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순문학작가들, 해외선 추리소설작가로 각광

  • 동아일보
  • 입력 2021년 7월 8일 03시 00분


코멘트

잇단 장르 문학상 수상에 수출 날개
김영하-편혜영, 獨-美 문학상 이어 윤고은, 동아시아권 첫 英 대거상 수상
정유정-김언수 작품 19國 이상 팔려… “추리소설 종주국, 韓문학수요 늘고
국내와 달리 순수-장르 구분 사라져… 좋은 작품을 발굴하고 소개해야”

“친구들에게 ‘내 작품이 추리소설이야?’라고 물어볼 정도로 저도 깜짝 놀랐어요.”

윤고은 작가는 6일 동아일보와의 통화에서 이렇게 말했다. 이효석 문학상을 받은 그는 국내에서는 순문학 작가로 여겨진다. 그런 그가 장편소설 ‘밤의 여행자들’(민음사)로 영국 추리작가협회가 주관하는 대거상 번역추리소설상을 1일(현지 시간) 수상하자 스스로도 의아해했던 것. 이 작품은 재난으로 폐허가 된 지역을 관광하는 재난여행 상품만을 판매하는 여행사의 직원이 범죄에 휘말리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를 담았다. 그는 “이 작품은 인간의 내면 심리를 파고들었다는 점에서 순문학이지만 속도감 있는 문체로 범죄 사건을 다뤘다는 점에선 추리소설이라고 평가받은 것 같다”며 “그동안 문학의 장르에 구애받지 않고 글을 써왔던 만큼 앞으로도 경계를 넘나들며 좋은 소설을 쓰고 싶다”고 했다.

한국 작가들이 장르를 넘나들며 세계에서 인정받고 있다. 2016년 한강 작가가 연작소설 ‘채식주의자’(창비)로 세계 3대 문학상으로 꼽히는 영국 맨부커상 인터내셔널 부문에 선정되며 순문학의 성과를 인정받은 이후 최근엔 추리, 스릴러 분야에서도 성과를 보이고 있는 것.

김영하 작가는 알츠하이머에 걸린 연쇄살인범이 주인공인 장편소설 ‘살인자의 기억법’(복복서가)으로 지난해 독일에서 가장 오래된 추리문학상인 독일추리문학상을 받았다. 편혜영 작가는 교통사고로 아내를 잃고 불구가 된 대학교수가 등장하는 장편소설 ‘홀’(문학과지성사)로 2018년 추리·스릴러·호러 작품에 수여하는 미국 셜리 잭슨상을 받았다. 두 작품 모두 국내에선 순문학 작가의 작품으로 평가받지만, 해외에선 장르문학에 해당하는 상을 받은 셈이다.

장르성이 짙은 작품의 해외 진출도 늘어나고 있다. 사이코패스를 다룬 정유정 작가의 장편소설 ‘종의 기원’(은행나무)은 프랑스 독일 미국 등 19개국에 판권이 팔렸다. 암살 청부 집단이 등장하는 김언수 작가의 ‘설계자들’(문학동네)은 영국 미국 등 22개국에 판권이 팔렸다. 한국문학번역원 관계자는 “프랑스 독일 영국 등 추리·스릴러 소설의 종주국이라 할 수 있는 언어권에서 한국 문학에 대한 수요가 높아지고 있다”며 “해외 출판사가 직접 국내 작가들의 작품 중 추리·스릴러 성향이 강한 소설을 골라 번역 출간을 요청하기도 한다”고 했다.

국내에선 예술성이나 인간의 본질을 탐구하는 순문학과 대중의 흥미를 중시하는 장르문학을 엄격히 구분하는 경향이 크다. 반면 해외에선 둘 사이의 구분이 거의 사라진 상태다. 문학평론가인 방민호 서울대 국어국문학과 교수는 “최근 국내에서 순문학 작가로 분류됐던 이들이 추리·스릴러 소설의 특성인 긴박감 넘치는 사건과 속도감 있는 문체를 차용해 작품의 경계를 넓히고 있다”며 “순문학과 장르문학의 경계를 엄격히 나누기보단 각각의 장점과 특성을 적절히 조합해 작품을 써내는 풍토가 커지고 있다”고 했다.

이런 흐름에 맞춰 국내에서도 작품을 순문학과 장르문학으로 칸막이 치기보단 작품성을 기준으로 작품을 발굴할 필요가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밤의 여행자들’을 수출한 출판 에이전시 KL매니지먼트의 이구용 대표는 “최근 해외 출판사들이 대중에게 어필할 수 있는 장르성 짙은 한국 작품을 찾는 경향이 생기고 있다. 물론 여전히 한강의 작품처럼 문학적 성취에 방점을 둔 작품을 원하는 해외 수요도 있는 만큼 작품의 경계를 구분하지 않고 좋은 작품을 발굴하고 소개해야 한다”고 했다.



이호재 기자 hoho@donga.com
#순문학작가들#추리소설작가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