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아서 읽는 소설, 장르가 중요한가요[이호재의 띠지 풀고 책 수다]

  • 동아일보
  • 입력 2021년 6월 19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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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인만큼 지구를 사랑할 순 없어/정세랑 지음/400쪽·1만6800원·위즈덤하우스


최근 30대 초반 친구들끼리 만난 자리에서 정세랑 작가(37·여)에 대한 이야기가 나왔다. 독서를 좋아하는 친구들이 많은 모임이었지만 작가의 이름이 나온 건 의외였다. 요즘 시대에 연예인도, 유튜버도 아닌 작가 이야기라니…. 넷플릭스 드라마로도 만들어진 장편소설 ‘보건교사 안은영’(민음사)에 대해선 “원작이 더 재밌다”며 추천하는 이도 있었고, 장편소설 ‘시선으로부터,’(문학동네)에 대해선 “읽고 나서 울 뻔했다”며 극찬하는 이도 있었다. 책 읽는 사람들이 없어지는 시대에 친구들이 가장 많이 사 보는 건 정 작가의 책이었다.

이 책은 정세랑의 첫 번째 에세이다. 10여 권의 책을 낸 그가 자신의 이야기를 고백한 첫 작품이라는 점에서 눈길이 갔다. 여행 에세이의 형식을 띠고 있지만 곳곳에 작가로서 그가 인정받기까지 겪은 과정과 마주친 편견들이 담겨 있다. 언뜻 바로 스타 작가가 됐다고 착각할 만한 그의 작가 인생에도 굴곡이 있었던 것.

정세랑은 2010년 장르문학 잡지 ‘판타스틱’에 단편소설 ‘드림, 드림, 드림’을 발표하며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하지만 막상 그가 마주한 건 문단의 편견이었다. 한 문인은 “장르문학 쪽에서 잘 쓰는 작가가 없던데요? 세랑 씨도 재등단이나 하지 그래요?”라고 도발했다. 문단에서 인정받지 못한 탓인지 2011년 출간한 장편소설 ‘덧니가 보고 싶어’(난다)와 2012년 내놓은 장편소설 ‘지구에서 한아뿐’(네오픽션)은 초판도 모두 팔리지 않았다. 당시 심정을 정세랑은 이렇게 고백한다.

“장르 소설가들이 늘 화가 나 있는 것처럼 보이는 것은 내내 부아가 치미는 말들을 듣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장르를 모르면 장르 이야기를 하지 않으면 될 것을 왜 그렇게 무례하게들 구는지 모르겠다. 예전보다는 덜하지만 여전히 그런 경향이 남아 있다.”

정세랑이 택한 건 문학상 도전이었다. 그는 작가와 겸업하던 출판사 편집자 일을 그만두고 전업 작가로 돌아섰다. 소설 쓰기에 모든 걸 걸었고 장편소설 ‘이만큼 가까이’(창비)로 2014년 창비 장편소설상을 받은 뒤 서서히 인정받기 시작했다. 요즘 만나는 출판사 관계자들도 “정세랑은 인정한다”고 입을 모은다. 정세랑은 요즘 밀려 있는 청탁 원고를 쓰느라 밤을 새울 정도로 바쁘다고 한다. 장르문학 작가는 글을 못 쓴다는 문단의 편견을 깨고 우뚝 선 것이다.

정세랑의 작품에 감동받고도 그의 작품을 놓고 “순문학이다” “장르문학이다” 구분 짓는 친구는 없었다. 그의 작품이 사람들 눈에 보이지 않는 존재를 없애는 퇴마사를 주인공으로 내세우고, 외계인과 지구인의 사랑을 그리기도 하지만 독자는 정세랑을 장르문학 작가로 한정짓지 않는다. 독자에게는 오직 감동을 주는 소설과 감동을 주지 못하는 소설만 있을 뿐이다. 아직도 순문학과 장르문학을 가르는 이들은 일부 ‘고매한’ 문인들뿐이다.

이호재 기자 hoho@donga.com
#정세랑#좋아서 읽는 소설#에세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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