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장 장악한 플랫폼기업… 혁신 잊고 ‘수수료 영업’

  • 동아일보
  • 입력 2021년 9월 9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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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혁신과 독점 사이 플랫폼 기업의 길을 묻다]〈1〉커지는 수수료 갈등

부산에서 국수 가게를 운영하고 있는 이승훈 씨가 8일 배달 애플리케이션(앱)을 통해 들어온 주문 내용을 확인하고 있다. 부산=김도형 기자 dodo@donga.com
부산에서 국수 가게를 운영하고 있는 이승훈 씨가 8일 배달 애플리케이션(앱)을 통해 들어온 주문 내용을 확인하고 있다. 부산=김도형 기자 dodo@donga.com
5일 오후 6시 부산의 한 국수 가게. 가게 앞에는 네 팀이 줄을 서 있고, 가게 안에선 배달 애플리케이션(배달 플랫폼)을 통해 들어오는 주문 소리가 끊이지 않았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으로 힘든 상황에서도 이 정도면 장사가 잘되는 편이지만 주인 이승훈 씨(33)의 표정은 밝지만은 않았다. 그는 “배달 플랫폼으로 나가는 광고료, 수수료 등을 떼고 나면 정작 손에 쥐는 건 생각만큼 많지 않다”고 했다.

과거 이 씨는 한 배달 플랫폼 기업에서 가맹 식당을 관리하는 일을 했다. 그만큼 배달 플랫폼을 잘 안다고 자부했지만 직접 식당을 운영해 보니 생각과는 완전히 달랐다.

매장 음식과 배달 음식의 가격이 같고 매출도 각각 4000만 원씩으로 동일하다고 가정할 때 매장 판매에선 1900만 원의 수익이 발생하지만 배달로는 1300만 원밖에 남지 않는다고 이 씨는 분석했다. 배달 플랫폼에 내는 월 8만8000원의 광고료, 배달 대행사에 내는 건당 평균 3500원의 배달료, 망 이용 수수료, 포장용기 구매 비용 등이 빠지기 때문이다.

배달 플랫폼에서 일할 땐 업주들에게 ‘배달 음식 가격을 매장 가격보다 올리면 되지 않느냐’고 조언했었다. 하지만 직접 해보니 손님들로부터 외면받을까 봐 가격을 올리긴 어려웠다. 이 씨는 “수익성이 나빠지는 걸 막기 위해 플랫폼 한 곳에만 가입하는 정도가 유일한 해법이었다”고 했다.

혁신 기술을 앞세워 시장 점유율을 높인 플랫폼 기업들이 차별화된 서비스보다는 독점을 기반으로 한 수익 확보로 방향을 틀면서 갈등이 커지고 있다. 2011년 이후 등장한 배달 플랫폼은 집에서 손쉽게 배달시켜 먹을 수 있는 음식의 범위를 크게 넓혔다. 하지만 배달 플랫폼의 영향력이 갈수록 커지면서 자영업자들이 플랫폼에 종속되고, 갈수록 광고·수수료 부담도 커지면서 “음식은 우리가 하고 돈은 플랫폼이 번다”는 하소연이 나오고 있다.

배달은 물론이고 숙박, 모빌리티, 이커머스 등 플랫폼 기업의 영향력이 커진 영역마다 유사한 일이 벌어지고 있다. 카카오택시를 운영하는 카카오모빌리티는 지난달 스마트 호출 이용료를 갑자기 올렸다. 사실상 택시요금이 인상되는 효과가 나오면서 택시업계와 큰 갈등을 빚었다. 숙박업소들은 플랫폼 광고비와 수수료 부담이 늘어나는데 책정 기준을 알 길이 없다는 게 큰 불만이다. 플랫폼의 ‘연결비용(수수료)’이 커지면서 자영업자와 소비자의 부담이 늘고 물가 상승을 자극하는 일이 잇따르고 있는 것이다. ‘혁신은 사라지고 수수료 갈등만 남았다’는 목소리까지 나오는 배경이다.

“배달앱 수수료부담 점점 커져, 음식값 안올리면 수익내기 어려워”
음식배달 늘었지만 수수료는 더 늘어, 숙박 플랫폼에 불만 큰 숙박업소


서울 마포구에서 공유주방 형태의 배달 전문 매장을 운영하는 정모 씨(37)는 지난달 올린 매출 1450만 원 가운데 배달비와 배달 광고비만으로 250만 원 이상을 지출했다. 정 씨는 “매출을 늘리려면 배달 애플리케이션(앱)을 이용하지 않을 수 없는데 지불하는 비용이 크다보니 수익을 올리려면 다시 매출 규모를 키울 수밖에 없다”며 “그러다 보니 다시 광고료를 늘려야 해 왠지 덫에 빠진 기분”이라고 했다.

○ “서비스 혜택보다 수수료 부담 더 커져”

플랫폼 기업의 지배력이 커지면서 정 씨와 같은 자영업자들은 딜레마에 빠진 상태다. 처음에는 더 많은 영업 기회와 서비스를 기대하며 플랫폼에 올라탔다. 하지만 이젠 플랫폼에서 내리면 영업 자체가 불가능한 상황이 됐다.

서울 송파구에서 호프집을 운영하는 공신 씨(39)는 “배달 플랫폼들이 새로운 서비스를 내놓으면서 ‘혁신’이라고 하지만 결국엔 더 많은 수익을 거둬가는 시스템일 뿐”이라고 지적했다. 공 씨는 배달 주문 건당 16.5%를 떼 가는 ‘배민라이더스’ 서비스 등을 이용하고 있었는데 최근 배달의민족 측이 단건 배달 서비스(배민원)를 도입하면서 고민이 커졌다. 현재는 이벤트 기간이라 할인된 배달료를 받지만 어느 순간 건당 6000원의 정액 수수료를 그대로 뗄 것이라는 게 공 씨와 주변 상인들의 생각이다. 공 씨는 “처음엔 배달이라는 영역을 새로 이용하는 장점이 분명히 있었는데 시간이 지나니 새로운 서비스 때문에 비용이 더 들어가고, 결국엔 음식값을 올리지 않으면 수익을 내기 어려운 구조가 됐다”고 말했다.

○ “업체 경쟁 붙이고 플랫폼만 돈 버는 구조”


2015년 이후 본격적으로 시장에서 영향력을 키운 숙박 플랫폼들에 대한 기존 숙박업계의 불만도 심각하다. 숙박 플랫폼은 고객들이 손쉽게 숙박업소를 검색·예약하고 이용자들의 평가도 확인할 수 있게 하는 등 편리함을 제공했다. 하지만 고객 유입을 근본적으론 늘리지 못하는 가운데 숙박업소끼리 경쟁하는 구도를 고착화시켰다고 숙박업계는 주장한다.

충남 천안시에서 숙박업소를 운영하는 한영모(가명·52) 씨는 2년 전 숙박 플랫폼 ‘야놀자’에 월 220만 원(부가가치세 포함)짜리 고액 광고를 걸었다가 몇 달 만에 내렸다. 야놀자를 통해 들어오는 고객들로 얻은 추가 매출은 600만∼700만 원 정도. 그러면 여기에서 10%의 추가 수수료를 낸다. 결국 추가 매출의 절반에 가까운 280만∼290만 원이 숙박 플랫폼으로 빠져나가는 구조였다.

한 씨는 “처음에는 지역당 1건씩만 최상단에 걸리는 톱 광고를 하겠다며 200만 원을 받다가 슬그머니 300만 원으로 올리고 톱 광고 수도 2개, 4개로 점차 늘리는 것이 숙박 플랫폼의 영업 방식”이라고 말했다.

○ 혁신 기업이 혁신 싹 자르는 모순도

혁신을 앞세워 등장한 플랫폼 기업이 성장한 뒤에는 자본과 규모를 앞세워 오히려 혁신의 싹을 밟는다는 지적도 있다. 스타트업 업계에서는 플랫폼 기업이 협업이나 투자를 이유로 미팅을 요청한 뒤 구체적인 사업 내용을 듣고 연락을 끊었다는 증언이 나오고 있다. 한 스타트업 관계자는 “스타트업끼리는 ‘카카오에 불려갔었다’고 하는데 그렇게 미팅을 하고 난 뒤에 비슷한 서비스를 직접 내놓는 경우가 종종 있었다”고 했다.

최경진 가천대 법학과 교수는 “플랫폼 기업의 영향력이 커지면서 잠복돼 있던 부작용들이 함께 떠오르는 상황”이라며 “혁신은 계속 이어가되 플랫폼 이용자는 물론 동반자들까지 상생할 길을 찾는 고민이 절실한 시점”이라고 말했다.

플랫폼 기업
‘승강장’을 뜻하는 플랫폼에서 나온 말로 디지털 네트워크를 기반으로 상품 및 서비스 거래를 중개하는 기업. 정보기술을 바탕으로 기존 산업구조를 빠르게 대체하고 있다.



부산=김도형 기자 dodo@donga.com
지민구 기자 warum@donga.com
김성모 기자 mo@donga.com


#플랫폼기업#수수료 영업#수수료 갈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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