中서 개봉한 韓영화, 관객 적어도 상영… 현지 “한한령 해제 기대”

  • 동아일보
  • 입력 2021년 12월 30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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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벌 현장을 가다]

4일 중국 베이징의 한 영화관에서 한국 영화 ‘오! 문희’ 홍보 행사가 열렸다. 보통 개봉 전에 열리지만 이 영화가 1일 중국의 심의를 통과한 지 이틀 만인 3일 개봉되는 바람에 ‘개봉 후 홍보’가 이뤄졌다. 약 6년 만에 중국에서 개봉된 이 영화로 인해 한한령 해제에 대한 기대감이 높아지고 있다. 주중 한국문화원 제공
4일 중국 베이징의 한 영화관에서 한국 영화 ‘오! 문희’ 홍보 행사가 열렸다. 보통 개봉 전에 열리지만 이 영화가 1일 중국의 심의를 통과한 지 이틀 만인 3일 개봉되는 바람에 ‘개봉 후 홍보’가 이뤄졌다. 약 6년 만에 중국에서 개봉된 이 영화로 인해 한한령 해제에 대한 기대감이 높아지고 있다. 주중 한국문화원 제공
김기용 베이징 특파원
김기용 베이징 특파원
《19일 중국 베이징의 한국인 밀집 거주 지역인 왕징(望京)의 영화관을 찾았다. 2015년 9월 전지현, 하정우, 이정재 등이 주연한 ‘암살’ 이후 약 6년 만에 중국에서 개봉하는 한국 영화 ‘오! 문희’를 보기 위해서였다.》

일요일이었지만 상영관 내부는 한산했다. 90석 정도의 객석에 불과 대여섯 명만 있었다. 관객 위(于)모 씨는 “‘오징어게임’ 등 최근 유행하는 한국 드라마를 보면서 한국 영화에도 자연스레 관심을 갖게 됐다”면서 “다양하고 재미있는 한국 영화들이 중국에 더 많이 소개됐으면 좋겠다”고 했다.

중국은 한국의 사드(THAAD·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배치에 반발해 2016년부터 한국 연예인이 출연한 드라마, 영화, 광고, 게임 등의 수입을 금하고 중국인 관광객의 한국행을 막는 이른바 ‘한한령(限韓令·한류 금지령)’을 실시하고 있다. 다만 중국은 한한령의 존재를 인정하지 않고 있다. 한국 문화 콘텐츠를 수입하지 말라거나 한국 여행을 금지한다는 공식 지침이 발표된 것은 아니어서 누가 이를 금지했는지, 언제쯤 해제될지, 해제 조건이 있는지 등이 알려진 바 없다. 중국의 처분만 하염없이 기다리는 상황에서 6년 만에 개봉된 한국 영화가 한한령 해제의 신호탄이 될지 관심이 쏠린다.

흥행 저조에도 中 매체 관심 커

배우 나문희(80)가 주연한 코믹 수사물 ‘오! 문희’는 27일까지 8만5000여 명의 관객을 모았다. 같은 기간 중국 전역에서 약 4만4725회 상영된 점을 감안하면 회당 2명 정도가 본 셈이다. 이런 흥행 저조의 이유로 1일 당국 심의를 통과한 지 불과 이틀 만에 개봉하는 바람에 홍보 시간이 절대적으로 부족했다는 점이 꼽힌다. 또 한국에서는 이 영화가 지난해 9월 개봉한 터라 적지 않은 중국인이 각종 불법 경로를 통해 이미 봤다는 분석이 나온다.

흥행 저조에도 중국 매체의 관심은 상당히 높다. 텅쉰왕, 관차저왕, 펑황왕, 신징보 등은 일제히 이 영화의 개봉 소식을 비중 있게 다뤘다. 특히 나문희가 중국 베이징에서 태어났다는 점에 많은 관심을 보였다. 신징보는 10일 ‘한국 국민엄마 나문희’란 제목의 기사에서 그의 경력과 과거 출연작도 상세하게 소개했다.

중국 매체는 관영이 아니라 해도 모두 당국의 직접적인 통제와 관리를 받는다. 흥행에 실패한 한국 영화에 대한 기사가 난다는 것은 중국 정부가 그만큼 한국 영화 개봉과 그 효과에 관심을 가지고 있다는 뜻으로도 해석할 수 있다.

특히 흥행 부진을 이유로 주요 영화관이 조기 상영 중단을 택할 수도 있음에도 31일까지 계속 상영하기로 한 것에도 눈길이 간다. 역시 당국이 개입했다는 추측이 가능한 대목이다.

“규제 해제 기대”vs “아직 일러”


이번 개봉이 한한령 해제로 이어질지에 관해서는 의견이 엇갈린다. 지난해 12월 중국이 약 4년 만에 처음으로 한국 게임사 컴투스의 ‘서머너즈 워’에 대해 ‘판호(版號·중국 내 게임 서비스 허가)’를 내줬을 때도 해제 기대감이 상당히 높았지만 실제 해제로는 이어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일각에서는 한국 남성 아이돌 그룹 ‘엑소(EXO)’가 11일 중국의 주요 연말 음악축제로 꼽히는 텐센트뮤직어워드(TMEA)에 출연할 것이란 전망을 내놨지만 이 역시 무산됐다. 당초 주최 측은 행사 포스터를 통해 엑소 일부 멤버가 무대에 오를 것이라고 밝혔지만 실제 행사에는 나타나지 않았다.

중국이 이른바 ‘연예계 정풍운동’을 통해 유명 연예인과 인플루언서의 각종 활동을 강하게 단속하고 있는 점도 한한령이 빠른 시일 내에 해제되기 어려울 것이란 추측에 힘을 싣는다.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이 8월 ‘공동부유(共同富裕·다 같이 잘살자)’를 주창한 후 당국은 불평등을 조장한다는 이유로 연예인들의 많은 수입, 호화로운 생활 행태, 연예인 팬덤의 스타 추종 등을 좌시하지 않고 있다. 내년 하반기 제20차 공산당 대회에서 3연임을 확정지으려는 시 주석 입장에서는 국민의 상대적 박탈감을 불러일으킬 수 있는 요인을 철저히 차단해야 하는 상황이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로 양극화가 심화하고 취약계층에 피해가 집중되면서 당국은 이로 인한 불만이 장기집권에 걸림돌이 되지 않을까 노심초사하고 있다.

하지만 최근 주중 한국문화원 관계자들은 “이번에는 과거와 분위기가 사뭇 다르다”며 “진짜 한한령 해제로 이어질 수 있을 것 같다”는 기대감을 조심스레 내비치고 있다.

한국과 중국은 내년 수교 30주년을 맞는다. 이에 두 나라는 2021년과 2022년을 모두 ‘한중 문화 교류의 해’로 선포했다. 예기치 못한 코로나19 사태 등으로 구체적인 성과를 도출하진 못했지만 중국 역시 내년 2월 베이징 겨울올림픽을 앞둔 만큼 문화 교류에 박차를 가할 필요성을 느낄 것이란 의미다. 공산당 기관지 런민일보 또한 29일 올해 중국 외교를 결산하면서 한국에 대해 “내년은 한중 수교 30주년으로 시 주석이 문재인 대통령과 한중 문화 교류의 해를 선언했다”고 언급했다.

영화 개봉 시점이 서훈 청와대 국가안보실장의 방중과 일치한다는 점도 주목할 만하다. 서 실장은 2일 톈진에서 중국 외교 수장인 양제츠(楊潔지) 외교담당 정치국원과 만났다. 이 자리에서 한한령 해제에 관한 구체적인 논의가 오갔을 가능성이 제기된다. 서 실장 또한 3일 “양국 문화 콘텐츠 분야의 협력이 활성화될 수 있도록 노력하자는 말을 나눴다”며 ‘오! 문희’ 개봉을 언급했다. 장하성 주중 한국대사 역시 27일 “영화나 드라마 등에서 문화 교류 성과를 내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이번에는 뭔가 다른 분위기가 감지된다”며 해제 기대감을 내비쳤다.

한국 문화 왜곡부터 해결해야

당국 차원의 한한령 해제 못지않게 중국 사회 전반에서 나타나고 있는 문화 왜곡 또한 해결해야 할 과제라는 지적이 나온다.

최근 유명 배우 우시쩌(吳希澤·25)는 한국의 전통 복식 ‘갓’의 원조가 중국이라는 주장을 폈다. 그는 8일 웨이보에 “갓은 중국이 기원이고 다른 나라로 전파된 것”이라고 주장해 한국 누리꾼의 공분을 샀다. 중국에서는 한복, 김치, 삼계탕, 아리랑까지도 중국이 기원이라는 말도 안 되는 주장이 심심찮게 등장하고 있다. 베이징 겨울올림픽 홍보 영상에서도 한복, 상모돌리기, 장구 등이 중국 전통 문화인 것처럼 등장했다. 이런 일들이 반복적으로 일어나면 설사 한한령이 해제돼도 한국과 중국 사이에 일종의 ‘문화 전쟁’이 발발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오징어게임’을 비롯한 수많은 한국 드라마와 영화들이 중국에서 불법으로 유통되고 있다는 점도 한한령 해제에 악영향을 미치고 있다. 주중 한국대사관 측은 현재 중국 내 60여 개 사이트에서 한국 문화 콘텐츠가 불법적으로 유통되는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 이런 어둠의 통로가 없어져야 한국 문화 콘텐츠를 수입해 달라는 중국인의 요구가 커질 것이란 의미다.



김기용 베이징 특파원 kky@donga.com


#중국#오문희#한국 영화#한한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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