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책 토론 실종이 만든 네거티브 공방”[동아광장/한규섭]

한규섭 객원논설위원·서울대 언론정보학과 교수 입력 2021-07-13 03:00수정 2021-07-13 0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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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생활 들추기, 고발 난무하는 선거판
투표 결정시 정책 외면해온 반복 학습효과
극단정책 공격받는 美, 정책투표 사라진 韓
공약이 미칠 영향 고려해 고민 거쳐 선택해야
한규섭 객원논설위원·서울대 언론정보학과 교수
여당 경선 후보 TV토론이 생중계되고 범야권 후보들의 출마 선언이 이어지면서 대선 국면이 본격화되는 것을 느낀다. 이제 시작일 뿐인데 선거판은 이미 사생활 들추기와 네거티브가 넘쳐난다. 미국의 정치학자 래리 새버토가 기술했던 ‘피딩 프렌지’(Feeding Frenzy·상어나 물고기가 먹잇감에 떼 지어 달려드는 광란 상태)의 극단을 보는 듯하다.

범야권 유력 후보가 대선 출마 선언을 한 다음 날 기다렸다는 듯이 배우자에 대한 의혹이 제기되고, 준공영 방송 기자가 경찰을 사칭해 논문 지도교수 주소를 캐내려 시도했다가 형사 고발을 당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여권 유력 후보는 경선 TV토론에서 모 여배우가 주장하는 불륜설에 대해 질문받자 “바지를 내려야 하냐”며 반발하는 민망한 상황도 벌어졌다. 세계 10위권 경제 규모를 가진 국가의 대선이 맞는지 아연실색할 수밖에 없다.

정책 토론은 완벽하게 실종된 상태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4차 대유행으로 확진자 숫자가 연일 신기록을 세우고 자영업자의 삶은 피폐해져 가며 20대는 ‘경험해 본 적 없는 실업률’ 수치를 마주하는데도 말이다.

왜 이런 현상이 나타날까. 사실 이는 유권자가 자초한 일이라 할 수 있다. 한국 정치에서 ‘정책’은 투표 결정의 아무런 요인이 아니라는 점을 후보자들이 반복된 학습효과로 너무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필자는 2017년 대선 당시 일반 유권자들과 후보자들의 정책 입장을 비교해 자신과 정책 입장이 유사한 후보를 알려주는 웹 서비스를 운영한 바 있다. 이 서비스를 위해 일반 유권자들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실시해 약 21개 정책 사안에 대한 입장을 물었다. 마찬가지로 당시 주요 대선 주자였던 문재인, 심상정, 안철수, 유승민, 홍준표 후보 측으로부터 해당 사안에 대한 입장을 취합했다. 그리고 여기에 문항반응모형(item response model)을 적용해 유권자와 후보자의 정책 입장을 한 축에서 나열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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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거 결과 가장 많은 득표를 한 문재인 대통령은 당시 정의당 심상정 후보와 모든 설문에서 동일하게 답변했고, 전체 유권자와 비교하면 가장 진보적인 유권자(백분위상 왼쪽에서 1%)에 해당했다. ‘개성공단 즉각 재개’에 찬성(유권자 61% 반대)했고, ‘사드 배치 추진’에는 유보적인 입장(유권자 58% 찬성)이었다. ‘교육감 직선제 폐지’에는 반대(유권자 57% 찬성)했다. 당시 조사에서 응답자가 투표할 후보와 정책 입장에서 가장 유사한 후보가 동일한 비율은 약 13%에 불과했다.

2004년 미국 대선 당시 조지 W 부시 대통령에게 도전했던 민주당 존 케리 상원의원은 그 전해 내셔널저널지의 상원 표결 기록 분석에서 ‘가장 진보적인 상원의원’으로 분류됐다. 이 때문에 케리 후보는 선거 기간 내내 집중 공격을 받았다. 그는 대선에서 큰 표 차로 패했다.

왜 한국 정치에서는 이런 극단적인 포지셔닝이 가능할까. 유권자들이 문 대통령의 정책 입장을 실제보다 훨씬 ‘온건’한 것으로 인식했다는 점이 흥미롭다. 구체적으로 유권자들은 문 대통령의 이념적 위치를 전체 유권자를 기준으로 왼쪽에서 백분위상 25% 정도로 인식했다. 이러한 ‘인식 오류’는 지지하는 후보가 자신과 비슷한 성향일 것이라 생각하는 ‘투사효과(projection effects)’ 때문일 것이다. 사회적으로 양극화가 심해지다 보니 자신의 이익이나 의견을 대표해줄 후보에게 투표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지지하는 후보가 자신을 대표해줄 것으로 잘못 인식하는 유권자가 많은 것이다.

이번 대선에서도 유권자의 삶에 큰 영향을 미칠 공약들이 쏟아져 나오고 있다. 가령 올 3월 서울대 사회과학연구원 심포지엄에서 한 저명 경제학자가 발표한 정책실험 시뮬레이션에서는 기본소득 도입 시 우리 경제에 가져올 변화가 엄청날 것으로 분석됐다. 재원 충당을 위해 근로소득세 또는 소비세율이 세 배 가까이 증가하고 총생산과 총소비가 큰 폭으로 감소할 것으로 예측됐다. 근로소득 감소 등으로 경제적 불평등 척도인 세전소득 지니계수는 오히려 악화되고, 세후소득 지니계수도 개선 효과가 미미할 것으로 예측됐다.

우리는 이러한 변화를 맞이할 준비가 됐는가. 물론 이 경제학자의 분석이 틀릴 수도 있다. 그러나 그 판단 역시 유권자의 몫이어야 한다. 중요한 것은 그 판단과 결정이 ‘투사효과’가 아닌 충분히 정책에 대한 이해와 고민을 거친 선택이어야 한다는 점이다.

한규섭 객원논설위원·서울대 언론정보학과 교수



#정책 토론 실종#네거티브 공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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