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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일보|문화

건반서 솟아오른 벽력… “판소리의 신묘함 피아노에 담았죠”

입력 2021-11-18 03:00업데이트 2021-11-18 0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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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작 ‘NOLDA’ 낸 피아니스트 정은혜씨
美유학 중 국악 심취… 판소리 공부
장르 넘는 ‘크리에이티브 뮤직’ 추구
15일 만난 피아니스트 정은혜 씨는 “한 번의 붓질로 본질에 접근해가는 한국 전통 산수화가 연주에 많은 영향을 줬다”고 말했다. 양회성 기자 yohan@donga.com
“콰과과광!”

15일 오후 서울 종로의 한 건물 4층에 천둥이 쳤다. 깜짝 놀라 반사적으로 반 발짝 뒷걸음질 쳤다. 하늘에서 내려오는 대신 눈앞의 그랜드피아노에서 솟아오른, 타건의 벽력. ‘천둥술사’는 피아니스트 정은혜 씨(35)였다.

“음색과 연주 태도는 판소리에서 배웠어요. 추사 김정희(1786∼1856)의 글씨와 그림에 드러난 기운생동도 제가 추구하는 바죠.”

2015년 데뷔해 재즈와 현대음악을 오가며 활동 중인 정 씨가 최근 신작 ‘NOLDA’를 내놨다. 53분여간의 자유즉흥 피아노 독주를 담았다. 말 그대로 제멋대로 한판 놀아버린 이 앨범의 제작사는 미국 뉴욕 실험음악 명가 ‘ESP-DISK’(1963년 설립). 오넷 콜먼, 선 라 등 전설적 음악가들의 터전이다.

2009년 입학한 미국 버클리음대에서 피아노와 영화음악을 공부하던 정 씨가 국악에 깊이 빠진 것은 2011년이다. 2015년부터 2019년까지는 매년 한국에 와 두 달씩 머물면서 배일동 명창을 사사하며 판소리를 공부했다.

“늘 ‘나는 누구인가’라는 화두에 사로잡혔는데 국악의 원형과 원리에 대한 설명을 듣고 완전히 매료됐거든요. 보스턴에 돌아가서는 피아노 병창도 실험했죠.”

그는 “하나의 음에서 배음(倍音)이 나오고 그 자체로 질감을 형성해가는 판소리의 신묘함을 피아노로 표현하려 한다”고 말했다. 그러려면 한 음, 한 음에 사활을 걸어야 한다고. 장르로 치면 정 씨의 프리 재즈 멘토인 와다다 리오 스미스(80·미국)가 주창하는 ‘크리에이티브 뮤직’이다. 클래식, 재즈, 팝 같은 장르의 경계는 무너지고 오직 창의성만이 붓을 쥔 순간에 현현하는 영원을 향한 음악.

“조용한 곳에서 초집중하면서 들어주셨으면 해요. 도시의 소음과 현란한 불빛이 어우러졌을 때는 절대 들리지 않는 음악이거든요.”

정 씨는 20일 오후 2시 서울 종로구 JCC 아트센터에서 피아니스트 김은영 씨와 연주회 ‘즉흥 솔로 피아노’를 연다. 어떤 곡을 연주할까.

“뚜껑 열어봐야 알죠. 정해진 건 없습니다.”

한판 또 놀겠다는 얘기다.

임희윤 기자 im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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