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의 향기]드라마보다 더 흥미진진한 ‘구찌 가문 80년史’

  • 동아일보
  • 입력 2021년 3월 27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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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우스 오브 구찌/사라 게이 포든 지음·서정아 옮김/680쪽·2만2000원·다니비앤비

구찌는 자타 공인 세계에서 큰 사랑을 받는 브랜드 중 하나다. 구찌 가문의 80여 년 역사에는 경영권 분쟁과 청부 살인 사건 등 명암이 있지만 이마저도 대중의 관심을 끌어올렸다. 창업자의 손자인 마우리치오 구찌(작은 사진의 왼쪽)는 전처 파트리치아 레자니의 청부 살인에 의해 사망했다. 게티이미지코리아·사진 출처 위키피디아
구찌는 자타 공인 세계에서 큰 사랑을 받는 브랜드 중 하나다. 구찌 가문의 80여 년 역사에는 경영권 분쟁과 청부 살인 사건 등 명암이 있지만 이마저도 대중의 관심을 끌어올렸다. 창업자의 손자인 마우리치오 구찌(작은 사진의 왼쪽)는 전처 파트리치아 레자니의 청부 살인에 의해 사망했다. 게티이미지코리아·사진 출처 위키피디아

1995년 3월 27일 오전 8시 반, 이탈리아 밀라노 거리에서 4발의 총성이 울렸다. 총탄은 오른쪽 팔과 엉덩이, 왼쪽 어깨, 오른쪽 관자놀이를 관통했다. 총구가 향한 건 세계적인 명품 패션브랜드 구찌 가문의 마지막 최고경영자(CEO) 마우리치오 구찌(1948∼1995). 누가 그를 죽였는지는 3년 뒤에야 밝혀졌다.

범인은 그의 전 부인 파트리치아 레자니. 파트리치아는 결혼 전 가난한 세탁소집 딸이었다. 둘은 가족들의 반대를 이겨내고 결혼에 골인했지만 파트리치아의 허영심과 의부증으로 인해 이혼했다. 이혼 후 증오심으로 전처가 청부 살해를 의뢰한 것. 파트리치아는 살인교사 혐의로 징역 26년형을 선고받았다.

이탈리아 패션잡지 루나 편집장으로 현재 미국 블룸버그 기자인 저자는 구찌 가문의 역사와 관련된 인물 100여 명을 인터뷰하고, 다양한 문헌을 섭렵했다. 패션 명가 구찌 가문의 끊임없는 내분과 사업 분쟁 이야기를 마치 소설처럼 재구성했다. 흡입력 있는 이야기 덕분에 많은 영화감독들이 탐낸 소재다. 지난해 리들리 스콧 감독이 레이디 가가, 애덤 드라이버 주연의 영화를 만들기로 하고, 올 11월 개봉을 목표로 제작 중이다.

구찌 가문을 알기 위해선 수백 년을 이어 내려온 피렌체 상인들의 역사를 봐야 한다. 피렌체 상인에게 부는 곧 명예를 의미했다. 20세기 초 창업주 구찌오 구찌(1881∼1953)의 부모는 19세기 말 피렌체에서 밀짚모자 사업을 하다 파산했다.

구찌오는 도피하듯 영국 런던으로 떠나 호텔에서 일하며 부자들의 취향과 소지품을 관찰했다. 그는 고향 피렌체로 돌아와 1921년 가죽제품 매장 ‘발리제리아 구찌오구찌’를 세웠다. 이곳에서 그는 독일, 영국에서 가죽 원단을 사들여 각종 가방을 만든 뒤 관광객들에게 팔았다.

구찌는 창업 이후 결정적 순간마다 새로운 영역을 개척하며 꿋꿋이 살아남았다. 대나무 손잡이가 달린 뱀부 백과 모카신 로퍼 등 히트 상품을 연이어 출시했다. 이들 상품이 1960, 70년대 선풍적인 인기를 끌면서 구찌는 로마, 런던, 뉴욕, 도쿄 등에 매장을 둔 세계적 브랜드로 발돋움했다. 하지만 가족끼리 치열하게 경쟁하도록 유도하는 구찌 가문의 경영수업 방식은 구찌오 사망 이후 경영권 분쟁으로 이어진다. 급기야 1980년대 들어 구찌 운동화가 마약상들 사이에서 유행할 정도로 구찌의 브랜드 가치는 급락했다.

구찌는 브랜드 가치를 되살리기 위해 명품업계 최초로 투자은행과 손잡고 변화를 추구했다. 하지만 경영권을 둘러싼 가족 간 소송전으로 다시 난관에 부닥쳤다. 1990년대 초반까지 매출이 저조해 구찌는 빚더미에 올랐다. 구찌오의 손자 마우리치오는 투자은행에 회사를 매각해 가족기업 구찌의 마지막 운영자가 되었다.

구찌 가문의 손을 떠난 구찌는 1990년대 초 미국의 패션디자이너 돈 멜로와 톰 포드를 영입하고 브랜드 혁신을 단행하면서 과거의 명성을 되찾았다. 저자는 구찌가 20세기 후반 프랑스 LVMH(루이비통 모에에네시)의 인수합병 시도에 맞서 프랑스 피노프랭탕르두트(PPR) 그룹과 손잡고 변화를 선도했다고 평가한다. 20세기 후반 세계 패션업계의 흐름과 더불어 명품업계 주역들의 삶을 살펴보고 싶다면 추천할 만한 책이다.

김태언 기자 beborn@donga.com
#구찌#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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