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횡설수설/박중현]중국 빅테크의 기부

  • 동아일보
  • 입력 2021년 8월 28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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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차 소득격차 축소, 2차 세금 및 사회보장제도, 3차 부유층과 기업의 자발적 기부.’ 17일 중국 공산당 제10차 중앙재경위원회 회의를 주재한 시진핑 국가주석이 ‘다 같이 잘살자’는 뜻의 ‘공동부유(公同富裕)’를 새 화두로 제시하면서 내놓은 실천 계획이다. 눈치 빠른 중국 기업인들은 ‘부유층, 기업의 기부’란 말을 듣자마자 회사 재무책임자를 호출했을 것이다.

▷중국의 매출 3위 전자상거래 업체 핀둬둬는 24일 농촌 문제 해결을 위해 100억 위안(약 1조8000억 원)을 내기로 했다. 창업 후 줄곧 적자였고 흑자 전환된 올해 2분기 순이익도 24억1500만 위안이어서 감당하기 힘든 규모의 기부다. 하지만 시 주석 발언 다음 날 최대 인터넷 기업 텐센트가 500억 위안을 헌납한 뒤 핀둬둬 같은 기업들이 줄을 잇고 있다.

▷중국에선 1978년 덩샤오핑이 개혁개방을 주도하면서 시작된 ‘선부론(先富論·일부가 먼저 부자가 돼 부를 확산시킨다는 이론)의 시대’가 완전히 끝났다는 평가가 나온다. 내년 10월 3연임 결정을 앞둔 시 주석으로선 빅테크들의 기부를 받아 국민에게 나눠주면 정의로운 이미지를 세우면서 빈부격차에 대한 불만도 잠재우는 일석이조의 효과를 얻을 수 있다.

▷중국식 기부는 미국식 기부와 차이가 크다. 마이크로소프트(MS) 창업자 빌 게이츠 같은 실리콘밸리 기업인들은 자기 힘으로 창업해 세계적 기업을 키운 뒤 은퇴를 전후해 기부할 가치가 있다고 판단한 분야에 재산의 절반 이상을 쾌척한다. 반면 보조금, 정치적 후원을 통해 기업의 성장 과정에 깊이 개입한 중국 공산당, 정부는 대놓고 ‘사회에 대한 보답’을 요구하고 있다. 거부했다간 알리바바의 마윈 창업자처럼 집에서 그림만 그리게 될 수 있다.

▷군사독재, 권위주의 정부를 경험한 한국인들에게 ‘기업 옆구리 찔러 기부 받기’ 행태는 낯설지 않다. 2000년대까지만 해도 사회적으로 큰 물의를 빚은 기업에 정부와 정치권은 응분의 책임을 요구했고, 오너 일가가 사재(私財)를 출연해 기부하는 것으로 사태가 마무리되곤 했다. 코로나19 이후 정치권에서 제기된 ‘기업이익 공유’ 주장들은 그 잔재인 셈이다.

▷한국의 기부 문화는 빠르게 업그레이드되고 있다. 재산 절반 이상 기부를 약속한 김범수 카카오 이사회 의장, 김봉진 배달의민족 창업자 등은 맨바닥에서 굴지의 기업을 일궈낸 자수성가형 사업가들이다. 고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의 유산을 물려받은 삼성 일가는 1조 원의 기부금과 함께 국보급 미술품 수만 점을 기부해 한국의 문화 수준을 단번에 끌어올렸다. 기업 손목 비틀기를 진짜 기부와 헷갈리는 지금의 중국 수준에 한국이 머물렀다면 결코 볼 수 없었을 모습들이다.



박중현 논설위원 sanjuck@donga.com


#중국 빅테크#기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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