軍 가혹행위 묘사? CCTV 달고 촬영한 것 같지 말입니다∼

  • 동아일보
  • 입력 2021년 9월 3일 03시 00분


코멘트

지난주 공개 넷플릭스 드라마 ‘D.P.’…가혹행위 장면 디테일에 호평
‘DP 출신’ 김보통 작가 인터뷰
드라마 속 부대 ‘가혹행위 종합세트’
‘윤일병-임병장’ 사건 난 2014년 배경

넷플릭스 오리지널 드라마 ‘D.P.’에서 황장수 병장(신승호)이 후임병들에게 기마자세를 시키는 등 가혹행위를 하는 장면. 넷플릭스 제공
넷플릭스 오리지널 드라마 ‘D.P.’에서 황장수 병장(신승호)이 후임병들에게 기마자세를 시키는 등 가혹행위를 하는 장면. 넷플릭스 제공
“군 문제를 정면으로 다루는 것에 대한 부담감은 있었다. 더 좋은 군대가 됐으면 좋겠다는 생각에서 이 이야기를 시작하게 됐다.”

지난달 27일 공개된 넷플릭스 오리지널 드라마 ‘D.P.’(디피)를 쓴 김보통 작가가 1일 동아일보와의 서면인터뷰에서 한 말이다.

최근 온·오프라인상에서는 온통 ‘D.P.’ 얘기다. 올해 공개된 국내 영상물을 통틀어 가장 큰 화제를 모으고 있는 작품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특히 드라마 속 군 부대 내 가혹행위 장면을 두고는 예비역 누리꾼들을 중심으로 “군대에 폐쇄회로(CC)TV를 달고 촬영한 것 같다”는 호평이 쏟아지고 있다.

이 드라마 작가이자 원작 웹툰 ‘D.P 개의 날’ 작가이기도 한 김 작가에 대한 관심도 뜨겁다. 드라마로는 처음으로 병영 내 가혹행위를 날것 그대로 다룬 데다 예비역들의 트라우마를 건드릴 정도로 실감나게 살려내서다. 김 작가는 “많은 남성이 군 생활을 하며 직접 보거나 경험했던 기억을 떠올리며 리얼함을 느끼는 것 같다”고 했다.

‘D.P.’는 육군 헌병대(현 군사경찰대)의 군무이탈자 체포전담조를 뜻하는 DP(Deserter Pursuit) 조원들의 활약을 다루는 과정에서 가혹행위를 현미경으로 들여다보듯 그려낸다. 코를 곤다는 이유로 방독면을 씌우는 건 약한 수준. 선임병은 후임병 뒤통수가 벽에 박힌 대못에 찔려 피가 날 때까지 폭행한다. 방독면에 물을 붓고, 침을 먹이는가 하면 각종 방법으로 성적 수치심을 준다. 드라마 속 군대는 분노를 참다 미치거나 탈영하지 않기 위해 온힘을 짜내 버텨내야 하는 지옥처럼 묘사된다.

민감한 주제를 다룬 탓에 군을 소재로 한 영상물로는 이례적으로 군 협조 없이 촬영이 진행됐다. 한 제작진은 “군 당국에 협조를 요청하지 않았다”고 했다. 드라마 속 생활관(내무반)은 실내 세트다. 연병장 등 주요 군 시설물이 등장하는 장면의 촬영은 경기 부천시의 폐쇄된 군부대에서 진행했다.

드라마의 시간적 배경은 현실 세계에서 군 사건사고 역사상 가장 심각한 해로 꼽히는 2014년. 윤 일병 구타 사망 사건과 임 병장 총기 난사 사건이 동시에 일어난 해다. 김 작가는 “2014년은 군도 사회도 변화해야 하는 큰 변곡점을 맞게 된 해”라고 시간 설정 배경을 설명하며 “(드라마 대본 집필에) 두 사건을 일부 참고했다”고 했다.

가혹행위의 피해자인 안준호 이병(정해인)이 헌병대 내 영창에서 근무하고 있다. ‘D.P.’는 예비역들을 중심으로 “군대를 그대로 드라마로 옮겨놨다”는 호평을 받고 있다. 넷플릭스 제공
가혹행위의 피해자인 안준호 이병(정해인)이 헌병대 내 영창에서 근무하고 있다. ‘D.P.’는 예비역들을 중심으로 “군대를 그대로 드라마로 옮겨놨다”는 호평을 받고 있다. 넷플릭스 제공
드라마 속 가혹행위를 두고는 반론도 나온다. A 장교는 “드라마가 그동안 전군에서 일어났던 극단적 사건을 골라 마치 한 부대에서 모조리 일어나는 일상적인 일처럼 묘사했다”며 “가혹행위 수준만 놓고 보면 (7년 전이 아닌) 20년 전 같다”고 했다. 군 수사기관의 또 다른 장교는 “지금은 병사들이 휴대전화를 쓸 수 있는 만큼 가혹행위 발생 시 곧바로 국방헬프콜에 신고하고 있어 드라마 수준의 가혹행위는 엄두도 못 낸다”고 했다. 실제로 드라마 대본에는 과거 DP로 활동한 김 작가의 경험이 깔려 있는데, 그는 2002년부터 군 복무를 했다.

군 관계자들은 휴대전화 사용이 가능해진 점, 이병부터 병장까지 함께 있던 생활관이 동기 생활관으로 바뀐 점, 소규모 독립부대를 제외하고 생활관이 침상형에서 사생활이 일부나마 보장되는 침대형으로 바뀐 점 등이 복무 스트레스를 줄이면서 과거 수준의 가혹행위는 줄어든 것으로 보고 있다.

그러나 드라마 배경인 2014년은 물론이고 최근까지도 가혹행위 사건은 잊을 만하면 터지고 있다. 2014년엔 윤 일병 사건을 계기로 후임병에게 파리를 먹이고 대검으로 찌른 사건, 냉장고에 가둔 사건 등이 줄줄이 드러났다. 2019년엔 육군 일병이 동기에게 대소변을 먹이는 등 가혹행위를 한 혐의로 구속됐다. 올해 7월엔 군인권센터가 한 공군부대 선임병들이 후임병을 용접가스보관창고에 가두고 불붙인 박스 조각을 던지는 등 가혹행위를 일삼았다고 폭로했다.

드라마 특성상 극적 효과를 위해 각종 가혹행위를 한 소대에 몰아넣은 측면이 없지는 않지만 엽기적 가혹행위가 현재 진행형임을 부인하긴 어렵다. 김 작가는 “(2014년 웹툰을 연재할 때부터) ‘언젯적 군대 얘기를 하느냐’는 사람들이 있었다. 많은 이들이 군내 부조리가 아직 존재한다는 것을 인정하지 않는다”며 “강한 사람이 약한 사람을 괴롭히는 폭력은 모양만 바뀌었을 뿐 어디엔가 계속 존재할지도 모른다”고 했다.

그는 최근 자신의 인스타그램엔 이같이 썼다. “D.P.는 ‘이제는 좋아졌다’는 망각의 유령과 싸우기 위해 만들어졌다. 보이지 않는 곳에서 외로운 싸움을 계속해 나가는 분들에게 힘을 보탤 수 있기를.”

손효주 기자 hjson@donga.com
#넷플릭스 오리지널 드라마#d.p.#김보통 작가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