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자가 여자로 살아야 할 때[클래식의 품격/노혜진의 엔딩 크레디트]

  • 동아일보
  • 입력 2021년 7월 20일 03시 00분


코멘트
1929년 미국 금주법 시대 시카고에서 빈털터리 색소폰 연주자 조(토니 커티스)와 베이스 연주자 제리(잭 레먼)는 우연히 밀주업자 갱단의 살해 장면을 목격한다. 숨어서 보다가 들통 난 두 사람은 도망치던 중 여성 순회악단에 들어가게 된다. 여장을 하고서 말이다. 두 사람은 악단의 매력적인 가수이자 우쿨렐레 연주자인 슈가(메릴린 먼로)에게 한눈에 반하지만 정체를 숨겨야 하는 탓에 티도 못 내며 슈가를 사이에 두고 서로 경쟁하는 상황이 된다.

고전 할리우드 영화의 대가 빌리 와일더 감독의 로맨틱 코미디 ‘뜨거운 것이 좋아’(1959년) 이야기다. 프랑스 영화 ‘사랑의 팡파르(Fanfare d‘amour·1935년)’를 원작으로 한 이 작품은 감독상, 배우상, 각색상 등 아카데미상 6개 부문 후보에 올랐고 의상상을 받았다. 미국영화연구소(AFI), BBC, 가디언 등이 꼽은 역대 최고 영화 목록에 단골로 올랐던 작품으로, 마지막 대사 한 줄까지 ‘역대 최고’ 중 하나로 꼽히기도 했다.

각각 ‘조세핀’과 ‘다프네’로 분장한 조와 제리는 플로리다행 기차에서 여성 악단 동료들과 친해지는데 금지된 밀주를 나눠 마시면서 스스로의 정체성에 대해 혼란스러워하는 상황이 벌어지기도 한다.

조와 제리가 짝사랑하는 슈가는 테너색소폰 연주자만 보면 사랑에 빠지는 탓에 여러 번 아픔을 겪은 인물. 그는 이제 정신 차리고 자기에게 잘해주는 안경 쓴 백만장자를 찾아서 결혼하겠다고 선언한다. 이 이야기를 들은 조는 플로리다에 도착한 후 안경과 리조트웨어를 구해 해변에서 백만장자 행세를 하고, 결국 슈가와 요트 데이트를 하기에 이른다. 그사이 ‘다프네’로 분장한 제리는 실제 백만장자 오스구드로부터 구애를 받으며 밤새 탱고를 추다 숙소로 돌아온다.

영화의 막바지, 조와 제리는 자신들이 머무는 호텔에서 열리는 ‘이탈리아 오페라의 친구들’이라는 회동이 마피아들의 모임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며 황급히 도망친다. 이 과정에서 슈가는 조와 조세핀, 백만장자가 모두 한 사람임을 눈치 채고 결국 따라 나선다. 백만장자 오스구드는 ‘다프네’로 분한 제리에게 계속 청혼하다가 그가 남성임을 알게 된다. 당시 오스구드의 “완벽한 사람은 없다(Nobody’s perfect)!”는 한마디는 역대 최고의 대사로 꼽히기도 했다.

하이힐을 신고 불편한 여장을 한 조와 제리가 당시 남성들로부터 받았던 무시와 성희롱을 영화가 단순한 웃음거리로만 사용하는 데 그치지 않았다면 더 큰 재미를 줬을 것 같다. 완벽한 사람이 없듯 완벽한 영화는 없다. 그래도 이 작품은 당시 시대적 상황을 고려하지 않아도 완벽에 아주 가깝다고 할 수 있다. 여름날 더위를 식혀줄 코미디 작품으로 제안해본다.



노혜진 스크린 인터내셔널 아시아 부국장


#남자#여자#시카고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