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안부 배상 판결’ 같은 재판부서 정반대 판단… “日재산압류로 배상금 강제집행은 국제법 위반”

박상준 기자 입력 2021-04-21 03:00수정 2021-04-21 09:56
공유하기뉴스듣기프린트
공유하기 닫기
법원 “소송비 日에게 받을 수 없어”… ‘국가면제 예외 인정’ 본안과 배치
2월 법원 인사로 새 재판부 구성
© 뉴스1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들이 일본을 상대로 손해배상 청구 소송을 제기해 승소했지만 일본의 재산을 압류·매각하는 등 배상금 지급의 강제집행은 국제법 위반이라는 취지의 법원 판단이 처음 나왔다. 특히 재판부는 위안부 피해자에 대한 일본의 배상 책임을 인정하는 판결 자체도 국제법 위반이라는 취지의 내용까지 결정문에 담아 향후 위안부 피해자들의 추가 소송이 제기될 경우 영향을 미칠 것으로 예상된다.

●법원 “일본 재산 강제집행은 국제법 위반”
서울중앙지법 민사합의34부(부장판사 김양호)는 지난달 29일 고 배춘희 할머니 등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12명이 일본을 상대로 손해배상 청구 소송을 제기해 승소한 판결에 대해 “(패소한) 일본으로부터 소송비용을 받아낼 수 없다”고 결정하며 “외국에 대한 강제집행은 국제법 원칙 등 신의칙을 위반하며 권리남용에 해당한다”고 밝혔다. 원고인 위안부 피해자들이 일본으로부터 소송비용을 받겠다고 신청한 것은 아니지만 재판부는 판결 확정 후 기록을 보존하는 절차의 일환으로 이 같은 결정을 내렸다.

재판부는 피해자들이 일본에게서 배상금을 받을 권리(청구권)를 강제로 집행하는 것은 국제법 위반이라고 밝혔다. 재판부는 “피해자들이 청구한 손해배상 청구 소송은 국가면제를 인정하지 않아 일본이 피해자들에게 배상해야 한다는 판결이 확정됐다. 그러나 외국에 대한 강제집행은 그 국가의 주권과 권위에 손상을 줄 우려가 있어 신중한 접근이 필요하다”고 했다. 이어 “유엔 국가면제협약을 살펴본 결과 강제집행은 위법하다”며 “강제집행까지 이르는 것은 현대 문명국가들 사이에 국가적 위신과 관련되고 우리 사법부의 신뢰를 저해하는 중대한 결과에 이르게 된다”고 했다. 재판부는 “강제집행은 헌법상 국가안전보장, 질서유지, 공공복리와도 상충한다”고 덧붙였다.

●‘日 배상책임’ 인정한 판결과 정반대 논리
이 결정문에 담긴 내용 중 일부는 올 1월 민사합의34부(당시 부장판사 김정곤)가 일본이 위안부 피해자들에게 각 1억 원의 배상금을 지급해야 한다고 판결하며 제시한 논리와 상충된다. 당시 재판부는 “전시 성폭력은 일본이 자행한 반인도적 범죄로 국가면제 원칙이 적용되지 않는다”며 “1965년 한일청구권협정이나 2015년 위안부 합의로 피해자 개인에 대한 법적 배상이 이뤄진 것은 아니기 때문에 피해자들의 청구권이 존재한다”고 봤다. 국가면제는 한 국가의 법원이 다른 국가를 소송 당사자로 삼아 재판할 수 없다는 국제법상 원칙이다.

주요기사
하지만 올 2월 법원 인사로 민사합의34부 구성이 바뀌면서 새 재판부는 결정문을 통해 국가면제 등 핵심 쟁점에 대해 정반대의 판단을 내놨다. 재판부는 “국제사법재판소(ICJ)는 전후 처리 과정에서 국가 사이에 총액 정산을 하는 경우 희생자 개개인에 대한 충분한 배상이 필수 규범은 아니라고 판단했다”며 “(일본군의 전시성노예제 운영과 같이) ICJ는 전시에 다른 국가 영토에서 무장군대에 의한 불법행위에 따른 사망, 상해 등 손해에 대해서도 국가면제를 인정했다”고 강조했다.

새 재판부는 한국이 2015년 한일 위안부 합의 등을 준수해야 한다며 국제법상 이전 언행과 모순되는 행위를 할 수 없다는 ‘금반언의 원칙’을 강조했다. 위안부 피해자들에 대한 일본의 배상책임을 인정하는 것이 국제법 위반이라는 취지로도 해석된다. 재판부는 “비엔나 협약에 의해 한국은 조약의 준수의무를 부담한다”며 “한국과 일본은 그동안 1965년 한일청구권협정, 2015년 위안부 합의 등을 맺었고 특히 양국이 최근에도 위안부 합의의 유효성을 확인했다”고 적시했다. 문재인 대통령이 1월 18일 신년기자회견에서 “(위안부 피해자의 승소 판결이) 곤혹스러운 것은 사실”이라며 “한국 정부는 그 (위안부) 합의가 양국 간 공식 합의였다는 사실을 인정한다”고 말한 점이 재판부의 판단 이유에 포함된 것이다. 재판부는 “상당수 피해자들이 일본이 출연한 화해치유재단의 돈을 받았으며 재단의 잔액이 일본에 반환되지 않기도 했다”고 덧붙였다.

올 1월 내려졌던 위안부 피해자들의 승소 판결은 일본이 항소하지 않아 이미 확정된 상태다. 따라서 새 재판부의 이번 결정으로 인해 일본의 배상책임을 인정한 기존 판결이 뒤집어지는 것은 아니다.

● 압류·매각 통한 배상금 지급 불가능한 것은 아냐
이번 결정문을 통해 강제집행이 국제법 위반이라는 법리가 나오긴 했지만 일본 재산을 압류·매각해 승소한 위안부 피해자들에게 배상금을 지급하는 것이 불가능해진 것은 아니다. 원고들이 향후 실제로 강제집행을 신청할 경우 강제집행이 국제법 위반이라고 결정한 민사합의34부가 아니라 다른 재판부가 사건을 심리하기 때문이다.

고 배춘희 강일출 할머니 등 피해자 12명은 이달 13일 서울중앙지법에 “일본이 한국에서 소유하고 있는 재산 목록을 제출하도록 명령해 달라”고 신청했다. 이들이 신청한 재산 명시명령은 채무자가 채무를 이행하지 않을 때 자신의 재산목록을 제출하게 하는 절차다. 제출된 재산목록은 압류·매각 등 강제집행의 대상이 된다. 이 사건은 서울중앙지법 민사51단독 남성우 판사가 심리한다.

박상준 기자speakup@donga.com기자페이지 바로가기>
#위안부#판결#배상금#국제법
0 개의 기사의견이 있습니다.댓글쓰기 Copyright ⓒ 동아일보 & donga.com
당신이 좋아할 만한 콘텐츠
기사 의견 0개의 기사의견이 있습니다.
동영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