을로 이어진 찻길이 없었다. 주민들은 울퉁불퉁한 산길을 지게를 지고 오르내렸다. 아이들은 10km 떨어진 초등학교까지 걸어 다녔다.

남원시 등에 도로를 놓아 달라고 요청했지만 번번이 거절당했다. 산길을 있는 그대로 보존하라는 산악단체 등의 반대가 컸다. 그런데 천년송이 천연기념물로 지정되면서 상황이 바뀌었다. 탐방객이 몰려 찻길이 필요해졌기 때문이다. 그제야 마을로 차가 들어왔다.

전북 완주군 의원을 지낸 박 씨는 2010년 부인이 열 살 때부터 살았던 이 마을로 이주했다. 그는 손녀들까지 6대째 이 마을에서 살고 있는 토박이 공안수 씨(69)와 마을 환경을 개선하기 위해 의기투합했다. 이들이 남원시와 문화재청 등에 요청을 거듭한 끝에 5년 전엔 천년송까지 오르는 흙길에 나무 계단을 설치했다.

2015년 ‘국립공원 명품마을’로 지정되면서 사정은 조금 나아졌다. 명품마을은 국립공원관리공단이 주민 거주 환경을 개선하기 위해 2010년 시작한 사업이다. 현재까지 17개 마을이 지정됐다. 박 씨는 “마을 주민의 행복지수를 전국 1등으로 만드는 게 꿈”이라고 말했다.
○ 달갑지 않던 국립공원 지정
와운마을은 ‘산속의 섬’이다. 워낙 깊숙한 곳에 있다 보니 외부와 교류가 적었다. 주민들은 광복이 된 것도 일주일이 지나서야 알았다. 마을에 큰 위기가 닥친 것도 그 무렵이다. 1948년 발생한 여수·순천 10·19사건 때 반란군이 마을로 숨어들었다. 이어 진압군이 들이닥쳤고, 마을은 쑥대밭이 됐다. 6·25전쟁 중엔 빨치산 토벌 작전이 전개돼 모든 주민이 마을을 떠나기도 했다.

“전쟁 땐 빨치산 토벌한다고 쫓겨나고, 국립공원 지정되니 보존한다고 나가라고 하고….”

공 씨가 계곡 건너 옛 화전 터를 바라보며 말했다. 1967년 지리산이 국내 첫 국립공원으로 지정됐지만 마을 주민들은 달갑지 않았다. 정부는 이주비용 40만 원을 주며 떠나라고 했다. 쌀 90kg 한 가마가 3500원 하던 시절이었으니 이 돈으로는 새로운 터전을 마련하기 쉽지 않았다. 하지만 정부가 개발을 금지하자 화전으로 밭을 일구고 벌목으로 생계를 이어가던 주민들은 먹고살 길이 막막해졌다. 주변 마을들이 그렇게 하나둘 사라졌다. 와운마을도 주민 절반이 떠났다. 그나마 먹고살 논밭이 있는 집만 고향을 지켰다.

“지금은 많이 좋아졌지만 그때는 아무것도 못 하게 했어요. 태풍으로 무너진 집을 고치는 것도 얼마나 깐깐하게 굴던지….”(공안수 씨)

국립공원 마을에 사는 건 지금도 제약이 많다. 와운마을에선 농작물 재배도 쉽지 않다. 야생동물이 농작물을 많이 해쳐도 국립공원 안에선 총기류를 사용할 수 없기 때문이다.
○ 보존과 개발, 갈림길에 선 국립공원 마을들
국립공원 마을마다 처한 상황은 다르다. 통상 대도시에서 멀수록 사람의 발길이 뜸해지고 관심에서도 멀어진다.

전남 신안군 영산도는 흑산도 옆 다도해해상국립공원의 작은 섬이다. 여기서 태어난 최성광 씨(56)는 타지로 나갔다가 외환위기 때 고향으로 돌아왔다. 당시 주민 수는 170명이었는데 지금은 20가구, 약 30명 남았다. 워낙 고령자가 많아 한 해 서너 가구씩 줄어들 때도 있다.

섬은 보존과 개발의 갈림길에 서 있다. 현재 하루 입도객을 55명으로 제한했다. 주민 수가 55명일 때 정한 기준이다. 관광객이 너무 많이 찾아와 섬이 훼손되는 걸 피하려고 주민들이 합의했다. 자동차도 다니지 않는다. 이런 원칙을 고수하자니 마을이 사라질 위기다. 최 씨는 “언젠간 섬이 무인도가 되는 건 아닌가 늘 걱정”이라며 “놀러 온 젊은 사람들이 살고 싶다고 하면 빈집을 소개해 준다”고 말했다.

서울에 살던 조무량 씨(37)는 4년 전 전남 화순군 도원마을 주민이 됐다. 15년 전 이 마을로 귀촌한 아버지를 보고 국립공원 마을의 매력에 푹 빠졌다. 도원마을은 무등산국립공원 안의 작은 마을이다. 무등산 정상과 가장 가까운 마을이기도 하다. 실거주 가구는 16가구지만 주민등록 기준으론 26가구가 살거나 왕래한다.

조 씨는 이곳에 작은 테마파크를 만드는 게 목표다. 소풍도 즐기고 현장 체험학습도 가능한 휴양 시설을 만들 계획이다. 대도시인 광주와 가까워 배후 수요가 충분하다는 게 조 씨 판단이다.

국립공원 안에도 주민이 사는 마을과 그 주변 지역인 ‘마을지구’에선 음식점이나 숙박시설 등의 운영이 가능하다. 반면 핵심 보존 지역인 ‘보존지구’나 그 외 ‘환경지구’에선 이런 개발이 불가능하다. 조 씨는 “국립공원 마을은 주민들이 워낙 고령이다 보니 개발하고 싶지만 몰라서 못하는 경우가 많다”며 “조금만 다른 시각으로 보면 생태 보존과 마을 발전을 함께 이룰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 거주인원 유지할 인센티브 목소리도

2019년 국립공원관리공단이 국립공원 거주민 738명을 대상으로 진행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주민들은 가장 원하는 지원 형태로 ‘기초 생활기반 확충’(22.4%)을 꼽았다. ‘환경 및 경관 개선’이 19.8%, ‘소득증대 사업’이 18.6%로 뒤를 이었다. 생활의 불편이 줄어들고 생계가 보장된다면 마을을 떠날 이유가 없다는 의미다.

전문가들은 국립공원 마을 소멸을 막기 위해 더 적극적인 노력을 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국립공원 마을 146곳 중 17곳은 이미 살고 있는 주민이 없다. 마을 만들기 컨설팅 기업인 에코메아리 박헌춘 대표는 “사람이 안 사는 국립공원은 의미가 없다”고 강조했다. 산불예방 등 국립공원을 가장 잘 지킬 수 있는 사람이 바로 거주민들이기 때문이다.

외국에서는 국립공원 최소 거주인원을 유지하기 위해 각종 인센티브를 준다. 영국은 거주민들의 환경관리 수준에 따라 보조금을 지급하는 환경관리제(ES)를 운영한다. 기본적인 관리를 하는 경우엔 ha당 연간 우리 돈으로 약 4만 원을 준다. 목초지와 염습지 보존 등 관리 수준이 높은 경우엔 별도 계약에 따라 보조금을 지급한다. 한국은 아직 이런 보조금 지급을 하지 않고 있다.

고령자가 많은 거주민의 특성을 고려한 소득 보전 지원책도 필요하다. 심규원 국립공원관리공단 정책연구부장은 “개발이 제한된 국립공원 내 토지나 주택은 인근 지역보다 가치가 낮게 책정돼 주택연금이나 농지연금을 받을 때 수령액이 적다”며 “사유재산의 감정평가액을 인근 지역과 유사한 수준으로 조정해 주민들의 노후 안정을 도와야 한다”고 말했다.

자일 매달려 숨겨진 쓰레기 찾고… 중국인들에 문화유산 설명하고


국립공원을 지키는 사람들
북한산 안전봉사단 만든 박창용씨, 매주 암벽 타며 낙석 위험 점검
‘경주 환경해설사’ 대만 출신 왕계씨… 탐방객들에게 동식물 생태 소개


지난달 북한산 산악안전봉사단 회원들이 북한산 족두리봉과 비봉, 향로봉 일대를 오르며 불법 산행 계도와 환경 정비 활동을 하고 있다.북한산 산악안전봉사단 제공
지난달 북한산 산악안전봉사단 회원들이 북한산 족두리봉과 비봉, 향로봉 일대를 오르며 불법 산행 계도와 환경 정비 활동을 하고 있다.북한산 산악안전봉사단 제공
전국 각지의 국립공원에는 ‘지킴이’들이 있다. 국립공원에 사는 사람들은 아니지만 그만큼 자주 찾아와 국립공원을 아끼고 가꾼다. 이들의 노력 덕에 시민들이 편하게 국립공원을 찾을 수 있다.

박창용 씨(63)는 40대부터 산에 올랐다. 서울 동대문시장에서 원단 판매로 연매출 80억 원을 올리던 그는 2000년대 초 가게가 부도를 맞고 인생의 첫 좌절을 겪었다. 그때 마음을 다잡도록 도와준 게 산이었다. 박 씨는 “암벽을 오르다 보면 모든 것을 잊고 내 앞의 바위에만 집중하게 된다. 그게 암벽 등반의 매력”이라고 했다. 어느덧 암벽 등반 횟수만 4000회에 이르는 20년 차 베테랑이 됐다.

최근 그가 ‘꽂힌’ 장소는 북한산국립공원이다. 연간 방문객이 656만 명(2020년 기준)에 이를 정도로 등산객이 워낙 많은 산이다 보니 사고도 잦다. 박 씨는 산에 갈 때마다 낙석을 치우고 훼손된 시설물을 관리하다 2020년 4월 북한산국립공원 산악안전봉사단을 만들었다.

봉사단 회원은 2년도 지나지 않아 80여 명으로 늘었다. 매주 토요일 20명 정도가 암벽을 타고 주위를 정리한다. 대부분 국립공원을 관리하는 직원들이 가기 어렵거나 낙석 사고 등이 잦은 지역을 점검한다. 이들의 가방 속엔 등산 장비뿐 아니라 쓰레기 등을 수거하는 마대 자루가 들어 있다. 박 씨는 “산에 음식물이 버려져 있거나 바위를 뚫어 등반 도구를 꽂은 걸 볼 때 가장 안타깝다”고 말했다.

대만 출신의 왕계 씨(58·여)는 2012년부터 11년째 경북 경주국립공원에서 자연환경해설사로 일하고 있다. 자연환경해설사는 국립공원에 서식하는 동식물을 탐방객에게 소개하는 사람이다. 왕 씨는 주로 중화권 관광객이 경주국립공원을 찾아오면 안내하지만 한국 학생들을 대상으로 환경교육도 한다. 국립공원 내 생태 변화를 꾸준히 관찰하는 것도 왕 씨의 일이다.

왕 씨는 1992년 남편의 고향인 경주에 터를 잡고 중국어 강사로 활동하다 한국을 더 잘 알고 싶어 자연환경해설사가 되기로 했다. 전국에서 다문화가정을 대상으로 3명을 뽑았는데, 유일하게 중국어권 대표로 뽑혔다.

경주는 국내 22개 국립공원 중 유일한 사적형 국립공원이다. 자연뿐 아니라 역사 유물의 보존 가치가 높아 지정된 곳이다. 왕 씨는 “17년 전 귀화해 한국인이 됐지만 동식물 학명이나 역사 용어가 아직도 어려워 항상 공부한다”며 “탐방객들이 한국의 자연과 문화유산에 감탄하고, 해설에 만족하는 모습을 볼 때 보람을 느낀다”고 말했다.


남원=박성민 기자 mi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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