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러 기억’과 싸우는 파리 시민들… 유럽 전역엔 추가테러 공포

  • 동아일보
  • 입력 2021년 11월 4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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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벌 현장을 가다]

지난달 28일(현지 시간) 프랑스 파리 시테섬의 대법원 앞에 테러 방지 등을 위한 바리케이드가 설치돼 있다. 대법원은 9월부터 수니파 무장단체 이슬람국가(IS)가 2015년 11월 파리에서 저지른 연쇄 테러에 대한 재판을 하고 있다. 파리=김윤종 특파원 zozo@donga.com
지난달 28일(현지 시간) 프랑스 파리 시테섬의 대법원 앞에 테러 방지 등을 위한 바리케이드가 설치돼 있다. 대법원은 9월부터 수니파 무장단체 이슬람국가(IS)가 2015년 11월 파리에서 저지른 연쇄 테러에 대한 재판을 하고 있다. 파리=김윤종 특파원 zozo@donga.com
김윤종 파리 특파원
김윤종 파리 특파원
《지난달 15일 영국 집권 보수당의 데이비드 에이메스 하원의원(69)이 지역구인 런던 근교 에식스 카운티의 행사장에서 소말리아계 알리 하비 알리(25)의 흉기 테러로 숨졌다. 앞서 이틀 전 노르웨이 남부 콩스베르그에서도 이슬람교로 개종한 덴마크 국적의 백인 에스펜 안데르센 브로텐(37)이 화살과 칼 등으로 시민 5명을 죽이는 등 유럽에서 이슬람 극단주의 관련 테러가 끊이지 않고 있다.》

9월부터 프랑스에서는 약 130명의 희생자를 낸 2015년 11월 파리 연쇄 테러에 관한 재판이 열리고 있다. 당시 살라 압데슬람(32) 등 수니파 무장단체 이슬람국가(IS) 조직원들은 바타클랑 극장, 르카리용 카페 등 파리 곳곳에서 테러를 자행해 세계에 엄청난 충격을 안겼다.

지난해 10월 수업 중 이슬람 선지자 무함마드에 관한 조롱 만평을 보여줬다는 이유로 무슬림 극단주의자에게 참수당한 역사 교사 사뮈엘 파티 씨(당시 47세)의 사망 1주기를 맞아 그에 대한 추모 움직임 또한 이어지고 있다. 르피가로는 “사람들이 테러에 대한 기억과 여전히 싸우고 있다. 테러가 또 터질 수 있다는 불안도 커지고 있다”고 전했다.

6년이 흘러도 여전한 상처

지난달 28일(현지 시간) 파리 도심의 시테섬을 찾았다. 이곳의 대법원 앞 도로는 전면 통제된 상태였다. 여러 대의 경찰 차량이 도로 진입부를 막았고 중무장한 경찰들이 매서운 눈초리로 오가는 행인을 살폈다.

9월부터 대법원이 6년 전 테러에 관한 재판을 시작하자 검경 관계자, 변호사, 테러 생존자, 유가족 등 약 2000명이 매일 대법원을 오가고 있다. 이에 당국이 추가 테러 가능성을 우려해 일대를 전면 통제한 것이다. 바리케이드 밖에서 법원 쪽을 바라보던 시민 마테오 씨(45)는 “6년 전 테러를 생각하면 지금도 가슴이 아프다. 다시는 일어나선 안 되는 비극”이라고 했다.

이날 저녁 바타클랑 극장 앞으로 갔다. 공연을 보기 위해 약 100명이 줄을 길게 서 있었다. 6년 전 테러 당시 90명이나 희생된 곳으로 느껴지지 않았다. 공연을 보러 왔다는 대학생 조르주 씨에게 ‘이곳에 오는 것이 꺼림칙하지 않으냐’고 물었다. 그는 “남은 사람들이 자신의 삶을 잘 사는 것이 목숨을 잃은 이들에 대한 추모”라고 답했다.

약 1.4km 떨어진 르카리용 카페로 이동했다. 카페 밖 야외 테라스에는 맥주와 와인을 마시는 시민들이 많았다. 이곳에서는 테러 당시 10명이 사망했다. 회사원 루이즈 씨에게 같은 질문을 던졌다. 그는 “그럴수록 더욱 이곳에 와야 한다. 아무렇지 않게 여기는 것이 테러에 맞서는 일”이라고 강조했다.

모든 이가 상처를 극복한 것은 아니다. 최근 재판의 증인으로 나선 당시 테러 생존자 마야 씨는 르카리용 카페에서 약혼자를 잃었다. 그는 “미래의 남편과 결혼 이야기를 나누던 중 갑자기 화약 냄새가 퍼졌다. 그의 마지막을 봐야 했다”고 말했다. 그를 포함한 약 300명의 생존자는 내년 1월까지 당시 참혹했던 상황을 증언할 예정이다. 시민 마농 씨는 “언론에 연일 보도되는 생존자 증언을 보면 파리가 여전히 2015년 테러의 상흔을 지우지 못한 것 같다”고 했다.

지난달 29일 파리에서 북서쪽으로 30km 떨어진 콩플랑생토노린의 부아돈 중학교를 찾았다. 파티 씨가 근무하던 곳이다. 이곳에서 만난 주민 파트리크 씨 또한 “테러 위험이 다시 커진 것 같아 무섭다”고 했다.

소외된 이민 2, 3세대의 테러 늘어

지난달 28일(현지 시간) 프랑스 파리 ‘르카리용’ 카페의 야외 테라스에서 여유를 즐기고 있는 파리 시민들. 2015년 11월 테러 당시 이곳에서만 10명이 숨졌다. 파리=김윤종 특파원 zozo@donga.com
지난달 28일(현지 시간) 프랑스 파리 ‘르카리용’ 카페의 야외 테라스에서 여유를 즐기고 있는 파리 시민들. 2015년 11월 테러 당시 이곳에서만 10명이 숨졌다. 파리=김윤종 특파원 zozo@donga.com
유럽연합(EU) 경찰기구 ‘유로폴’에 따르면 EU 내 이슬람 극단주의자들의 테러 시도는 2017년(33건)을 기점으로 2018년 24건, 2019년 21건, 지난해 14건으로 감소했다. 하지만 테러 시도가 성공으로 이어지는 확률은 높아지고 있다. 2018년에는 24건 중 3분의 1에 못 미치는 7건, 지난해에는 14건 중 10건(71.4%)이 성공했다.

유럽 사회가 더 우려하는 것은 최근 테러를 저지른 자들이 대부분 유럽에서 나고 자랐다는 점이다. 압데슬람은 벨기에에서 태어난 프랑스 국적자이고, 알리는 영국 국적이다. 파티 씨를 참수한 후 경찰에 사살당한 체첸계 난민 압둘라흐 안조로프(당시 18세) 또한 프랑스에서 성장했다.

유로폴은 ‘2021 테러보고서’를 통해 “지난해 EU에서 시도된 이슬람 극단주의 테러 10건 중 4건이 EU 시민권자의 소행”이라며 “유럽 내 이민 2, 3세대 청년들에게 테러리즘이 빠르게 확산되고 있다”고 경고했다. 미국 워싱턴포스트(WP)는 “과거에는 외부인이 정치적 이유로 유럽에 테러를 했다면 이제는 유럽 국적의 자생적 테러리스트가 목적이 불분명한 테러를 자행한다”고 분석했다.

테러리스트들 중에는 경제사회적으로 열악한 이민자 가정에서 태어나 인종, 경제, 교육 차별에 대한 불만을 가진 자들이 있다. 독일 공영방송 도이체벨레 또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으로 인한 경기 침체와 일자리 감소로 이민가정 청년들이 극단주의로 눈을 돌리는 현상이 두드러졌다고 진단했다. 이들에게 극단주의 사상을 주입시켜 사회에 대한 분노를 테러로 표출하도록 하는 것이 IS를 포함한 많은 극단주의 테러단체의 전략이다.

무슬림과 극우의 갈등 격화 우려

무장세력 탈레반이 올해 8월 아프가니스탄 전역을 점령한 것 또한 이슬람 극단주의 테러단체가 활동하기 좋은 환경을 만들었다는 평가가 나온다. 유엔난민기구(UNHCR)에 따르면 올해 말까지 아프간에서는 최소 50만 명의 난민이 발생할 것으로 보인다. 이들 대부분은 유럽으로 건너올 가능성이 많은데 아무 연고가 없는 곳에서 힘들게 생활하다 보면 극단주의 세력의 포섭에 넘어갈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된다.

유럽의 무슬림 인구는 빠르게 증가하고 있다. 1950년 프랑스 국민의 0.55%에 불과했던 무슬림은 지난해 9%로 급증했다. 미국 여론조사회사 퓨리서치센터는 2050년 유럽 전체 인구의 14%가 이슬람교도일 것으로 예측했다. 독일(19.7%), 프랑스(18.0%), 영국(17.2%) 등 유럽 주요국에는 유럽 평균보다 무슬림 인구가 더 많을 것이라고도 내다봤다.

무슬림 인구가 급증하면서 기존 주류인 백인의 불만, 양측의 갈등 또한 불가피할 것으로 보인다. 이것이 이민자에 대한 차별을 더욱 키워 이민 2, 3세대가 자행하는 테러를 부추기는 악순환으로 이어질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내년 4월 대통령 선거를 앞둔 프랑스에서는 ‘이민자 전면 추방’을 외치는 극우 정치인 에리크 제무르 전 르피가로 논설위원이 에마뉘엘 마크롱 대통령과 지지율 1, 2위를 다투고 있다. 일간 르몽드는 “테러 공포가 극우 세력을 키우고, 극우 세력이 이민자의 불만을 증가시켜 다시 테러 위험이 증가하는 악순환이 생길 수 있다”고 경고했다.

김윤종 파리 특파원 zozo@donga.com


#테러#유럽#파리#추가테러 공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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