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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일보|사회

“자살 위험신호 전달해 아버지 생명 구한 장병 못잊어”[박성민의 더블케어]

입력 2021-12-04 03:00업데이트 2021-12-06 14: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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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순정 공군 자살예방교관
정신건강 기여 ‘임세원상’ 첫 수상
자살 고민할때 위로받고 힘 생겨… 경험 밑천 삼아 자살예방교육 나서
70만여 명에 생명의 소중함 전파… 자살자 90% 이상이 위험신호 보내
2일 서올 종로구 동아일보 사옥에서 만난 권순정 공군본부 자살예방교관은 “장병들이 건강하게 가족에게 돌아가는 게 가장 큰 바람”이라고 말했다. 1년 중 약 200일을 전국을 돌며 자살예방 교육을 하는 권 교관은 “이들이 보내는 ‘덕분에 저는 이렇게 살아있습니다’라는 메시지를 보며 힘든 것도 잊는다”고 말했다. 안철민 기자 acm08@donga.com
‘부모의 죽음을 막지 못했다는 자책에 시달리던 자살 유족, 남편의 사업 실패와 교통사고로 빚더미에 올라 극단적 선택을 생각하던 자살 고위험군, 12년 동안 70만 명에게 생명의 소중함을 전파한 군 최초 자살예방교관.’

한 사람이 걸어온 길이라곤 믿기 어렵지만 권순정 공군본부 자살예방교관(48)의 삶을 요약하면 이렇다. 미끄러지면 다시 오르고 무너질 뻔한 순간마다 악착같이 버텼다. 어느 날 걸려온 전화 속 “괜찮냐”는 한마디에서 희망이 싹텄다. 살아갈 힘이 생겼고, 그 힘을 같은 위기를 겪는 장병들과 나누기로 했다.

권 교관은 1년 중 약 180일을 전국을 순회한다. 지난해 교육 횟수가 4000회가 넘어가자 세는 것도 포기했다. 하루 3차례 교육도 마다하지 않는다. 군뿐만 아니라 경찰, 공공기관, 기업에서도 교육 요청이 들어온다. 왜 그렇게 무리하느냐고 묻자 “장병들의 자살 위험 신호를 놓칠까 봐 거절을 못 한다”고 했다. 회의 차 잠시 서울에 온 권 교관을 2일 종로구 동아일보에서 만났다.

○자살 우려자에게서 쏟아진 구조 요청

2009년 권 교관은 매일 생의 마지막을 떠올렸다. 3년 전 부도를 맞은 남편이 같은 해 교통사고까지 당하면서 더 이상 버틸 힘이 없었다. 가해자가 보험에 들지 않은 탓에 자비로 3년 동안 병원비를 냈다. 월세방에는 압류 딱지가 붙었고 부대까지 빚쟁이들이 찾아왔다. 딸이 들을까 봐 방 안에서 숨죽여 눈물을 훔치던 어느 날 전화벨이 울렸다.

“단장입니다.”

당시 공군 제20전투비행단장이던 정재부 예비역 공군 준장이었다.

“요즘 힘들어 보여 걱정이 돼 전화했습니다. 출근하면 차라도 한 잔 해요.”

전화를 끊고 펑펑 울었다. 권 교관은 1999년 항공 장비를 고치는 군무원으로 군에 들어왔다. 장교도, 병사도 아닌 그는 최고 상관인 단장과 말 한마디 나눈 적 없었다. 권 교관은 “내가 죽지 않기를 바라는 사람이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큰 힘이 됐다”고 그날을 회상했다.

그 무렵 권 교관은 매일 글을 쓰며 하루하루를 버티고 있었다. 공군 소모임 게시판과 자살예방 홈페이지에 신문에서 찾은 좋은 글을 올리고, 본인 얘기도 썼다. 권 교관은 “살아 있다는 신호”라고 했다. 글을 본 이들의 구조 요청도 쏟아졌다. 한 장교는 모르는 번호로 전화를 걸어와 자살을 고민 중이라 털어놓기도 했고, “죽고 싶다”는 장병들의 상담 메일도 쌓여갔다.

어떻게 응대해야 하나 고민하던 찰나 부대의 권유로 국방부의 자살예방교육을 받았다. 자살을 생각하는 사람의 90% 이상은 위험 신호를 보낸다는 강사의 말이 권 교관의 마음을 움직였다.

“그 순간 간절하게 하고 싶은 일, 꼭 해야 하는 일이 생겼어요. 무엇보다도 살고 싶어졌어요.”

○장병들이 건넨 쪽지 “살려 주세요”

자살예방교관이 된 권 교관은 2011년 공군부대로 소속을 옮겼다. 교육 대상이 넓어지면서 일과와 휴식의 구분도 없어졌다. 주말이나 새벽에도 장병들의 상담 전화와 문자가 끊이지 않았다. 그는 교육 때마다 연락처를 알려준다. 밤늦게 휴대전화를 들여다보고 있는 권 교관을 보며 남편은 “맨날 24시간 당직이냐”며 웃곤 한다.

권 교관이 짧은 문자 하나라도 그냥 지나치지 못하는 데는 그럴 만한 사연이 있다. 자살예방교육을 막 시작한 무렵 한 장병에게서 메시지를 받았다. “매일 아침 글 잘 읽고 있어요. 우리 부대에도 한 번 와 주세요”라는 내용이었다. 권 교관은 지금도 그때 ‘너 지금 자살 생각하니’라고 묻지 않은 걸 후회한다. 그 장병은 한 달쯤 지나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권 교관은 “누군가 부를 때 바로 달려갈 수 있어야 하고, 그러려면 내가 더 공부하고 준비돼 있어야 한다고 결심했다”고 말했다.

두 시간 남짓한 교육이 누군가의 인생을 바꾸기도 한다. 교육 중 동료의 손을 꼭 잡는 장병도 있다. 지금처럼 군에서 외부 통화가 자유롭지 못하던 시절 교육이 끝나면 몇몇 장병들은 초조한 얼굴로 권 교관에게 와 쪽지를 건네곤 했다. 부모님에게서 ‘자살 위험 신호’를 봤다며 권 교관에게 대신 연락을 부탁하는 내용이다.

몇 년 전 한 신병이 건넨 쪽지를 권 교관은 잊지 못한다.

“아빠 많이 힘드시죠? 이젠 제가 지켜드릴게요. 수료식까지 꼭 기다려 주세요.”

권 교관은 돌아오는 길에 신병이 남긴 번호로 전화를 걸었다. 아들이 많이 걱정하고 있다는 권 교관의 말에 아버지는 한동안 울음을 멈추지 못했다. 권 교관은 “아버지가 실제로 자살 생각을 하고 있었는데, 아들 덕분에 생명을 지킬 수 있었다”고 했다.

○“군에선 자살 피폭 범위가 더 넓다”

올 4월 공군참모총장과 장성 등을 대상으로 진행한 자살예방교육. 공군본부 제공
자살예방만큼 중요한 게 남은 이들의 마음을 돌보는 일이다. 권 교관은 누구보다도 그 아픔을 잘 안다. 부모님은 권 교관이 10대일 때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가정사로 힘들었던 2008년에는 동료를 자살로 떠나보내기도 했다. 운동을 좋아하고 늘 밝았던 동료였다. “그동안 고마웠습니다”라며 평소와 다른 인사를 남긴 다음 날, 그의 사망 소식을 들었다. 위험 신호를 알아차리지 못했다는 자책감은 아직도 권 교관의 마음 한구석에 짙게 남아 있다.

많은 자살 유족들도 이 때문에 힘들어한다. 중앙심리부검센터가 2015∼2019년 자살사망자 566명과 유족 683명을 조사한 결과 사망자의 93.5%가 위험 신호를 보냈다. 하지만 이를 알아챈 경우는 22.5%에 그쳤다.

집단생활을 하는 군에서는 후유증이 더 크다. 권 교관은 “군 밖에서 자살 유족의 범위가 가족 4명, 지인 2명 정도라면, 군에서는 부대 전체가 자살 유족, 자살 생존자가 될 수 있다”고 말했다.

자살 유족에게는 ‘네 잘못이 아니다’라고 말해주는 것이 중요하다. 30여 년 전 권 교관이 가장 듣고 싶었던 말이기도 하다.

권 교관은 “자살 유족의 60∼70%는 외부에 가족의 사망 원인을 말하지 못한다고 한다. 이들도 제대로 위로를 받아야 또 다른 죽음을 막을 수 있다”고 강조했다.

○ 권순정을 만든 ‘임세원’

권 교관은 지난달 대한신경정신의학회와 대한신경정신재단이 수여하는 제1회 임세원상을 수상했다. 2018년 12월 환자가 휘두른 흉기에 찔려 숨진 임세원 강북삼성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를 기리기 위해 만든 상이다. 임 교수는 한국형 표준 자살예방교육 프로그램인 ‘보고 듣고 말하기’를 개발한 주역이다.

이 프로그램을 국내에서 가장 많이 교육했고, 개정 과정에도 참여한 권 교관에게 수상의 의미는 남다르다. 일반인 대상 프로그램을 군에 적용시키는 데 임 교수와 동료들은 아무 대가도 없이 참여했다. 군에서 발생한 사고 사례를 분석하고, 육해공군 등 각 군 특성에 맞는 교육 과정을 만드는 데 큰 힘이 됐다. 권 교관은 “교수님들 자녀도 군에 와서 모두 이 교육을 받고 사회로 나갈 테고, 그러면 60만 명의 생명 지킴이를 양성하는 효과가 있다고 하니 모든 교수님들이 적극 도와주셨다”고 했다.

20여 년 전 비행복과 낙하산을 고치던 공군 군무원은 이제 군 최고의 ‘마음 수선공’이 됐다. 처음 이 일을 시작할 때보다 자살률(인구 10만 명당 자살자)은 낮아졌지만 마음 건강 적신호는 더 짙어졌다는 게 권 교관의 생각이다.

“사람들은 힘들어서 죽는 게 아니라 힘들 때 위로받지 못해서, 세상에 내 편 하나 없다는 생각에 죽는 것 같아요. 답은 교육에 있어요. 학교에서 성 인지 교육이 일반화된 것처럼 자살예방교육이 의무화된다면 더 많은 생명을 살릴 수 있지 않을까요.”

박성민 기자 mi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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