혈액 한 방울로 치매 조기예측 기술 개발해 치매 유병률 낮춘다

  • 동아일보
  • 입력 2022년 1월 10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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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해를 여는 사람들’ 〈5〉
조선대 광주치매코호트연구단…2013년 국책연구사업단으로 설립
검진 통해 고위험군 1500명 선별…조기예측 뇌영상분석시스템 개발
치매 고위험군 코호트 추적 관리, 글로벌신약 등 다양한 치료법 적용

치매 예측 및 예방 기술을 개발하는 이건호 조선대 광주치매코호트연구단장(오른쪽에서 세 번째)과 연구원들이 6일 조선대 생명공학관에서 파이팅을 외치고 있다. 조선대 제공
치매 예측 및 예방 기술을 개발하는 이건호 조선대 광주치매코호트연구단장(오른쪽에서 세 번째)과 연구원들이 6일 조선대 생명공학관에서 파이팅을 외치고 있다. 조선대 제공
‘세상에서 가장 잔인한 이별’로 불리는 치매는 고령사회의 또 하나의 그늘이다. 다른 질병과 달리 24시간 밀착 간병해야 하기 때문에 치매환자 돌봄은 온 가족을 경제적, 육체적, 심리적으로 힘들게 한다. 가정마다 문제가 발생하고 다툼이 일어나기 일쑤다. ‘오랜 병에 효자 없다’는 속담이 틀린 게 아니다. 가족뿐 아니라 사회적으로 가장 큰 복지 부담이 되기도 한다. 세계 각국이 치매 예측 기술과 치료법 개발을 주요 국가 과제로 선정하고 매진하고 있는 것도 이 때문이다.

● 국내 치매 연구 선도

6일 오후 광주 동구 서석동 조선대 생명공학관 4층에 자리한 광주치매코호트연구단. 하얀 가운을 입은 연구원들이 바이오정제실에서 혈액 검체를 분리하는 작업에 열중했다. 조선대병원에서 채혈된 피험자의 혈액을 가져와 혈액세포와 혈장으로 분리 정제한 뒤 초저온 장치에 저장하는 손놀림이 무척 숙련돼 보였다.

조선대 광주치매코호트연구단을 이끌고 있는 이건호 단장(56·의생명과학과 교수)은 “바이오뱅크에는 현재 10만 개 이상의 혈액 샘플이 보관돼 있다”며 “확보된 검체 시료를 분석해 치매 유발 유전인자를 규명하고 새로운 바이오마커(생체지표)를 찾아 혈액 한 방울로 치매를 조기에 예측하는 기술을 개발하고 있다”고 소개했다.

국내 치매 유병률은 빠르게 늘고 있다. 중앙치매센터에 따르면 우리나라 평균 치매 유병률은 10.3%다. 2019년 65세 이상 노인인구 중 추정 치매 환자는 79만 명. 이 중 75%가량이 알츠하이머 치매를 앓고 있다. 치매환자는 2024년 100만 명, 2038년 200만 명을 넘어설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아직까지 치매 증상을 되돌릴 수 있는 치료 방법은 없다. 현재의 치료는 치매가 더 악화되지 않도록 증상을 관리하고 유지하는 것이 최선이다. 그래서 치매는 조기 진단이 중요하다.

광주치매코호트연구단은 과학기술정보통신부의 지원을 받아 치매 조기예측 기술을 개발하기 위해 2013년 설립된 국책연구사업단이다. 연구단은 그동안 괄목할 만한 연구 성과를 거뒀다. 지난 8년간 지역민 1만2000여 명을 대상으로 치매 무료검진을 실시해 1500명 이상의 치매 고위험군을 선별했다. 여기에 참여한 정상인 집단과 치매 고위험군을 대상으로 장기 추적검사를 통해 얻은 초정밀 자기공명영상(MRI) 뇌 사진을 활용해 한국인 남녀 표준 뇌지도를 작성했다. 이를 토대로 MRI를 분석해 치매를 조기에 예측할 수 있는 뇌영상분석 시스템인 ‘뉴로아이(NeuroAI)’를 개발했다. 이 연구는 과학기술총연합회의 2018년 과학계 10대 뉴스에 선정됐고, 최근 미국 식품의약국(FDA)의 의료기기 승인 절차를 밟고 있어 조만간 해외에 수출될 것으로 전망된다.

연구단은 2019년부터 미국 국립보건원(NIH)과 함께 한국인 치매 유발 유전체 분석사업을 벌이고 있다. 이 사업은 연구단에 등록된 치매환자 등 한국인 4000여 명의 유전체 정보를 해독해 치매 발병 원인을 밝히고 한국인을 비롯한 동아시아인 특이 치매 유발 유전인자를 발굴해 정확도 높은 치매 예측기술을 개발하는 것이다. NIH 산하 국립노화연구소는 2023년까지 140억 원을 지원한다. 미 연방정부가 한국과 바이오·의료 분야 연구에 직접 지원한 연구개발 사업으로는 최대 규모다.

이 단장은 “대규모 질병유전체 해독 사업은 대상자 확보에 시간이 많이 걸리고 비용도 많이 드는 사업이라 지원이 쉽지 않다”며 “미국 정부가 우리 연구단의 생체의료 빅데이터의 가치를 그만큼 높게 평가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 “치매예방관리법 제정돼야”


연구단은 지난해 10월 간단한 검사로 알츠하이머 치매를 90% 정확도로 조기 예측하는 기술도 개발했다. 기존에는 알츠하이머 치매의 정확한 진단을 위해 주요 원인 물질인 타우 단백질을 검사해야 했다. 이를 위해서는 환자의 고통을 수반하는 뇌척수액 검사나 값비싼 양전자단층촬영(PET) 검사를 해야 했다. 연구단은 미량의 침이나 혈액 분석만으로 치매 발병을 비교적 정확하게 예측할 수 있는 이 기술이 60세 이상 국민을 대상으로 한 건강검진에 널리 적용되면 알츠하이머 예방에 도움이 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연구단은 지금까지의 성과를 토대로 올해부터 세계 최대, 최장 치매 고위험군 코호트 추적 관리에 나선다. 60세 이상 광주시민 전체를 대상으로 치매 위험군을 조기에 파악해 추적 관리하면서 치매 예측기술의 유효성을 확인하는 프로젝트다. 초기 알츠하이머병 환자에게 일어나는 변화를 관찰하고 지금까지 개발된 글로벌 신약 등 다양한 치매 예방 치료법을 적용하면서 치매 예방 치료의 타당성 검증과 함께 신의료기술을 개발하는 것이 목표다.

치매 고위험군 추적 관리 및 생체의료 데이터베이스(DB)를 구축하기 위해 다음 달 광주테크노파크 내에 ‘아시안치매연구재단’을 개원할 예정이다.

다음 달 18일부터 3일간 제주에서 분당서울대병원과 공동으로 ‘제5회 알츠하이머병신경과학포럼’을 개최한다. 이번 대회에는 대학병원의 치매 임상전문가, 뇌과학자, 바이오·의료 데이터분석 전문가 등 200여 명이 모여 생체의료 빅데이터를 활용한 치매극복 AI기술 등 다양한 연구 성과를 공유한다.

이 단장은 치매환자의 관리 중심에서 조기 예측 및 예방 중심으로 정책 기조가 바뀌어야 한다고 제언했다. 현행 치매국가책임제는 지역 보건소 시스템을 통해 치매환자를 발굴하고 치매환자 돌봄 및 요양 비용의 90%를 국가가 부담하는 노인복지 정책이다. 하지만 늘어나는 치매환자를 감당하기에는 한계가 있다는 것이 이 단장의 생각이다.

한 해 국가 차원의 치매 관리 비용이 20조 원에 이르는 만큼 치매 유병률을 낮추기 위해서는 치매를 조기에 예측, 진단할 수 있는 범용적 기술을 적용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는 것이다. 이 단장은 “치매 국가예측·예방관리 체계를 법적으로 제도화하고 치매 발병 예측 정확도와 유효성이 검증된 진단 검사를 60세 이상 국민건강검진에 적용해 치매를 억제하는 한편으로 글로벌 치매의료기술을 선도하는 기회로 삼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정승호 기자 shjung@donga.com
#조선대 광주치매코호트연구단#혈액 한 방울#치매 조기예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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