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대 노린 마약 딜러들, 강남 유명학원가 누빈다”

  • 동아일보
  • 입력 2021년 5월 20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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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대 마약사범 5년째 늘어

마약 얻으려고 조건만남까지 “멋모르고 손댔다가 인생을 망쳐버렸어요. 절 이렇게 만든 어른들이 죽도록 미워요.”

학교를 다녔다면 올해 고2였을 A 양(17). 하지만 2월경 그는 부모 손에 이끌려 인천참사랑병원을 찾아왔다. 중학생 때부터 손댄 마약 중독으로 치료가 시급했다.

병원에 따르면 A 양은 아는 언니들을 따라 클럽에서 마약을 접했다. 호기심이었지만 곧 수렁에 빠졌다. 마약을 제공받으려 성인과 조건만남을 가지기도 했다. 약 3개월 치료 뒤 A 양은 자신이 겪은 실상을 전하려 했다. “마약에 빠진 애들이 많다. 현실을 알려주겠다”며 동아일보와 인터뷰를 잡았다. 병원 측은 “많이 호전돼 현재 통원 치료를 받고 있다”고 했다. 하지만 인터뷰는 성사되지 않았다. A 양은 퇴원 이틀 뒤 유혹을 못 참고 가출해버렸다. 현재 수사기관이 수배에 나섰다.

10대 마약 중독이 심각하다. 경찰청에 따르면 2017년 69명이던 미성년자 마약사범은 지난해 241명으로 늘어났다. 전체 마약사범에서 차지하는 비율로 따져도 2017년 약 0.8%에서 2020년 약 2%로 증가했다.

10대 마약사범 3년새 3배이상으로 늘어
마약 얻으려고 조건만남까지

올해는 더 나빠졌다. 3월까지 검거된 마약사범 1492명 가운데 10대가 44명이나 된다. 전체 마약사범에서 약 2.9%나 미성년자인 셈이다. 경찰 측은 “최근 소셜미디어 등 구입 경로가 늘어나 쉽게 마약에 빠지고 있다”고 했다.

“미성년자라도 돈만 있으면 얼마든지 주변 시선을 피해 마약을 구할 수 있어요. 모바일메신저를 이용하니 잡기도 힘들어요.”

이달 초 강원경찰청은 한 마약판매조직 일당을 잡아들였다. 총책임자 등 16명을 붙잡아 10명을 구속시켰다. 이 조직으로부터 필로폰 등 마약을 사들여 투약한 17명도 검거됐다. 그런데 이 중엔 10대도 섞여 있었다.

어린 청소년들이 마약을 다루는 중범죄자들과 어떻게 접촉했을까. 방식은 예상보다 간단했다. 조직은 익명 모바일메신저로 마약 판매를 전방위로 홍보했다. 10대들은 굳이 만날 필요도 없이 돈만 입금하면 됐다.

판매자들은 특정 장소에 마약을 감춰두고 아이들이 직접 찾아가게 했다. 일명 ‘던지기’ 수법이다. 신뢰가 쌓이면 ‘무인거래소’라 부르는 원룸을 이용해 거래를 일삼았다.

○ “처음이니 공짜로 줄게”
10대의 마약 중독이 늘고 있지만 실상은 잘 드러나지 않는다. 미성년자라 아이들의 미래를 우려해 공개를 꺼린다. 관련 병원이나 경찰도 극도로 주의한다.

동아일보는 16세에 마약에 빠졌던 A 씨(22)를 수소문 끝에 만났다. 그는 현재 약을 끊고 같은 고통을 겪는 청소년을 도우려 사회복지사를 준비하고 있다. A 씨는 “한 번쯤은 괜찮다는 착각이 얼마나 무서운지 알려주고 싶다”고 했다.

“대마초 구하는 건 일도 아니에요. 인터넷을 뒤지면 업자들 아이디를 금방 찾아요. 물론 3g에 몇십만 원인데 부담스럽죠. 근데 말 거는 순간, 이미 늪에 빠지는 거예요. 선뜻 ‘1g 공짜로 주겠다’고 꼬드겼어요.”

그렇게 넘겨받은 대마초. A 씨는 “속이 메스꺼워 다신 안 해야지”라고 맘먹었지만 자꾸만 떠올랐다. 결국 가진 돈을 털어 구입했다. A 씨는 “초반엔 3, 4시간씩 효과가 나타난다. 하지만 갈수록 양을 늘려야만 했다”며 “머릿속에선 약 생각밖에 나지 않았다”고 떠올렸다.

더 큰 돈이 필요했던 A 씨는 피폐해져 갔다. 집안 물건을 내다팔고 가족에게 폭력을 휘둘렀다. 호스트바에서 일하며 성을 제공하고 돈을 마련했다. A 씨 아버지(61)는 “마음을 못 잡고 사고 치는지는 알았지만 마약까지 할 줄은 꿈에도 몰랐다”며 자책했다.

“빠져나오려 해도 헤어날 수 없었어요. 한 번은 전문기관에서 주선한 중독자모임에 갔어요. 서로 도우며 함께 이겨내려는 취지죠. 그런데 거기 환자를 가장해 잠입한 마약조직이 있는 거예요. 유혹에 못 이겨 필로폰까지 손댔어요. 마약은 두려울 정도로 끈질기게 달라붙어요.”

A 씨는 약 2년 전 가족과 병원 등의 도움으로 천신만고 끝에 마약을 끊었다. 하지만 그 과정은 지옥보다 더 고통스럽다. A 씨는 “상당수가 실패하고 인생을 망친다. 딱 한 번도 안 된다. 친구와 가족, 꿈 등 모든 걸 잃는다”고 경고했다.

○ “대마초, 10대 뇌에 치명적”
10대들이 주로 하는 마약은 비교적 구하기 쉬운 대마 계열(대마초, 해시시오일 등)이 많다. 올해 3월 경찰이 적발한 마약류 통계에 따르면 10대 마약사범의 41.7%가 대마에 손을 댔다. 이는 전체 평균인 19.8%를 크게 웃돈다.

중독치료전문의인 천영훈 인천참사랑병원장은 “대마는 다른 마약보다 약하다는 인식이 있는데, 뇌 성장에 영향이 커 미성년자에게 매우 치명적”이라며 “방어체계를 갖추지 못한 뇌에 폭탄을 터뜨려 충동제어 시스템을 무너뜨린다”고 경고했다.

평범한 학생들마저 마약에 노출되고 있다는 지적도 나왔다. 천 원장은 “서울 강남의 유명 학원가에서 10대들을 상대로 장사하는 마약 딜러도 있다고 들었다”며 “더 이상 한국도 10대 마약 청정 국가가 아니란 걸 받아들이고 시급히 대책을 세워야 한다”고 강조했다.

박종민 기자 blick@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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