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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일보|오피니언

[사설]준비 안 된 중대재해법, 억울하게 감옥 갈 CEO 쏟아낼 것

입력 2021-12-28 00:00업데이트 2021-12-28 08: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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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일 서울 영등포구 중소기업중앙회에서 열린 중대재해기업처벌법 제정에 대한 경제계 입장발표 기자회견에서 김기문 중기중앙회장(오른쪽에서 두 번째)이 발언하고 있다. 김동주 기자 zoo@donga.com
중대재해처벌법 시행을 한 달 앞두고 기업들이 공포감을 호소하고 있다. 중소기업 절반 이상은 법을 지키는 게 불가능하다며 자포자기 상태이고, 대기업도 뚜렷한 대비책이 없어 전전긍긍이다. 그런데도 정부는 ‘해보고 문제 있으면 고치면 된다’는 식으로 밀어붙이고 있다.

올해 1월 국회를 통과한 이 법은 내년 1월 27일 50인 이상 사업장에서 시행된다. 사망 1명 이상, 6개월 이상 치료가 필요한 부상자 2명 이상 등 중대재해가 발생하면 안전조치 의무를 위반한 해당 사업장의 경영 책임자는 1년 이상 징역 또는 10억 원 이하 벌금에 처해진다. 형사처벌 하한선을 정해 기업인을 처벌하는 법으로, 세계에서 유례가 드물다.

경영자가 어떤 의무를 다해야 벌을 면할 수 있을지 분명치 않은 이 법은 제정 때부터 ‘죄형 법정주의’ 원칙에 어긋난다는 비판을 받았다. 정부는 “시행령을 통해 명확히 할 것”이라고 했지만 오히려 시행령이 나온 뒤 혼란이 더 커졌다. 처벌 대상이 기업 오너인지, 계열사 대표인지, 안전보건 책임자인지 여전히 불확실할 뿐 아니라 경영자가 지킬 의무를 “안전보건 인력이 충실히 업무를 수행할 수 있도록 하라”고 규정하는 등 시행령도 모호하긴 마찬가지다.

그러다 보니 대기업들은 일단 실제 방패막이가 될 수 있을지 분명치도 않은 최고안전책임자 등 임원 자리를 만들고, 중견·중소기업들은 바지사장을 세우고 있다. 외국 기업의 한국 지사장 자리는 사고가 발생하면 귀국도 못 하고 한국 감옥에 갇힐 수 있다는 이유로 기피 보직이 됐다고 한다. 공공부문에서도 안전책임자인 정부 부처 장관과 청장, 지방자치단체장, 공기업 사장들이 만약에 대비해 대응조직을 만들고 있다. 건설업체들은 근로자 과실로 발생한 사고 책임까지 경영자가 떠안게 될까 봐 현장에 폐쇄회로(CC)TV를 설치하고 있다. 중소기업중앙회에 따르면 중소 제조업체의 53.7%는 “의무사항 준수는 불가능하다”고 답했다.

근로자의 생명과 안전을 지키자는 법의 취지에 반대할 기업은 없다. 하지만 벌을 피할 방법조차 알 수 없는 법은 ‘운이 나빠’ 감옥에 갈 기업인을 양산할 뿐 산업현장 안전수준을 실질적으로 개선하기 어렵다. 정부와 정치권은 더 늦기 전에 기업들의 호소에 귀 기울여야 한다. 필요하면 시행을 몇 년 늦춰서라도 과도한 형사처벌을 과징금 등 행정제재로 바꾸고, 추상적 법령 내용을 명확히 보완해 억울하게 처벌받는 기업인이 나오지 않도록 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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