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금희 소설가 “기성세대의 무지와 오만 나부터 반성하고 싶었죠”

  • 동아일보
  • 입력 2021년 5월 14일 03시 00분


코멘트

4번째 소설집 펴낸 김금희 작가
“40대 되니 기성세대 실수 보여” 무기력한 의대생-재일 한국인 등
불안한 청년의삶 다룬 단편 모아…어느덧 문단 연차 쌓여 ‘과장급’
부담감에 두번째 슬럼프 겪어…따뜻한 시선으로 인물 그리며 성장

창비 제공
창비 제공
“제가 40대로 접어들다 보니 기성세대가 ‘기성’으로서 저지르는 실수들을 직접 반성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30대 때는 분노에 그쳤던 것 같아요. 이번에 묶은 단편들 중 여러 편이 기성세대의 무지와 오만에 대한 문제의식에서 쓰게 된 작품들입니다.”

최근 4번째 소설집 ‘우리는 페퍼로니에서 왔어’(창비)를 발표한 김금희 소설가(42·사진)가 말했다. 이번 소설집은 지난해 김승옥문학상 수상작인 ‘우리는…’을 표제작으로 ‘마지막 이기성’(2020년 이효석문학상 우수작품상), ‘기괴의 탄생’(2019년 김유정문학상 수상후보작) 등 평단의 주목을 받았던 단편 7편을 묶었다. 12일 서울 마포구 창비에서 김 작가를 만났다.

단편 ‘우리는…’은 주인공 ‘나’가 대학교 선배 ‘기오성’과 함께 노교수의 종택에서 족보 정리 아르바이트를 했던 3개월을 그렸다. 가난의 굴레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나’와 탄탄한 물질적 사회적 토대를 가진 노교수를 병치하며 그 격차를 짚어낸다. 동년배의 세 주체인 나, 기오성, 노교수의 손녀인 ‘강선’의 위계도 각자 다르다는 점을 드러낸다.

김 작가에게 이 소설은 가장 고통스럽게 써서 애착이 가는 작품이다. 처음부터 소설의 모든 세부를 결정한 뒤 쓰기를 시작하지 않는다는 그는 “처음에는 ‘강선’이 너무 미웠지만 쓰는 동안에 그를 이해하게 됐다. 그래서 발표 직전까지 소설을 뜯어고쳤다”고 말했다.

첫 번째 수록작인 ‘우리가 가능했던 여름’에는 청년 세대가 감내하고 있는 팍팍한 세상이 보다 구체적으로 드러난다. 대학 삼수생과 학교 적응에 실패한 의대생 두 주인공을 앞세워 젊은 세대가 느끼는 빈곤과 무기력을 그렸다. 그는 “청년 세대에게 ‘목적과 목표를 잃었다’는 비판을 많이 하는데 그들이 원하는 걸 성취하기에 세상이 이미 비합리적이라고 생각한다. 그런 식의 재단이 기성세대의 오만이라는 생각에서 쓴 소설”이라고 설명했다.

김 작가에게 이번 소설집은 작가로서의 삶에서 두 번째로 맞은 슬럼프를 극복하게 해준 책이기도 하다.(그가 꼽는 첫 번째 슬럼프는 5년간 책을 내지 못했던 등단 직후의 시기다) 그는 2018년 발표한 첫 장편소설 ‘경애의 마음’이 7만 부 이상 판매되며 한국 문단에서 자신의 입지를 굳건히 했다. 하지만 이게 또 다른 부담으로 다가왔다고 한다. “앞으로 더 잘 쓰지 않으면 시장 논리에 휩쓸렸다는 비판을 받을 수 있다”고 충고하는 문단 선배들도 있었다.

‘마지막 이기성’은 그런 부담을 안고 쓰기 시작했다. 연인인 일본 유학생과 재일 한국인을 통해 외국인으로서 겪는 차별과 불안한 청춘의 모습을 그렸다. 김 작가는 “장편을 마무리하고 좀 쉬어야 했는데 부담감 때문에 2019년부터 계속해서 단편들을 써 나갔다. ‘마지막…’은 정말 울면서 썼다”며 웃었다.

김 작가 소설의 애독자라면 그가 인물들을 바라보는 시선이 참 따뜻하다는 점을 알 수 있다. 이유를 물었더니 “소설을 쓰며 작품 속 인물들을 더 깊이 이해하게 될 수밖에 없다. ‘경애의…’도 원래는 좀 더 비관적인 결말이었는데 자꾸만 경애가 소설 속에서 힘을 발휘하는 바람에 이야기를 바꿨다”고 말했다.

그는 요즘 문단에서 자신이 ‘과장’급 정도의 연차가 쌓였다는 우스갯소리를 자주 한다. 소설을 쓰면 쓸수록 점점 품이 커진다는 점이 그가 꼽는 가장 큰 성장이다.

“세상에서 성장한 김금희가 더 성숙한 소설을 쓰게 되는 게 아니라, 소설 속에서 김금희가 더욱 성장하는 것 같습니다.”

전채은 기자 chan2@donga.com
#김금희#소설가#성장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