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을 좋아한 선비[이준식의 한시 한 수]〈106〉

  • 동아일보
  • 입력 2021년 4월 30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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높다란 대울타리 속 친한 짝은 없지만 시끌벅적 닭 무리에서 저 홀로 빼어나다.

머리 숙이면 붉은 볏이 떨어질까 두렵고 햇살 쬐면 하얀 깃털 녹아날까 걱정일세.

가마우지는 털 빛깔이 천박한 듯싶고 앵무새는 목소리가 교태스러워 싫어한다.

바람결에 울음 울며 무엇을 생각할까. 아득히 푸른 들, 구름과 강을 바라보는 슬픈 눈망울.

(高竹籠前無伴侶, 亂鷄群裏有風標. 低頭乍恐丹砂落, 쇄翅常疑白雪消. 轉覺(노,로)\毛色下, 苦嫌鸚鵡語聲嬌. 臨風一려思何事, 창望靑田雲水遙.) ―‘연못의 학(池鶴)’ 제1수·백거이(白居易·772∼846)

고고한 자태를 뽐내는 학에 시인은 자신의 처지와 심사를 투영한다. 짝도 없이 높다란 울타리 저편에 갇혀 있지만 학은 뭇 닭들과는 풍모가 완연히 다르다. 그가 꼿꼿이 머리를 세우는 건 단사(丹砂)처럼 붉은 볏을 지키기 위해서요, 햇살에 쉬 날개를 드러내지 않는 건 눈처럼 하얀 깃털을 아껴서이다. 그건 섣부른 복종이나 자기비하를 경계하는 의연한 자존심 때문일 터다. 하여 쉽게 깃털이 지저분해지는 가마우지, 교태로운 목소리로 남의 비위나 맞추는 앵무새 따위와는 기어코 거리를 두려고 한다. 울짱에 갇혀서도 푸른 들, 구름과 강을 향해 거연히 날아오르는 꿈을 포기하지 않았기에 그 눈망울이 더 처연해 보였을지 모른다.

젊은 시절 거침없이 자기 소신을 펼쳤던 백거이는 정치적 풍파를 거치면서 점차 현실에 순응했다. ‘벼슬에 나아가되 요직을 향하진 않고 물러나되 깊은 산엔 들지 않는다’라는 시구처럼 그는 관직을 유지하면서도 삶의 여유도 놓치지 않았다. 이때 그의 곁을 지킨 벗 중 하나가 바로 학. 그는 ‘한가로움을 함께할 친구로는 학만 한 게 없다’거나 ‘새장 열어 학을 보니 군자를 만난 듯하다’ 할 정도로 학을 가까이했다.

이준식 성균관대 명예교수
#학#선비#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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