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천서 용 나는 나라가 발전한다” ‘흙수저 재상’서 배우는 등용의 지혜

이호재 기자 입력 2021-05-11 03:00수정 2021-05-11 19: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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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서열전’ 우리말로 펴낸 신경란 번역가
반고가 쓴 中 전한 시대 역사서, 주요 인물의 성공과 실패 다뤄
“귀족 배제한 인재 발탁 배울만” 읽기 쉽게 다듬으며 13년간 작업
한서열전을 쓴 역사가 반고. 민음사 제공
중국 전한(前漢) 시대 재상을 지낸 공손홍(公孫弘·기원전 200∼기원전 121)은 ‘흙수저’들의 희망이다. 그는 가난한 평민 출신으로 돼지를 키우며 살았는데 나이 들어서도 공부를 게을리하지 않았다. 공손홍은 나이 육십에 한무제에 의해 요직에 전격 등용됐다. 신분 상승의 사다리를 탄 것이다.

지난달 30일 출간된 ‘한서열전’(민음사)을 번역한 신경란 번역가(58·여)는 9일 화상 인터뷰에서 “개천에서 용 나는 시스템을 확립한 전한 시대의 정신을 배워야 한다”고 강조했다. 전한은 출신이나 배경이 아닌 능력으로 인재를 등용하는 시스템을 동아시아 고대국가 중 가장 먼저 확립했다. 전한의 역사를 살펴봄으로써 인재 발굴의 기준을 되새길 수 있다는 게 그의 생각이다. 신 번역가는 “전한 황제들은 특권층인 귀족으로의 인사 쏠림을 막기 위해 다양한 경로로 인재를 발탁했다”며 “독자들이 한서열전에 등장하는 수많은 인물들의 삶을 통해 문화를 융성하게 하고 제도의 기틀을 세운 전한의 비결을 배웠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한서열전’을 번역한 신경란 번역가는 “전한은 수많은 문인과 예술가가 배출되고 수준 높은 작품들이 쏟아져 나온 문화 융성의 시대”라며 “동아시아 문화의 근간이 전한 때 확립됐다”고 말했다. 신경란 번역가 제공
한서(漢書)는 중국 후한 시대 역사가 반고가 쓴 역사서다. 기원전 202년∼기원후 8년의 전한 시대를 다룬다. 사마천의 사기(史記)와 더불어 동양 고전의 양대 산맥으로 꼽힌다. 한서는 80여만 자에 달하는데 이 중 영웅호걸 등 인물을 다룬 50여만 자를 한서열전이라고 부른다. 신 번역가는 “한서열전 등장인물들의 성공과 실패의 이야기를 읽다 보면 전한 시대로 시간여행을 떠난 기분이 든다”고 말했다.

신 번역가는 인물에 대한 평가에 객관성을 확보하려고 노력했다. 대표적인 사례가 왕망(王莽·기원전 45∼기원후 23)이다. 왕망은 전한을 무너뜨리고 신나라를 세운 인물이다. 사마광 등 기존 사가들은 그를 갖가지 권모술수를 사용해 역성(易姓)혁명을 일으킨 인물로 부정적으로 평가했다. 하지만 후대에 와서 그는 이상적인 나라를 세우기 위해 개혁정책을 펼친 인물로 재평가되고 있다. 신 번역가는 “요즘 중국 연구자들 사이에서 왕망은 민생을 살리지 못한 나라라면 무너뜨릴 수 있다는 교훈을 준 인물로 평가받고 있다”며 “최신 연구성과를 반영한 3200여 개의 주석을 달아 독자가 균형 있는 시각을 취하도록 했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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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은 총 3권으로 모두 3612쪽에 이른다. 분량이 방대하지만 쉽게 번역한 덕에 수월하게 읽힌다. 예를 들어 전한 당시 아랫사람이 존댓말을 할 때 과거에는 ‘∼옵니다’로 번역했지만 이 책은 ‘∼합니다’처럼 친근한 현대식 표현을 사용한다. 한자어를 최대한 줄이고 우리말로 쉽게 풀어쓴 점도 눈에 띈다. 그는 “평소 쓰지 않는 말투와 단어를 이해하기 쉬운 말로 바꿔 독자들에게 다가가려고 노력했다”고 말했다.

이 책은 기획부터 출간까지 13년이나 걸렸다. 그는 2008년 출판사와 계약을 맺은 뒤 6년간 초벌 번역을 했다. 이후 5차례에 걸쳐 원문과 번역본을 읽으며 오류를 고치고 문장을 다듬었다. 중국 난징(南京)에 머물고 있는 신 번역가는 국내에서 역사학을 전공한 후 중국 난징대에서 고대 중국어 문법을 전공했다. 반고가 집필하기 시작한 한서열전을 여동생 반소가 완성한 것처럼 이번 번역도 한 집안의 ‘집단지성’으로 이뤄졌다. 신 번역가는 “난징대에서 중국 고대 문학과 중국 고대사 박사 과정을 각각 밟고 있는 딸과 아들이 곁에서 번역을 도왔다. 아이들 덕에 오랜 작업을 무사히 마칠 수 있었다”고 덧붙였다.

이호재 기자 hoho@donga.com기자페이지 바로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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